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가 잘못한 건 맞는디, 그게 부정선거라는 말은 또 다르제."
지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 일 서울 송파구 일부 투표소에서 시작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여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 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 됐고, 이후 투표 시간이 연장됐다.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했거나 개인 사정으로 오래 기다릴 수 없었던 유권자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일부 시민, 대학생을 중심으로 참정권 박탈에 대한 선관위 규탄 목소리를 내며 시작된 집회는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집권 여당의 절대 지지층이 밀집된 광주에서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국민들이 참정권이 박탈된 것에 분노하면서도 현재 집회가 부정선거나 정권 비판 쪽으로 흐르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날 동구 푸른길 공원에서 바둑을 두던 오모씨(60대·남성)은 "투표하려는 사람을 갖다가 못 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세상에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면서 탄식했다.
이어 "선관위 잘못은 맞는디 부정선거 그거랑 또 다른 말"이라며 "시민들이 하던 시위가 완전 정치쪽으로 넘어갔다"고 혀를 찼다.
대학생들의 선관위 규탄 성명 발표를 지켜봤다는 전남대 간호학과 재학생 김모씨(20대·여성)는 "현재 시위나 집회를 보면 처음과는 다르게 너무 정치적 쟁점화가 됐다"면서 "참정권 박탈을 이야기하던 처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흘러가더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박모씨(40대·남성)는 "지난번 대학생들이 발표한 성명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면서 "선관위가 일을 못하니까 야당에게 좋은 빌미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불신을 갖고 쇄신을 바라는 시민들도 있었다.
동구 금남로 4가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씨(30대·여성)는 "선관위라는 바가지가 줄줄 샌 다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아버렸다"면서 "기본적인 투표용지 출력조차 제대로 못하는데, 다른 일은 제대로 했는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험을 봐도 사람 머릿수에 맞춰 시험지를 준비한다"면서 "투표용지도 제대로 준비 못해 이 난리를 치냐"고 분개했다.
금남로 예술의 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홍모씨(70대·남성)는 "지금까지 선관위가 쌓아온 불신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해체 수준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민들은 재선거에 대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함께 지적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박모씨(30대·남성)는 "투표를 못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근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전투표도 다시 한다고 하면 어차피 관외 투표도 다시 하는 거 아니냐"면서 "그러면 그냥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다시 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돈은 어디서 나서 하고 공휴일은 언제로 또 다시 지정할거냐"고 되물었다.
반면 광주 집회 현장에서 만난 참가자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사전투표 폐지와 부정선거 의혹까지 제기하며 전면 재선거를 요구했다.
광주선관위 규탄 집회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A씨는 "국민의 참정권 자체가 훼손된 사태에 대해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라며 "침묵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집회가 부정선거 음모나 현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빌미로 전락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 총선과 지선 등에서도 문제를 제기해 왔다"면서 "그동안 음모론으로 치부됐지만 지금와서 판단할 때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집회 참가자 B씨는 "지금 정권만 규탄하거나 이번 사태만 수사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런 문제를 밝혀내야 한다"며 "사전투표를 없애고 당일 투표와 수개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흐름을 20대·30대 청년층이 갖는 현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결합한 현상으로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부실선거와 부정선거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예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돼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나마 있는 투표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고 느낀 것"이라면서도 "이번 사안을 부정선거로 연결하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이것은 부실선거이지, 부정선거는 아니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민들의 정치적 구호는 '부정선거'나 '재선거'처럼 쉬운 표현이 될 수밖에 없지만, 정치인들이 그것을 동원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선관위 본연의 기능인 선거 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과도한 규제 기능은 약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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