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탄가루 먹어가며 가장 밑바닥서 일했는데, 제일 먼저 나가야 할 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탄가루 먹어가며 가장 밑바닥서 일했는데, 제일 먼저 나가야 할 판"

[탈(脫) 석탄의 딜레마] ④ 석탄 하역 노동자들의 비애

[탈(脫) 석탄의 딜레마] 연재 더보기 ☞ 클릭)

석탄을 실은 대형선박이 하역 부두에 다가오면 스크래치 방지용 폐타이어를 두른 터그보트(예인선)가 선박을 부두 쪽으로 민다. 그렇게 대형선박이 서서히 부두에 닿으면 곧바로 줄잡이 작업을 해야 한다. 부두에 선박이 접안한 뒤 떠내려가지 않도록 선박의 정박용 줄(홋줄)을 부두의 계선주(볼라드, Bollard)에 묶어 고정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마치면 석탄 하역 작업이 본격 시작된다.

선박 갑판의 개구부인 석탄홀 덮개가 열리면 대형 스크루가 부착된 ㄱ자 모양의 석탄 하역기가 석탄홀로 내려간다. 25미터 깊이의 석탄홀 내 쌓인 탄들이 회전하는 스크루에 빨려 들어가는 속도는 시간당 2000~30000톤. 이렇게 빨아들인 탄은 수 킬로미터로 이어진 컨베이어로 발전소 내 보일러까지 옮겨진다.

이렇게 말하면 기계가 다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노동자가 거대한 기계 속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

▲ 석탄 하역 장비.. ⓒ충남서부항운노조

입사 초기, 친구 결혼식에 갈 것인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게도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 하역 노동자인 이영수(가명, 52) 씨는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인 이곳 태안으로 25년 전 내려왔다. 아버지의 몸이 나빠졌다. 아버지는 영수 씨보다 먼저 석탄 하역 노동자로 일했다. 태안이라는 곳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영수 씨도 하게 된 이유다.

"여기서는 사람 구실 하면서 살 수 없어."

이영수 씨가 처음 석탄 하역 일을 할 때 선임에게 들은 이야기다. 배가 들어오는 때에 맞춰 일을 해야 하기에 주말도 공휴일도 없다. 배가 떠나고 새 배가 올 때까지의 시간이 영수 씨에게는 휴일이 된다. 지인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을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1년에 쓸 수 있는 연차는 고작 5일 뿐이었다. 입사 초기, 친구 결혼식에 갈 것인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2명 이상이 동시에 휴가를 낼 수는 없다. 대체할 노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역에는 필수 고정 인력이 존재한다. 2개 반(1개반 16명)이 12시간씩 맞교대를 한다. 현재 태안항의 3개 부두에서 순번제 교대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은 여러 가지다. 중장비가 움직일 때, 조정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일부터, 석탄홀 내 남은 탄을 제거하는 작업, 분진 방지 작업, 컨베이어 등 장비 내부에 끼인 탄 제거, 바닥에 떨어진 탄 정리 등.

배 한 척이 8만 톤의 석탄을 싣고 들어오면 나가기까지 약 6일이 걸린다.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내에 있는 태안항은 지난 10년 동안 연간 평균 1300만 톤의 유연탄이 들어왔다.

일도 무척 험하다. 2012년에는 선박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배와 항만 사이 완충 장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노동자는 20여 군데가 부러져 1년여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 하역기가 미처 빨아들이지 못한 석탄을 치우고 있는 노동자들. ⓒ충남서부항운노조
▲ 장비 내부에 있는 석탄 제거를 위해 소방호스로 물청소를 하고 있다. ⓒ충남서부항운노조

석탄 양으로 결정되는 노임…작업시간 길어져도 임금은 똑같아

작업 현장은 늘 탄가루가 날리기에 마스크는 필수다. 장비 내부에 탄이 엉겨 붙어 운영이 어려울 경우, 직접 장비 안쪽으로 들어가 탄을 제거해야 한다. 선박 홀드 벽에 붙어있는 탄도 제거 대상이다. 과거엔 죽창을 이용했으나 현재는 소방 호스를 이용해 물로 털어낸다.

석탄홀 내 하역기가 지나간 자리도 작업 대상이다. 하역기가 미처 빨아들이지 못한 탄들을 직접 주워 담아야 한다. 다른 건 없다. 삽으로 탄을 퍼서 나르는 수밖에. 석탄홀 내 벽에 낀 탄들도 모두 빼내야 한다.

한마디로 기계가 작업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모든 일을 영수 씨 등 하역노동자들이 한다고 보면 된다.

하역 작업에 걸리는 6일의 시간도 대중 없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나 유효한 시간이다. 장비가 고장이라도 나면 더 연장된다. 석탄은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데 러시아 탄은 동결탄, 즉 꽁꽁 언 탄이라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는 탄은 건기와 우기에 따라 다르다. 건기일 때는 바짝 말라 분진이 더 나오기에 살수 작업을 해야 한다. 우기 때는 죽탄, 즉 물기를 먹은 탄이 들어온다. 이 탄은 진흙 같아서 컨베이어 등 장비에 자주 끼인다. 그러면 작업을 중단하고 일일이 막힌 곳을 찾아서 직접 뚫어줘야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탄들이 더욱 많아졌다. 영수 씨는 기후 위기를 몸소 느낀다고 했다

하역기 등 장비가 고장 나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고장이면 현장에서 수리해서 다시 작업하면 되지만, 심각한 고장이면 정비사가 와야 한다. 그 시간이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간동안 하역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대기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일하는 날이 길어져도 받는 돈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처리하는 석탄 양에 따라 노임이 결정되는 구조다. 2024년 기준으로 석탄 1톤당 노임은 203.79원이다. 설비 문제 등으로 작업이 길어지면 불만이 터져나올수 밖에 없다.

"가장 밑바닥 일 해왔지만 가장 먼저 나가야 할 판"

앞으로가 문제다. 이곳 태안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 영수 씨 등 하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1호기가 폐쇄됐고 올해 2호기가 폐쇄된다. 앞으로 6년 내에 3~8호기 마저 폐쇄되고 단 두 기만이 발전소에 남게 된다. 월급을 받는 구조가 아닌 물량 당 노임을 받는 석탄 하역 노동자들이기에 수입이 5분의 1로 줄어 든다는 이야기다.

퇴직 등 자연 감소로 인원 조정을 할 수는 있지만, 석탄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기에 임시방편일 뿐이다. 기존 2개 부두에서 2018년 9호, 10호기가 증설되면서 세 번째 부두가 증설됐고 작업 물량의 증가와 함께 인력 증가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2019년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 시행 이후, 기존 물량이 유지 또는 단계적으로 감소하면서 자연 인원 감소가 이뤄졌다. 그 결과, 2018년에는 46명까지 늘어났던 하역 노동자가 현재 34명으로 줄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재취업을 위한 도배사, 자동차 정비사 등 재교육 프로그램을 내놓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몇 달 교육 받는다고 실제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태안 내에서는 취업할 곳이 없기도 하다. 업체를 차린다 해도 발전소 폐지로 사라지는 도시에서 제대로 운영될지도 미지수다.

더구나 물량으로 노임을 받기에 교육받는 몇 달간은 월급이 안 나온다. 한 달만 월급이 안 나와도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쉽지 않다. 가뜩이나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석탄 하역 일인데, 장기 휴가는 업무상 언감생심이다. 현장에는 늘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김영운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충남서부항운노조 총무부장은 "석탄을 하역할 때는 늘 발전사나 하역사의 통제하에 일을 해왔다"며 "한마디로 가장 밑바닥에서 제일 어려운 일을 해온 게 우리인데 지금처럼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나가야 하는 존재가 우리"라고 주장했다.

김영운 부장은 "발전소 내 다른 직군은 작업장 재배치나 새로 만들어지는 LNG 발전소로 이직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럴 수도 없다"며 "사실상 일용 노동자인 우리는 석탄이 사라지면 마찬가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 석탄 하역기가 석탄홀에서 석탄을 꺼내고 있다. ⓒ충남서부항운노조

석탄 하역 노동자 100% 태안군에 거주

태안에서 석탄 하역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이 가장 심각하나 이직에 대한 의사는 매우 낮다. 정확히는 '이직하고 싶지 않다' 보다는 '이직할 곳이 없다'고 인식하는, 일종의 체념 상태다.

한평생을 해온 석탄 하역이라는 경력이 다른 곳에서는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태안 내에는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일자리를 위해서는 타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곳 생활 터전인 이들에겐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한다.

충청남도 노동자전환지원센터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석탄 하역 노동자 100%가 태안군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또한 73.9%가 부양가족이 3~4명이었다.

이영수 씨의 부인은 작년 태안군 내에 식당을 차렸다. 누군가 운영하던 곳을 인수했다. 부인 혼자 하는지라 점심 장사만 하고 있다. 영수 씨는 석탄 하역 일을 그만두면 식당 일을 돕게 될 듯하다고 했다. 저녁 장사까지 하게 되면 그래도 먹고 살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