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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농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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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농부’의 노래

비가 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한동안 가물어서 밭에 심은 나무들이 허덕이고 있었는데, 때맞춰 비가 내려주니 이 아니 좋을런가? 장화 신고 밭에 드니 몸치임에도 춤이 절로 추어진다. ‘春雉自鳴(춘치자명 :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울다.)’이라고 했던가? 뜻이야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제 허물을 드러내 화를 자초하다.”라는 말이지만 봄의 장끼가 되어 한바탕 노래하고 싶다. 씀바귀도 올라오고, 냉이는 벌써 꽃대가 올라왔다.(투덜투덜!) 진작에 나와서 한 바구니 캐다가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어야 하는데, 때롤 놓쳤다. 불위농시(不違農時)라고 했다. 농부는 때를 어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어부(漁夫)는 물이 좋을 때 바다에 나가고, 농부는 비가 오면 밭에 나간다. 사실 필자가 꿈꾸던 것은 어부(漁父)였다.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삼지 않고, 고기잡이를 즐기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을 어부(漁父)라고 한다.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는 어부(漁夫)와는 한자가 다르다.

10여 년 전에 퇴직 후 농사를 짓겠다고 전의면에 밭이 딸린 주택을 사서 들어 왔다. 퇴직 전까지는 농사를 배우는 기간으로 늘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제법 농부의 티를 내 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농부(農夫)가 아니라 농부(農父)가 되어 가고 있다. 농부(農夫)는 ‘농사를 짓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편 농부(農父)는 ‘농사일로 늙은 사람, 농사일을 하는 늙은 아버지’라는 의미가 있다. 사실 어부(漁父)의 이야기는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서 유래하였다. 굴원이 모함에 의해 높은 관직에서 쫓겨난 뒤, 강가에서 어부를 만난 일화를 쓴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어부는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굴원의 고집스런 성격을 고쳐주려고 등장한 신선과 같은 인물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라고 하면서 노래하고 유유히 사라져간 신비한 인물이다. 학교 다닐 때는 이런 어부를 동경하여 자연 속에서 신선 놀이하면서 사는 것을 꿈으로 간직했다.

결국 어부(漁父)는 되지 못하고 전의면의 한 구석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언제 쯤이면 비가 올까나 하고 기다리던 중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옛말에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붐부터 초여름까지 농사를 지으면 팔월에는 신선처럼 편한 신세가 된다.”는 뜻으로 수고한 이후에 편안해진다는 말이다. 이제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볼까 했더니 여기저기 강의도 많이 들어오고, 칼럼 써야 할 것도 많다. 아이고! 결국 새벽에 나가 풀 몇 포기 뽑고 들어와 허리에 파스 붙여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찔레가 싹이 나고 있길래 뽑으려고 잡아당겼더니, 찔레는 나오지 않고 허리에서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나무 뿌리 잡아당길 것은 아닌가 보다. 한국어교실이 그냥 가면 섭섭해서 이제 농부의 각종 의미를 살펴 보고 마무리 하고자 한다.

농부(農夫) : 농사를 짓는 사람

농부(農婦) : 농사일을 하는 여자, 농촌의 아낙네

농부(農父) : 농사일로 늙은 사람(농사일을 하는 늙은 아버지)

농민(農民) :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

농군(農軍) : 농사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등과 같이 한자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그 외에도 전농(田農 : 농사를 짓는 사람), 전부(田夫 :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등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버지 부(父) 자가 들어갔는데, 왜 ‘늙었다’는 의미를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필자도 퇴직하고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할배(?) 대열에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농부는 두더지다”라는 말이 있다. 농부는 일 년 내내 땅을 갈고 파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농부는 땅을 경작해서 먹고 산다는 말이다. 어부사에 나온 어부(漁父)처럼 살고 싶어서 농부(農父)가 되고자 하였지만, 아직은 풋내나는 초보자에 불과하다. 얼마나 더 지나야 트랙터에 앉아서 여유 있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봄이 오니 좋기는 한데 잡초가 부르고, 기름값이 올라 지갑이 얇아지고 있으니 꽃놀이는 꿈속에서나 해야 할까 보다.

지금쯤 조천(세종시 조치원에 있는 내) 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텐데, 춘치(春雉 : 꿩) 소리나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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