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시민사회단체가 인간의 존엄성과 공공성, 기후·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AI 기술을 촉구하며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시민의 기본권 보호는 간과한 채 산업계 이해관계에 치중한 지금의 인공지능(AI) 정책이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하며, AI 기술은 시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의료·복지·여성·인권·환경·평화 등 분야 41개 시민사회단체는 31일 오전 서울 종로 참여연대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공지능 책임성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행동'을 발족했다고 알렸다.
이들 단체는 △AI 개발·활용의 책임성과 공공성 강화 △AI 관련 정책 수립 과정에 민주적 거버넌스 구축 △AI 공론장 형성 △AI에 대응하는 시민사회 공동 대응 및 역량 강화 등을 목표로 지난 1월부터 공동행동 조직 구성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공동대표는 기조 발언에서 "지금 AI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무런 통제 없이 개발, 도입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미 우리 생활에 도입된 AI가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와 위기를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인공지능은 노동, 환경, 인권, 문화, 평화, 복지 등 사회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개별 대응으론 부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연결된 대응, 공동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단체 활동가들은 전쟁·개인정보·노동·성평등·보건 등 각 분야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는 AI의 문제점과 한계를 전했다.
이미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무기산업에서의 AI와 관련해 "영국에서 실시된 3개 AI 모델로 실시한 가상전쟁 실험 결과 21번의 전쟁에서 20번 핵무기를 선택했다"며 "세계적으로 군사 영역에서 AI의 활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그런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미군이 팔란티어 등의 AI 기술을 활용해 초기 10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하고 단 40초 만에 이란 수뇌부 48명을 살해했다는 기사에서 군사 AI의 미래를 본다"며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정보로 초등학교를 오폭해 175명의 어린 학생들이 폭사당한 사실에서 군사AI의 미래를 봐야 한다"고 했다.
최호웅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장은 "정부와 국회는 AI 사업자가 AI 개발을 위한 학습데이터로 시민 개인의 원본 정보를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 중"이라며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거리에서 생활하는 시민의 영상을 아무 조치 없이 바로 학습데이터로 사용하거나, 온라인 공간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시민 개인 정보를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홍지욱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플랫폼 노동, 데이터화, 알고리즘 등 노동을 더 통제하고 쪼개고,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AI는 이미 작동하고 있다"며 "아틀라스(인간형 로봇)든, 아틀란티스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물어야 한다. 왜 필요하고 어떻게 작동하며, 일하는 노동자는 어떤 영향을 받는지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아마존이 도입했던 AI 채용 시스템이 추천한 지원자 대부분이 남성으로 드러났고, 이 시스템 도입은 추후 무산됐다"며 "AI 기반 채용, 평가, 업무 배치는 여성의 경력 공백을 불리하게 해석하고 남성 중심 경력 패턴을 '우수 인재' 기준으로 재생산하며 여성차별과 성불평등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AI 기술은 딥페이크 성폭력 등 새로운 형태의 젠더폭력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정부 대응은 여전히 아직 삭제, 차단, 수사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전진한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부족한 필수의료시설, 부족한 의료진, 태부족한 복지 예산과 잘못 설계된 복지서비스 전달 정책 등을 정말 AI가 해결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가령 250개 시군구 중 77곳에 분만실이 없고, 34곳에 응급실이 없는데, 소위 환자 동선을 최적화한다고 해서 우리 지역에 병원이 없는 문제를 AI가 해결할 수 있느냐"며 "정부가 복지에 쓰는 돈 자체가 부족한데, AI로 소위 대상자를 '발굴'하면 무엇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공공 의료와 복지에 쏟아야 할 정책과 자원을 '똥인지 된장인지도 알 수 없는' AI 기업의 돈벌이에 쏟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장호 문화연대 문화정책위원장은 "AI 중심으로 재편된 콘텐츠 제작현장에서 예술가의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많은 예술인이 AI가 만든 부실한 작업물을 보수하는 슬롭(slop, 디지털 쓰레기) 노동으로 내몰린다"며 "AI 창작물의 저작물로서의 모호한 성격 때문에 예술인의 창작 권리와 보상체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오병일 대표는 "이제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말해야 한다. AI가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개발자도, 기업도, 국가도 명확하게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며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거버넌스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AI의 방향은 소수 기업과 정부 관료에 의해 결정된다"며 "한국의 AI 기본법도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만들어졌고,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 AI 전략위원회는 최근 조직 개편에서도 시민사회를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오 대표는 "우리는 '영향 받는 사람'의 권리를 AI 거버넌스 중심에 세울 것"이라며 "영향 받는 사람들이 AI의 개발부터 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 우리 지역과 작업장에 도입되는 AI에 이르기까지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행동 참여 단체는 선언문에서 "AI 정책은 기업과 자본이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인간 존엄과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며 "개발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에 걸쳐 인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정책 수립 전반에 걸쳐 성평등이 실현돼야 하며, 환경과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지난 1월 제정된 AI 기본법에 공공성과 책임성 강화 방안을 담는 법 개정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 국가AI전략위원회, 각 정부 부처 및 지방정부의 AI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AI 민주적 거버넌스 구성을 위한 활동과 AI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는 공론화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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