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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의 세무 이야기] 상속세 신고납세제도 전환, ‘무늬만 부과제도’의 모순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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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의 세무 이야기] 상속세 신고납세제도 전환, ‘무늬만 부과제도’의 모순을 끝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조세 체계는 경제 성장과 함께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주요 세목은 이미 납세자가 스스로 세액을 확정하는 ‘신고납세제도’로 전환되어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유독 상속·증여세만은 여전히 국가가 최종적으로 세액을 결정하는 ‘정부부과과세제도’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이제 상속·증여세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신고납세제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다.

두 제도의 본질적 차이

논의의 명확성을 위해 두 제도의 본질적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부부과과세제도 하에서 납세자의 신고 행위는 과세관청에 대한 '협력 의무'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납세 의무가 확정되는 시점은 국세청이 세액을 결정하여 통지하는 순간이다.

반면, 신고납세제도 하에서는 납세자의 신고 행위 자체가 세액을 확정하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 국세청의 개입은 신고 내용에 오류나 탈루가 있을 때로 제한된다.

이는 납세자를 피동적인 관리 대상에서 주체적인 의무 이행자로 격상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민주적 조세 국가의 이념에 부합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실질은 이미 ‘신고납세제’,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형식적으로는 정부부과제도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이미 신고납세제에 가깝다. 정부는 납세자가 신고하면 '신고세액공제'를 제공하는 한편, 신고가 부실할 경우 엄격한 '신고불성실가산세'를 부과한다.

여기서 심각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납세자에게 신고 결과에 대한 무거운 법적 책임(가산세)을 지우면서도, 정작 그 신고에 세액을 확정 짓는 법적 효력은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납세자는 의무만 다하고, 국가의 '결정'이 내릴 때까지 무한한 기다림과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고도화된 과세 인프라, 부과제도의 명분을 잃다

과거 상속세가 부과제도를 유지했던 명분은 자산 파악의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세자료제출법’의 시행과 IT 기술의 비약적 발달, 그리고 AI 기반의 빅데이터 활용 등으로 과세 인프라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해졌다.

금융자산, 부동산 거래, 해외 자산까지 국세청 전산망에 실시간으로 포착되는 지금의 조세 행정 환경에서, 국가가 일일이 모든 신고를 전수 조사하여 결정하는 방식은 행정력의 낭비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납세자가 신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세청 등 정부가 제공하는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나 '미리채움 서비스'등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신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과세 당국이 가진 정보의 우위가 이미 납세자와 공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과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에 불과하다.

‘결정’을 기다리는 상속인의 불안과 법적 안정성

납세자가 신고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수년 뒤 국세청의 결정 통지가 내려지기 전까지 납세 의무가 확정되지 않는 현행 제도는 납세자의 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제약한다. 특히 부과제척기간이 10년에서 최장 15년, 혹은 '안 날로부터 1년'이라는 예외 조항으로 인해 사실상 무기한으로 과세를 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은 심각한 법적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납세자의 불확실성과 국세청의 행정력 소모가 얼마나 불합리한지는 대법원 판례(2025. 11. 20. 선고 2025두33652)에서도 드러난다. 국세청의 상속세를 결정통지하기 전까지 납세자는 불안에 떤다. 반대로 납세의무자가 정당하게 세금을 신고·납부했더라도, 국세청은 결정통지를 하지 않는 경우 이미 받은 세금을 돌려줘야 한다. 부과징수방식에 기인한 국세청의 결정의 통지와 송달은 상당한 행정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납세자가 신고하여도 납세의무가 미확정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는 납세자의 ‘법적 안정성’과 안정적 국세행정 운용 모두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요소다.

신고납세제도로의 전환, 신뢰를 쌓는 제2의 조세 개혁

상속세 및 증여세의 신고납세제도 전환은 단순한 세법 개정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를 ‘감시와 피동’에서 ‘자발적 협력과 신뢰’로 재설정하는 결단이다.

납세자들이 원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법 집행’이다. 미국와 일본의 경우도 이미 신고납세제도로 운영중이다. 소득세의 경우도 1996년 이미 신고납세제도로 전환되어 국세청의 업무 부담을 경감하고 행정력을 보다 중요한 부분에 집중시킬 수 있게 했다. 상속·증여세도 마찬가지로 신고납세제도로 전환하되, 사후 검증과 조사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 합리적이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합리적인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조세 제도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선진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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