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유럽 G7 순방 결과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핵, 안보에 관한 몇몇 발언을 읽으며 복잡한 감정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한국 외교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체념이 한 문장 안에 같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하는 말로 들리니 더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대통령의 말처럼 조선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보는 상대가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북핵 문제, 제재, 체제안전보장, 조미관계 정상화는 모두 미국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대통령은 현실을 인정한 뒤 "그래서 미국이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북핵 협상에서 미국의 역할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공존과 평화체제는 결국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합니다.
정전협정 서명 문제는 법률적·역사적 문제에 가깝지만, 정치적 현실은 다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죽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파괴되는 것도, 복구해야 하는 것도 이 땅이지요. 그런데 평화를 만드는 핵심이 미국이라고 말해 버리면, 우리는 다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다루지 못하는 주변자가 되고 맙니다.
더 근본적인 모순은 "우리는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는 표현에 있습니다. 상황을 조성하는 역할만으로는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조력자, 촉진자, 보조자에 머물 뿐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곧바로 "핵심 역할은 미국"이라고 말하고 시작점을 조미정상회담을 돌파구로 상상하는 순간,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성과 전략적 자율성은 흔들립니다.
대통령 스스로도 이 모순을 의식했는지 "비자주적이고 비주체적인 표현일 수 있다"는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설명이라기보다 자기 방어선처럼 들렸습니다. 돌파구가 조미정상회담이라니 참 답답합니다.
"달력을 읽던 사람들"
기시감이 듭니다. 2021년 말부터 상당 기간 한반도 문제를 흔든 말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 '임박론'입니다. 전문가와 언론은 앞다투어 "조만간", "임박"이라는 예언을 쏟아냈습니다. 2월은 광명성절, 3월은 남한 대선, 4월은 태양절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기념일, 5월은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 6월은 전원회의까지 거론됐습니다. 날짜까지 박아 보도한 곳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두 빗나갔습니다. 오보였고, 잘못된 예측이었습니다.
어느 세미나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안 했다, 국장을 치르느라 안 했다, 중국이 말려서 안 했다, 비가 오고 장마가 와서 안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와 독립기념일까지 알아야 할 판입니다. 이게 과연 북한이 어떤 대내외 정책을 세웠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분석입니까?"
어느 생방송에서는 앵커가 제7차 핵실험을 언제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안 합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답했습니다. 방송 뒤에 여러 분이 걱정했습니다. "그러다 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까지 말했겠습니까."
제7차 핵실험 임박론은 단순한 예측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을 읽는 방식의 실패였습니다. 북한의 전략과 정책을 보려 하지 않고 기념일, 행사, 미국 정치 일정, 중국 변수, 날씨와 장마에 의미를 덧씌웠습니다. 분석은 정책 판단이 아니라 달력 읽기에 가까워졌지요. 북한이 무엇을 하려는지보다, 우리가 언제쯤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하는지가 더 크게 보도됐습니다.
"이번엔 조미정상회담 당위론입니다"
2025년 가을부터 비슷한 일을 다시 겪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핵실험이 아니라 조미정상회담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임박론'이라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곧 열릴 수 있다는 예측도 있지만, 더 강한 것은 '열려야 한다'는 당위론입니다. 조미정상회담은 열려야 한다, 열리면 뭔가 풀릴 것이다, 한국은 그것을 촉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반도 문제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제7차 핵실험 때는 "언제 하느냐"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왜 해야 한다고 믿느냐"가 문제입니다.
지난해 경주 APEC을 계기로 트럼프의 방한과 김정은과의 만남이 성사될 것 같은 희망고문이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조미정상회담이 한반도 문제 전체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제7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안 합니다"라고 말했다면, 이번 조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안 합니다"를 넘어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대화를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조미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정상회담입니다. 원칙과 조건, 절차가 없는 만남입니다. 한반도 평화의 주체와 방향을 세우지 못한 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라는 장면 하나에 모든 기대를 걸어버리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정상회담은 대화가 아니라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중 정상이 만나도, 시진핑이 평양을 방문해도, 이란 전쟁이 멈췄다는 소식이 들려도 일부 위정자와 전문가, 언론의 눈에는 조미정상회담밖에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입으로만 한반도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다시 '빅딜'과 '깜짝 만남'의 환상을 키우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언론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조차 G7 정상회의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트럼프의 관심과 관여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중동에서의 평화 정착과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트럼프의 노력을 평가한 뒤, 한반도에서도 지속 가능한 평화가 정착되도록 미국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한 셈입니다. 짧은 외교적 대화였다 해도 그 말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메시지는 결코 짧지 않습니다.
"활용과 의존은 다릅니다"
냉정하게 보면 트럼프 변수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은 여전히 결정적 변수입니다. 대화가 열린다면 조선은 남북 채널보다 조미 직접 담판을 더 중시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대통령의 개인적 관심이 교착 국면을 흔들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트럼프를 배제하자"는 접근은 현실성이 약합니다.
그러나 트럼프를 활용하는 것과 트럼프에게 기대는 것은 다릅니다. 더 현실성이 없는 것은 조선이 지금 기존의 비핵화 문법 안에서 미국과의 대화에 나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입니다. 대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말하면서, 정작 조선의 생각과 의도를 읽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 어떤 조건을 거부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의 6월 18일 담화가 바로 그 점을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담화는 G7 정상회의의 비핵화 주장을 "시대착오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며 "언제 가도 성사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핵은 공화국법이 부여한 "주권수호의 강위력한 수단"이고 "평화보장의 초석"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핵보유는 "핵심리익"이며, 비핵화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불퇴의 선"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 표현들을 과장된 수사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조선은 핵을 협상 카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 법적 지위, 체제 생존, 전략적 억제의 문제로 재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분명해집니다. 지금 조미정상회담을 한다면 무엇을 의제로 삼을 수 있습니까. 미국은 무엇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조선은 무엇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비핵화가 "종결된 사안"이고 핵보유가 "불퇴의 선"이라면, 정상회담은 비핵화 담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당위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장면을 붙드는 일입니다.
물론 이 담화가 대화 가능성 자체를 영원히 닫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선은 대화를 거부한다기보다, 기존의 비핵화 문법으로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이 여전히 비핵화를 입구에 놓고 조선은 핵보유국의 핵심이익을 출발점에 놓는다면, 정상회담은 시작되기도 전에 의제에서 충돌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준비 없는 정상회담을 띄우는 것은 평화전략이 아니라 또 다른 당위론입니다.
"목표는 있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비핵화 관련 대통령 발언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옆에서 누가 거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 옛날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동결과 중단부터 하자는 말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1990년대 제네바 기본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반복돼 온 단계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조선의 핵보유 현실을 더 노골적으로 인정한다는 언어상의 변화 정도이지요.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현실을 바꾸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북핵 현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전략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 발언에는 인식의 현실화는 보이지만, 접근 방식의 새로움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핵물질 해외 반출 금지, ICBM 기술개발 중단, 이후 감축, 장기적 비핵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항목들은 작동 가능한 전략이나 정책이 아니라 희망하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어야 조선이 테이블에 앉습니까. 동결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조선은 왜 중단합니까. 무엇을 받고 중단합니까. 군사적 위협은 어떻게 낮춥니까. 어떤 제재를 어떻게 조정합니까. 누가 어떻게 검증합니까. 위반 시 어떤 절차를 적용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습니다.
중동의 사례를 한반도에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도 위험합니다. 미국은 이란과의 충돌에서 군사적 압박과 제재, 봉쇄, 협상 압력을 동시에 사용했고, 그것을 외교의 성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다르게 읽습니다. 조선의 눈에 이란은 핵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압박을 받고 협상장에 앉은 국가입니다. 이란은 대화의 유인이 아니라, 핵보유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반면교사일 수 있지요.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미정상회담 당위론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스스로 약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조선이 한국을 독자적 행위자가 아니라 미국의 종속 변수로 본다면,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조미회담을 대신 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인식 자체를 깨는 일입니다. 조미관계를 풀어 한국을 움직이는 구도에 한국이 기대는 순간, 한국은 한반도 평화의 주체가 아니라 우회 대상이 됩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피스메이커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트럼프에게는 듣기 좋은 말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과와 자의식을 자극하는 외교적 표현이니까요.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관점에서는 너무 가볍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한국은 평화의 설계자가 아니라 요청자로 전락합니다. 한반도 문제의 주어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합니다. 평화를 만들겠다는 말보다, 평화를 만들어 달라는 말이 앞서는 셈입니다.
현재까지 트럼프의 대화 관심 발언은, 조선을 움직일 만한 실제 행동을 전제하지 않은 정치적 언급에 머물고 있습니다. 조선이 움직이려면 말이 아니라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조건 없는 관심, 준비 없는 정상회담, 한국 구상 없는 조미 담판은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또 다른 장면 정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상회담은 전략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조선은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그렇게 말한다고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선이 적대를 제도화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적대를 제도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 관리로 전환하는 일입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과거처럼 당연시할 수 없다면, 이제는 평화공존을 제도와 절차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출발은 거창한 정상회담이 아닙니다. 연락선 복원, 군사적 우발충돌 방지, 접경지역 긴장 완화와 위기관리, 해상과 공중에서의 충돌 방지 장치 등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이행과 같은 구체적인 평화관리 조치입니다. 여기서 선제적 이행은 조선의 상응 조치를 기다리자는 뜻이 아닙니다. 탈상호주의에 기초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위험 감소 조치부터 먼저 취하자는 뜻입니다. 평화는 선언보다 관리에서 시작됩니다. 신뢰는 사진보다 절차에서 생깁니다.
비핵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의 빅딜 환상이 아니라, 조선이 핵을 쓸 필요도 더 만들 필요도 없다고 판단할 조건을 만드는 일입니다. 위험 감소와 군사적 신뢰, 정치적 신뢰가 쌓여야 물리적 동결과 축소도 가능합니다. 궁극적 비핵화는 선언의 결과가 아니라 조건의 산물입니다.
미국의 건설적 관여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주도는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의 보증자와 촉진자, 조정자가 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의 설계자가 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트럼프에게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설계한 평화공존의 틀 안으로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트럼프식 거래주의는 한국의 비토권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조미정상회담이 열려 미국이 본토 타격 능력 제한과 조선에 대한 불가침 보장을 맞바꾸고, 그 대가로 종전선언, 제재 완화, 외교관계 정상화까지 거래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야말로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조미 합의의 형태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본토 안전을 얻고, 조선은 핵보유국 지위의 사실상 인정과 체제안전 보장을 얻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그 거래 안에 한국이 없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운용, 단거리·중거리 미사일 위협, 재래식 군사위협, 우발충돌 방지 장치에 대한 언급 한마디 없는 상태에서 조미 간 합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 경우 한국은 방위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미일 안보협력 같은 압박 앞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토권은 선언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토권은 준비된 자의 특권입니다. 한국 안보가 거래 대상이 될 경우 미국이 치러야 할 전략적 비용을 미국의 셈법 안에 미리 넣어두어야 합니다.
조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조선 역시 통미봉남을 더 정교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큽니다. 조미 군축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고, 한국을 의제 밖으로 밀어내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은 조미회담이 열린 뒤에 끼어들겠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회담이 열리기 전에 의제를 먼저 설계해야 합니다.
핵위험 감소, 재래식 군비통제, 단거리·중거리 미사일 위협, 전술핵 운용, 검증과 위반 절차, 접경지역 긴장 완화가 함께 들어간 평화관리 패키지를 미국의 회담안에 미리 박아 넣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이 말할 수 있는 현실적 자율성입니다.
한국은 조미대화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보가 거래 대상이 되지 않게 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의 단독 설계자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한반도 평화의 조건을 쓰는 공동 설계자, 거래의 비용을 계산하게 만드는 당사자, 한국 안보의 하한선을 못 박는 비토 행위자는 되어야 합니다.
보도된 표현과 대통령의 설명만 놓고 보면, "한국의 평화구상에 미국을 결합한다"가 아니라 "미국의 피스메이커 역할에 한국이 기댄다"는 말로 들립니다. 제 착각인가요. 미국을 향해 우리가 제안할 평화관리 패키지의 구체적 명단이 지금 외교부와 안보실 책상 위에 단 한 줄이라도 준비되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모르는 전략적 설계가 따로 있습니까. 있다면 누가 좀 알려주십시오.
제7차 핵실험 임박론은 빗나갔습니다. 조미정상회담 당위론도 같은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더 큰 문제는 예측이 맞고 틀리고가 아닙니다. 한반도 문제를 다시 남의 정상회담에 맡기는 사고방식입니다. 평화를 말하면서 평화의 주체를 잃는 일입니다. 자율성을 말하면서 의존의 문법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정상회담은 수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전략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트럼프는 한반도 평화의 변수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주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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