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의 하나로 '중국 혐오'를 끌어들였다.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 혐중 정서가 본격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극우세력은 대림과 명동 등 중국인 밀집 지역을 들쑤시며 이주민들을 위협했고, 일부 극우 정치인들은 지지율을 높일 목적으로 혐오 확산에 앞장섰다. '내란 청산'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도 중국계 이주민들은 혐중 정서에 시름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들을 만나 그들이 현재 바라보는 한국은 어떠한지,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과 전문가들을 만나 현재의 혐중 정서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해결점은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기획은 세 편으로 발행된다. 편집자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의 한 카페는 중국인 손님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 차이니즈 존' 정책을 실시했다. 한국인 손님들이 중국인 손님의 출입을 싫어한다는 이유였다. 이를 본 재한중국인들이 인종차별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인터넷에서는 '돈쭐내주겠다'며 카페를 응원하는 혐중(중국 혐오) 세력이 많았다. 이 카페는 정원오 성동구청장과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선 뒤에야 노 차이니즈 존 정책을 철회했다.
같은 해 국민의힘은 중국인이 한국 시장을 위협한다며 이른바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기 서울시의회에서는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상호주의'를 명분으로 국적에 따라 외국인 복지 지원을 제한하자는 조례를 발의했다.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원들은 앞서 열린 토론회와 인터뷰 등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일방적인 혜택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명분으로 이용한 혐중 정서는 점점 거세져 서울 한복판에서, 국회와 지자체에서 실체화된 차별로 드러났다. 인권은 물론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지적에도 인터넷 상에서는 이들을 응원하는 여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혐중 현상이 이어지는 이유로 "돈과 표" 두 가지를 콕 집었다. 허무맹랑한 근거라도 중국을 끌어들여 공격하면 이익을 얻는 비즈니스 구조를 제재하지 않는 한 지금의 혐중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익만 얻으면 그만? 조회수 노리며 혐중 부추기는 미디어
지난달 언론개혁시민연대가 발간한 '한국 반중정서 실태조사를 통해 본 언론·미디어의 역할'에 따르면, 단체가 만난 9명의 연구자(이주민단체·언론·학계)들은 "중국 혐오는 조회수와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비즈니스 자원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혐중 확산의 1등 공신인 미디어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혐오를 무한히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이주민단체 활동가 A 씨는 서울 명동과 대림 등에서 발생한 혐중 시위 참여자들을 '직업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로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기 위해 우리 동포들을 사회 악으로 만들고 있다"라며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했다.
A 씨는 "통계적으로 내국인보다 낮은 범죄율은 차치하더라도, 지역 사회 일원으로서 수행하는 세금 납부, 봉사 활동, 수재민 돕기 모금 등 시민적 기여는 뉴스에서 철저히 소거된다"라며 "우리는 세금 내고 봉사하며 평범하게 사는 이웃인데, 미디어는 오직 사건·사고가 터질 때만 국적을 강조해 우리를 호출한다"라고 비판했다.
현직 기자 B 씨는 "중국의 낙후된 모습이나 인권 탄압 기사가 한국 독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잘 읽히고, 언론사 수익 구조상 이런 부정적 기사를 양산하게 된다"라고 언론계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한 "중국의 일상이나 문화를 다루고 싶어도 '친중'이라고 공격하는 여론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라며 "일부 언론사 간부들은 중국 경험이 많은 전문 기자가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칭찬하는 기사를 쓰면 '중국 가더니 친중 다 됐네'라며 비아냥거린다"고도 했다.
연구자 C 씨도 "언론에서는 대학 내 우파 조직이 큰 세력인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로 집회 현장에 나가보면 그 실체는 매우 미미하다. 그럼에도 언론은 이 현상을 풍선 효과처럼 과대포장하고 있다"라고 했다. 언론이 혐중 현상을 극대화하는 식으로 해당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기 어려운 보수정당, 중국이라는 가상의 적 만들어 지지 얻어내
정치권에서 나타난 혐중 현상의 원인도 마찬가지다. 차별·혐오 연구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프레시안>과 만나 "'경제는 보수 진영이 유능하다'는 등 보수 세력이 내세웠던 긍정적 이미지가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심지어 보수 정당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탄핵당해 재기가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천막 당사라도 차리며 자구책을 찾았겠지만 이제는 중국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지지를 얻어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왜 중국이 북한 다음으로 주요 적국이 됐을까. 홍 교수는 "전통적으로 공격 대상으로 삼아 온 북한은 이제 효력을 잃었다. 성소수자와 같은 가상의 위험도 실제로는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그 자체로 힘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위협하면 위협적 존재로 만들 수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져오자 혐중 현상이 크게 확산됐다"고 했다.
홍 교수는 서울숲에서 벌어진 '노 차이니즈 존' 사건에 대해 "예견됐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 노키즈존이 확산할 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사적 영역에서 인종과 성별,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을 규제하는 장치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싶은 마음은 존중돼야 하겠지만, 그 방식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하는데 어떤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으니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만 작동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법적 제재보다 빠르고 확실한 대응 "시민 간 연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이 혐중 현상을 강력히 비판하자 관계부처들은 혐오와 차별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 규제 법률안'(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 대표발의), '혐오선동 방지법'(무소속 최혁진 의원 대표발의) 등이 속속 발의되는 등 대책 수립에 나섰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혐오 선동을 제재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혐중 현상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본다. 법 외의 방식으로도 혐오와 차별에 대응해야만 사회 전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정치권의 경우 윤리위원회의 징계권을 강화하고 혐오와 차별에 대해 엄격히 징계하는 규정을 만든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고위 공직자들에게도 세금을 받으면서 차별에 동참할 수 없도록 규제 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제도를 통한 대응과 함께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중요성을 강조한 방안이 있다. 바로 선주민과 이주민 간 연대다. 과거 일본에서 혐한 시위가 기승을 부릴 때 조선인들과 연대하던 '카운터스', 지난해 극우세력이 대림동을 휘저을 때 주민과 활동가들이 모아 열었던 맞불시위가 그 사례다.
지난해 극우세력이 명동 양꼬치 거리를 드나들며 난동을 부릴 당시 많은 시민과 자영업자들이 직접적인 위협을 겪었다. 하지만 극우세력이 대림동 집회에 나섰을 때에는 이러한 위협이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여러 단체와 시민들, 중국 주민들이 모여 혐중 시위를 규탄하자 극우세력은 별다른 위세를 떨치지 못한 채 대림동 밖으로 이탈했다.
시민 간 연대는 무엇보다도 이주민들에게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대림에서 열린 혐중 시위에 맞선 중국계 이주민 박연희(50대) 씨는 <프레시안>에 이렇게 말하며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예전에 중국계 이주민을 혐오하는 영화 때문에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참여자가 많지 않아서 동포들의 소리가 높지 않았어요. 반면 작년에 대림에서 혐중시위가 열렸을 땐 시민단체들이 많이 와 줘서 큰 힘이 됐어요. 동포들도 많이 모여서 구호도 외치고 피켓도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고립돼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후로는 점점 동포들이 마음을 한 곳에 모으고 조직화도 점점 잘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와준 게 많은 위로가 돼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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