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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 시설 안에 머물 수 없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제는 시민권과 탈시설의 시간이다

'색동원' 사건이 드러낸 시설 중심 사회의 한계

최근 드러난 인천 강화군 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의 성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은 장애인을 시민이 아닌 관리와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한국 사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특정 시설 하나, 특정 인물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시설 중심 정책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한국 장애인 복지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장애계와 공동대책위는 색동원 사건의 해결책으로 시설 유지와 통제가 아닌 탈시설과 지역사회 기반 지원체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4월 23일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권리증진을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한 이번 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한 변화였다. 무엇보다 이번 법은 장애인의 삶을 단순한 복지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국의 장애인 정책은 시설 보호와 의료적 관리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 결과 장애인의 삶은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되었고, 이동과 교육, 건강, 노동, 주거, 의사결정의 권리는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다. 특히 중증장애인과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이 아닌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이는 단순한 복지의 부족 문제가 아니다. 장애를 이유로 지역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시민권의 문제이다.

2006년 채택된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선언했다. 한국 역시 2008년 협약을 비준했지만, 현실의 제도와 정책은 여전히 국제 기준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22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탈시설 정책의 후퇴와 시설 중심 정책 유지, 강제입원과 의사결정 대체 관행, 지역사회 기반 지원 부족 등을 지적하며 실질적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탈시설은 복지의 확대가 아닌 시민권의 문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는 탈시설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2024년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된지 2년 만에 폐지했다. 이에 더해 일부 정치권과 시설 중심 단체들은 탈시설 정책을 위험하고, 강요된 정책으로 문제를 왜곡하며 반대해 왔다. 일부 언론 역시 탈시설 이후 발생한 개별 사례를 반복적으로 부각하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삶 자체를 문제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색동원에서 드러난 성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시 보여준다. 진짜 문제는 장애인을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시설 구조 안에 머물게 하는 사회, 그것이 안전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에 있다.

탈시설은 단순히 거주 공간을 옮기는 정책이 아니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다. 이는 선택 가능한 복지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 시민권 보장의 문제이다. 누구도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통제된 공간 안에서 타인의 결정에 의존하며 살아가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시설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시설 중심 체계는 구조적으로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고, 일상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며, 사회참여가 제한된 환경 속에서 권리침해 위험을 높여왔다. 색동원을 비롯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침해 사건 역시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보여준다. 인권침해는 일부 개인의 일탈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폐쇄성과 권력 불균형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장애인의 삶은 쉽게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시설 유지와 개선, 관리 강화가 아니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국가 책임으로 구축하는 일이다. 주거, 활동지원, 돌봄, 의료, 소득보장, 일자리 등 지역사회 기반 지원체계를 확대하고,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탈시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정책 과제가 아니다. 장애인의 빼앗긴 시민권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나아가야 할 사회적 전환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삶을 바꾸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선언적 의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2년간 마련될 시행령과 시행규칙이다. 특히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생활 지원, 자기결정권 보장, 권리침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체계, 정보접근권,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구축, 장애영향평가와 같은 핵심 내용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단계에서 구체적인 국가 의무로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예산과 전달체계 역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정책의 설계와 집행, 평가 과정 전반에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권리는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이동하고, 배우고, 일하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그 권리를 찾기 위한 출발이어야 한다. 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장애인의 권리가 문장이 아닌 삶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207개 단체로 구성된 '4.20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이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서십자각 인근에서 연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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