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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헌법 3조, 2차대전 전후 질서에 부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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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헌법 3조, 2차대전 전후 질서에 부합하나

[정욱식 칼럼] "북한에 대한 연고권" 주장, 소제국주의적 발상은 아닌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핵심적인 사유는 '힘을 앞세워 영토를 확장하지 않는다'는 2차 세계대전의 이후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 있다. '농담'인줄 알았던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탐욕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매입'부터 '무력사용'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놓고는 이에 저항하는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앞세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에선 미국이 앞장서서 만든 전후 질서를 미국이 파괴하려는 현실에 대해 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평양 계급교양관 벽면에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이?

시선을 한반도 문제로 돌려본다면,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이는 조선의 9차 당대회에 '적대적 두 국가'가 명시될 것인가에 우려스러운 시선이 모아진다. 조선이 이런 선택을 한다면, 2019년 이래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관계의 "바늘구멍"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 와중에 <연합뉴스> 19일자 보도는 착잡함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이 기사에 등장한 사진을 보면,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창립 80주년 기념행사 참가자들이 평양의 중앙계급교양관을 방문해 강사의 설명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사진에 담긴 내부 벽면에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다. 벽면 상단에는 "한국은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가장 눈에 띤 것은 "한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3조를 게시한 부분이다.

김정은 정권은 작년 하반기부터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을 집중적으로 거론해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한국이 1948년 7월 제정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문구를 넣어 "우리 국가에 가장 적대적인 태생적 본성을 성문화"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정권이 10여차나 바뀌고 헌법은 9차나 개정되었지만" 헌법의 영토조항은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고 힐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2023년 연말부터 말해온 '한국 정부의 성향과 관계없이 흡수통일을 추구해온 것은 매한가지'라는 주장의 핵심 근거를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위에서 소개한 중앙계급교양관의 게시물은 이러한 주장이 빠르게 사회화되고 있고 9차 당대회 결정문에 '적대적 두 국가'가 명시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창립 80주년 기념행사 참가자들이 평양 시내 여러 곳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중앙계급교양관을 찾은 참가자들이 "한국은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는 문구가 적힌 전시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세계 유일의 한국 헌법의 조항

그렇다면 이를 김정은 정권의 근거 없는 프로파간다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역지사지 이전에 보편적 규범과 상식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조선은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그 이후에도 헌법의 영토조항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어느 유엔 회원국이 다른 유엔 회원국의 영토를 자국 영토로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헌법의 영토조항은 유사시 "북한에 대한 연고권" 주장의 근거로도 작용해왔다. "북한급변사태"에 대비한 흡수통일 계획인 '충무계획', 전쟁 발발시 무력흡수통일 계획을 담은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과 연합훈련 등도 이에 근거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와 유엔 동시 가입으로 대표되는 남북화해협력정책을 추구했지만, '충무계획'이 만들어진 시기도 이때였다.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도 흡수통일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햇볕정책'으로 잘 알려진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전시 무력흡수통일 계획이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포함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한미연합훈련에 '평양 진격 작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추구한 것도,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외치면서 대량 탈북을 유도하려고 했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전시에 평양을 점령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입체기동작전'을 국방개혁 2.0의 요체로 삼은 것도, 윤석열 정부가 "자유의 북진"을 외치면서 무인기 등을 동원해 조선의 무력도발을 유도하려고 했던 것도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전후 질서와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은 어울리는 짝인가?

나는 이게 남북관계의 현실뿐만 아니라 국제 규범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후 질서는 '무력과 강압에 의한 국경 변경 금지'와 '타국의 주권·영토 존중'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헌법의 영토조항과 이를 근거로 한 "북한에 대한 연고권" 주장, 그리고 유사시 군사적·행정적 계획은 이러한 전후 질서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물론 우리에겐 '한반도의 특수성'이 있다. 분단된 단일 민족국가라는 정체성과 '통일 지향적인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특수성을 고수하면서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이에 조선은 '적대적 두 국가'를 향해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

또 한반도의 특수성도 국제적 보편성과 동떨어져 논할 수는 없다. 남북 합의에 따른 평화적 방식, 주민투표 등의 정치적 절차, 유엔 안보리의 승인 등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과정이 누락된다면, 특수성에 근거한 "북한에 대한 연고권" 주장은 설자리를 찾을 수 없다.

앞서 트럼프의 황당한 제국주의적 발상을 비판한 데에는 더 늦기 전에 '우리 안의 소제국주의'도 성찰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 깔려 있다. 물론 트럼프의 노골적인 제국주의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동시에 조선의 주권을 인정하길 꺼려하면서 유사시 흡수통일 계획을 유지하는 것이 국제 규범과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 여러 정부에서부터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론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법·제도·군사계획을 유지해온 것이 김정은 정권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닐까? 조선을 비롯한 세상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북한에 대한 연고권"이라는 낡고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사고를 붙잡고 있어야 할까? '평화통일'이 대한민국의 국시라면 흡수통일로 간주될 수 있는 요인들을 하나둘씩 해소해나가는 것은 어떨까? '실용'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와 대혼란의 시대에 전환시대의 논리를 찾고자 하는 우리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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