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몇 년 전,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시 쉬려고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편의점에서 간식도 샀다. 다시 길을 떠나려 차에 탔다가, 문득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학교도 채 들어가기 전인 어린 시절, 가족 여행을 떠난 날이었다. 그때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식사를 해결하려 휴게소에 들렀다. 내 앞에 아주 뜨거운 국밥이 놓였다. 나는 밥 한 숟가락 먹고 주변을 구경하다가, 또 한 숟가락 먹고 가족과 장난치기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자신이 밥을 다 먹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데려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정말로 자신이 밥을 다 먹자마자 내 한쪽 팔을 잡고 강제로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이 두려워 울부짖었다. 바닥에 발을 끌며 버텼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중년 남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나를 식당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고는 내가 이러는 건 네가 밥을 빨리 먹지 못한 탓이니, 당장 다른 가족에게 사과하라고 말했다. 나는 지쳐서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모두에게 사과했다.
아버지는 내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폭력을 행사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 그와 어느 정도 맞설 수 있게 되자, 그는 회심의 한 방을 날리듯 "너는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내가 어떻게 당신 딸이 아닐 수 있냐?"라고 반론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또 "너는 내 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코웃음을 치며 "내 피가 당신에게서 나온 게 확실하지 않냐?"라고 받아쳤다.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날, 나는 그와 혈연이 아니라는 것, 정확히는 내가 생후 한 달 만에 입양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아버지 셋 어머니 셋
내가 국내 입양인인 걸 알게 되었을 때는 공교롭게도 2020년에 벌어진 ‘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즈음이다. 생후 8개월에 입양돼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이가 자꾸 마음에 밟혔다. 정인이도 이름이 두 개라는데, 나에게도 다른 이름이 있지 않을까. 단순한 의문을 품고 내가 입양됐다고 전해 들은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이는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잘 컸다고 인사하며, 기록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나의 과거를 건네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주 뒤,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양부모와 입양기관 서류상의 양부모가 달라서, 내가 제출한 서류만으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처음 어머니가 입양 의사를 밝혔을 때 나와 나이 차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려됐고, 그러자 어머니는 당신보다 어린 이모에게 나를 데려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입양기관이 보관하던 서류에는 이모 이름이, 출생증명서에는 어머니 이름이 기재됐다. 처음 듣는 내용에 당황한 나에게 기관은 이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호소했다. 이런 무책임하고 허술한 입양기관 덕분에 나는 내 기록을 찾기 위해 어머니와 이모가 가족이란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했다.
한편, 아버지는 나를 입양하는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해외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한국에 1년에 1달 정도만 머물렀다. 그는 내가 돌쯤 되었을 때야 나를 처음 봤다고 했다. 그전까지 당연히 기관에서 아버지를 대면하거나 상담한 일은 없었다. 충격에 빠진 나에게 아버지는 네가 자랄수록 귀찮아졌다고, 파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잔인한 말에 다시 한번 정인이를 떠올렸다. 생후 한 달 만에 입양된 나와 생후 8개월에 입양된 너. 어쩌면 나도 너처럼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입양기관이 입양을 ‘신속한 배치’가 아닌 ‘충분한 숙고의 과정’으로 여겼다면, 입양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돌아봤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구한 건
최근 '입양 골든타임' 담론은 결연 이후 임시 양육과 법원 허가 절차를 더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나는 이 단편적이고 단순한 담론이 몹시 불편하다. 아이가 결연만 잘 되면 디즈니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해피 에버 애프터)' 살 것이라 믿는걸까. 서둘러 새 가족을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입양의 '골든타임'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아이가 가진 권리를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이는 단순히 누군가가 느끼는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둘러 옮겨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고유한 삶의 잠재력과 변화할 힘을 지닌 존엄한 주체다. 아이가 온전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하루빨리 어느 가정에 소속시키는 어른들의 '속도전'이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고 존재 자체로 존중해 줄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야말로 아이가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빈자리를 메워준 어른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손을 들 때, 어머니는 몇 번이고 자기 몸을 던져 나를 막아섰다. 내가 입양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날, 어머니는 펑펑 울면서 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사이가 좋았다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파국 직전까지 갔다가, 그래도 다시 마주 앉는다.
가족 울타리 바깥에도 그 빈자리를 메워준 어른이 있었다. 대학에서 풍물 동아리를 할 때, 고문으로 오신 한 분과의 인연이다. 그분은 내 가족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가족사가 기구했다며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다음 날, 나는 화병이 나 전날 먹은 것을 모두 게워 냈다. 그때 그분은 죽을 사 들고 찾아와 내 몸 상태를 살폈다. 종종 나를 자연으로 데려가 맑은 공기를 쐬게 하고, 맛있는 것을 먹였다. 가끔은 내 계좌에 적지 않은 돈을 보내며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묵묵히 응원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가정폭력 앞에서도, 가족의 비밀을 갑작스레 알게 됐을 때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결국 나를 구한 건 '골든타임'이 아니었다. 나를 온 마음으로 아껴준 사람들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는 입양 과정을 거치며 친생부모에서 기관이나 위탁 가족으로, 그리고 입양 부모에게로 여러 손을 거친다. 자라면서는 가족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과도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아이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때, 이들 중 덜 중요한 사람은 없다. 입양인을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입양가족만이 아니라 친생부모, 그리고 가족 바깥에 있는 사람의 연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법적으로 빨리 확정되는 서류상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평생토록 우리를 지탱하고 이어줄 단단한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입양이란
입양 연구하겠다고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입양이 뭐냐고 묻는 말에 답하기 어렵다. 입양이 무조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주는 관심보다 밖에서 선생님이 주는 사랑이 더 컸다. 그렇다고 입양이 무조건 없어져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애착심이 분명히 있었다.
한국의 입양 정책은 오랫동안 ‘정상 가족’을 만드는 것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운영됐다. 이 낡은 프레임은 연장아로 불리는 이미 성장한 아동과 청소년, 자립 준비 청년 등을 배제한다. 우리는 어른이라는 불완전한 존재 한두 명이 닫힌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의 생명과 미래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위태로운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가 특정한 형태의 가정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기꺼이 아이를 반기고 함께 돌보는 공동체가 곁에 있는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보라 작가의 소설 『아이들의 집』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던져준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돌봄과 양육을 국가와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한다. 그곳에서는 모든 아이에게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고, 머물 집이 있으며, 기꺼이 두 팔 벌려 맞이해 주고 돌보아 줄 다정한 존재들이 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입양을 원한다면, '입양의 신속성'을 넘어 '모두에게 안전한 입양'을, 더 나아가 누구도 고립되지 않는 평온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서류를 서둘러 처리하는 길보다 훨씬 느리고 고단할 거다. 하지만 입양 지연을 이유로 행정 편의주의에 기대는 것보다는 훨씬 단단하고 옳은 길일 거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정보라 작가님의 말을 빌려, 행복했거나 혹은 불행했던 모든 아이, 상처를 안고 살아남아 어른이 된 입양인들, 그리고 끝내 살아남지 못한 모든 작은 생명들에게 깊은 위로와 굳건한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입양 골든타임'이란 착각…'가장 빠른' 부모가 최선인가? [결연 그 이후, 다시 묻는 신중함: '빠른 확정'이라는 또 다른 환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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