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취업박람회가 열린 일부 대학교 앞에 '대학은 집단학살에 가담하지 말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불법점령 등 여러 전쟁범죄에 연루된 기업들이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이들 기업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하며 '우리는 집단학살에 가담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보이콧을 주장했던 이유를 3회에 걸쳐 연속 기고한다. 편집자
나는 왜 취업박람회에서 집단학살 공모 거부를 말했나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수십, 수백 곳에 지원서를 넣고도 면접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나 역시 그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직무를 선택해야 할지, 어떤 기업에 들어가야 할지, 그리고 그선택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고민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취업박람회는 분명 중요한 기회다. 다양한 기업을 만나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넓히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취업박람회에서 이루어진 집단학살 공모 기업 저항행동은 많은 학생들에게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 하필 취업박람회인가, 왜 우리의 기회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냐는 질문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의 불안은 저항행동을 진행하는 우리도 똑같이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조건 속에서 경쟁하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행동은 취업박람에 자체를 부정하거나 학생들의 취업 기회를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특정 기업들에 대한 문제 제기다. 오히려 취업박람회가 학생에게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 어떤 기업들이 들어와 있는지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의 고민이 든다. 우리가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과연 완전히 '나의 문제'로만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내가 선택하게 될 기업, 내가 맡게 될 일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계와 연결돼 있다. 집단학살에 공모하는 기업들이 만들어 낸 무기와 기술은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이 사실이 뉴스 속에서 건조하게 소비될 때와, 이것이 나의 진로 선택과 연결될 때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팔레스타인과 우리 캠퍼스는 연결돼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은 그 무게를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지난 2년 반 동안 7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2만 명 이상의 아동이 사망했다. 병원과 학교, 난민 캠프가 반복적으로 폭격당했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이 죽어갔다. 가자지구는 오랜 봉쇄 속에서 식량과 의약품이 제한됐고, 심지어 최소 생존을 위한 칼로리까지 계산돼 통제됐다.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모인 민간인들이 총격을 당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굶어 죽고, 폭격으로 신체가 파괴되고, 살아남아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 집단학살은 거대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팔레스타인 앞바다를 포함한 동지중해 지역에는 약 453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와 710억 달러 규모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원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들,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이 개입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자원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한국과도 연결돼 있다. 한국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 역시 이 지역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단지 '먼 나라의 비극'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그 구조와 일정하게 연결된 위치에 서 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단순한 '국제 이슈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선택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묻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집단학살에 가담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최소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고민할 필요는 있다.
물론 이런 문제 제기가 곧바로 하나의 정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 역시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만약 내가 그 기업에 입사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이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혹은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윤리적 선택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질문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 고민 자체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하는 것과, 알고도 선택하는 것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저항행동이 갖는 의미 역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특정 선택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보게 만들기 위한 시도다.
또한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 역시 중요하다. 일부 학생들은 이러한 행동이 취업 기회를 제한한다고 느끼고, 불쾌감이나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감정은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현재 존재하는 구조적 불안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더 나은 선택지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갈등을 서로에 대한 힐난으로 확장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불안을 인정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 나눠야 한다.
연결돼 있기에 변화는 가능하다
우리가 정말로 분노해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 이러한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전쟁과 집단학살을 통해 이윤을 얻는 산업,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국가와 정치 권력,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기능하는 시스템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학이 그 일부로서 기능할 때, 우리는 거기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대학은 단순히 취업을 중개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닌 공적 공간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기업을 초청하고, 어떤 가치를 학생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좋은 직장'이라는 기준이 높은 연봉과 안정성에만 머물러도 되는가, 아니면 그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함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결코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학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업박람회에 참가하는 기업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우고, 학생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이 부딪히고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과의 연대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 공부하는 것, 일하게 될 곳이 모두 세계와 연결돼 있다면, 그 연결 속에서 책임을 고민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집단학살 공모기업 저항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세계가 부당하다면 우리는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 속에서 대학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우리가 살고 싶은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 가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그 출발이 더 많은 사람과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를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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