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의회는 의원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이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학생,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교육 현장 당사자 10명이 조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과 공동 게재한다.
2025년 11월 시의회 마지막 정례회기에 서울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는 고등학생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조례안을 논의했다가 슬그머니 상정안을 보류했다. 표면적으로는 학습 선택권 확대를 내세우지만, 이 조례가 실제로 가져올 결과는 명확하다. 청소년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침해하고, 사교육 경쟁을 더 과열시키며, 교육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서울 학생인권위원장이자 한 아이의 부모로서, 나는 이 조례안에 깊은 우려와 분명한 반대의 뜻을 밝힌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심야교습 제한 조례가 청소년 보호라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이라는 발달 단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청소년기는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 학습만큼이나 중요한 시기다. 수면 부족은 집중력 저하, 정서 불안, 우울감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학습 효율의 저하로 연결된다. 그런데도 다른 시도와 형평성 운운하며 교습 시간을 자정까지 허용하겠다는 발상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무한 경쟁에 투입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학생인권위원회 활동을 통해 나는 수많은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밤이 되면 숨이 막힌다", "집에 돌아와도 쉴 시간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미 상당수 학생은 밤 10시 이후까지 이어지는 학습 일정으로 만성적인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심야 교습을 자정까지 확대하면, 일부만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수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경쟁의 기준은 학습의 질이 아니라 ‘얼마나 늦게까지 버틸 수 있는가’로 변질된다.
학부모로서 느끼는 불안도 크다. 사교육은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우리 아이만 안 보내면 뒤처질까 봐"라는 불안은 심야 교습이 허용되는 순간 더 증폭될 것이다. 이는 사교육비 부담의 증가로 직결되며, 가정의 경제력에 따라 학습 시간과 기회가 달라지는 구조를 강화한다. 결국 심야 시간은 교육의 기회가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만이 접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격차 공간이 된다.
이번 조례안은 학원 업계 내부의 불균형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대형 학원은 인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심야 교습을 확대할 수 있지만, 소규모 학원은 그러기 어렵다. 이는 사교육 시장의 집중과 독점을 가속할 뿐이다. 더 나아가 학원 강사와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역시 악화할 수밖에 없다. 심야 교습은 곧 노동시간 연장을 의미하며, 이는 교육의 질 향상과는 거리가 먼 문제다. 학생의 인권을 말하면서, 그 교육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하는 정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교육은 단순히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휴식과 균형 잡힌 생활 속에서 학습의 효과는 높아진다. 국제적으로도 청소년의 학습 시간과 수면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려 하는가. 청소년의 밤을 다시 사교육 시장에 내어주는 결정이 과연 미래를 위한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생 인권의 핵심은 청소년을 미성숙한 관리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존중하는 데 있다. 그들의 시간은 단지 성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의 대화,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 역시 성장의 중요한 일부다. 심야 교습 연장 조례는 이러한 시간을 제도적으로 축소하는 결정이다.
지금 서울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은 교습 시간 연장이 아니라, 공교육의 신뢰 회복과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적 전환이다. 청소년의 건강과 인권을 뒷순위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조례가 가져올 사회적 비용과 장기적 영향을 고민해야 한다.
청소년의 밤은 학원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위원장이자 학부모로서, 나는 서울의 청소년들이 더 늦은 밤까지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가 아니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배움의 환경 속에서 성장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이 조례안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교습 시간이 아니라, 청소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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