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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물알’과 ‘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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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물알’과 ‘무서리’

우리말에는 접두사로 ‘물’이 들어가는 단어가 참으로 많다. 과거 어느 대통령의 이름 앞에도 물을 붙였던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기억으로는 ‘보통사람’이라는 용어와 ‘순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군인 출신이지만 얼굴은 푸근한 옆집 아저씨처럼 편하게 보이는 인상인데, 전임자에 비해 배짱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를 비하하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꼭 이름 앞에 ‘물’이라는 접두사를 붙였다. 필자도 몇 번 그렇게 부른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가 없다. 별명을 지을 때 ‘물’이라는 접사가 앞에 들어가면 썩 좋은 표현은 아니다. 과거에 ‘개’ 자가 들어가면 좀 모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나리’, ‘개살구’, ‘개복숭아’처럼 좀 부족한 것에 붙이는 접사가 ‘개’였다. 지금은 ‘개좋아’, ‘개멋있어’처럼 ‘아주’나 ‘매우’라는 부사 대신 ‘개’라는 접두사를 사용한다. 이렇게 언어는 늘 변하는 것인데, ‘물’이라는 접두사는 아직도 과거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조금 덜 자란 것’, ‘조금 부족한 것’에 붙이는 접두사가 ‘물’이었는데, 그 의미는 아직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개’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바뀌고 있는데, 물은 여전히 물이다.

‘물알’이라는 단어가 있다. 물알은 ‘아직 덜 여물어서 물기가 많은 말랑한 곡식알’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물알이 들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이제 막 익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문으로는

곡식에 물알이 생기다.

태호가 배꼽을 드러내 놓고 물알이 든 옥수수를 뜯어 먹고 있었다.

‘물벼’라는 말도 있다. ‘채 말리지 않은 벼’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급하게 물벼를 마당질(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하기도 했다. 그것을 물마당질(벼를 베어서 말리지 못한 채 물벼 그대로 마당질하다)이라고 했다. ‘물고추’는 ‘마르지 않은 고추’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묶어서 생각해 보면 ‘물’이라는 접두사는 ‘아직 덜 여물다’는 의미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물딱지’라는 말처럼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 의미할 때도 사용하기도 한다. 과거 아파트 붐이 일던 시절에는 ‘물딱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여기서 ‘물딱지’란 ‘개발 예정지의 철거민이나 원주민에 대한 보상책으로 주어지는 아파트 특별 입주권을 받을 권리나 가능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주로 가능성이 희박할 때 물딱지라고 하였다.

이렇게 물이라는 단어에서 ‘ㄹ’이 탈락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그냥 ‘물’이라는 단어로 쓰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무서리’와 같은 것이다. 무서리는 ‘물(水) + 서리’의 형태로 이루어진 말이다. 원래는 ‘물서리’였는데, ‘ㄹ’이 탈락하여 전해진 말이다. 과거 중세국어에서는 ‘므서리’(<유해역上:2>)로 나타나 있다. ‘믈서리’였다가 ‘므서리’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무서리’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무서리’ ‘늦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라는 말이다. 무서리의 예문을 보자.

밖에는 무서리가 내리는지 문틈으로 찬기가 스며들었다.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있다.

와 같이 쓴다. ‘무서리’의 반의어는 ‘된서리(매섭고 사나운 재앙이나 타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늦가을에 아주 되게 내리는 서리)’이다.

‘무서리’처럼 ‘ㄹ’이 탈락된 형태로 쓰인 단어를 더 살펴보면 ‘무술’이라는 단어가 있다. ‘제사 때 술 대신 쓰는 맑은 찬물’을 ‘무술’이라고 한다. 또한 ‘무자리’는 ‘논에 물을 대어야 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이 또한 ‘물자리’의 변형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이 없으면 세상 모든 것이 살 수가 없는데, 어쩌자고 ‘조금 부족한 것’을 이를 때 물이라는 표현을 했을까 의문이 간다. 아마도 공기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물도 사서 마시는 시대가 되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의 귀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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