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의 처벌은 얼마나 무거워야 정의로운가?
삼겹살 한 점 구워 먹으며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대한민국 서민의 가장 소박한 낙이라는데, 요즘 뉴스를 보면 그 삼겹살조차 뒤통수를 친다. 지난 6년 동안 대형마트에 돼지고기를 대주던 업체들이 매주 견적가격을 서로 주고받으며 담합을 벌였고, 그 규모가 검찰 수사결과 무려 1조2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조사가 시작되자 직원들은 대화방을 통째로 없애고 "일단 폭파하고 나중에 다시 하자"고 서로 다독였다니, 이쯤 되면 첩보물 각본이 따로 없다. 다만 주인공이 국가정보기관 요원이 아니라 돼지고기 영업담당자라는 점이 서글플 뿐이다.
국민 삼겹살의 배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처음 이 사건을 적발했을 때 매긴 과징금은 31억 6500만 원. 검찰이 밝혀낸 담합규모가 1조 2000억 원이라면, 과징금은 그 400분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초등학생도 눈치 챌 산수다. 도둑질로 1만 원을 벌었는데 벌금이 25원이라면, 그 도둑은 감옥이 아니라 은행창구로 달려가야 할 판이다. 게다가 공정위는 강제수사권이 없어서 자료를 지워버리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고 하니, 애초부터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눈을 가리고 시작한 셈이다.
이 나라에서 담합은 삼겹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만 해도 설탕, 밀가루, 전분당까지 줄줄이 담합이 적발됐고, 식료품 원재료 담합 과징금만 이미 1조 8000억 원을 넘어섰다니, 밥상 앞에 앉은 국민은 매일 세 번씩 담합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는 교복 값 담합이었고, 이제는 밥상물가 전체가 담합의 각축장이다. 담합공화국이라는 오래된 별명이 부끄럽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국이라면 매출의 10분의 3까지 뜯어간다
그럼 바다 건너 영국은 어떻게 다스릴까. 영국의 경쟁시장청은 담합이 적발되면 회사의 전 세계 매출액을 기준으로 최대 10퍼센트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이익"이 아니라 "매출액"이라는 점이다. 이익이야 회계장부를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지만, 매출액은 숨기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담합사건은 대체로 처벌기준의 위쪽, 즉 관련매출의 최대 30퍼센트에 이르는 수준에서 시작한다고 하니, 한국기업이 이 계산법을 들으면 아마 삼겹살이 아니라 간이 콩알만 해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 공정위도 최근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담합 과징금 상한을 지금보다 대폭 올려 매출액의 30퍼센트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최근 내놓았다. 뒤늦게나마 영국식 셈법에 눈을 뜬 셈인데, 이 계획이 국회문턱을 넘어 실제로 자리 잡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사도 자격을 잃고, 오래 다니던 회사도 못 들어간다
영국의 무서운 점은 벌금만이 아니다. 담합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회사 이사는 최대 15년 동안 이사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 15년이면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고도 남을 세월이다. 게다가 정부 조달 계약에서 최대 5년간 배제되기도 하니, 나랏돈으로 벌어먹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전박대를 당하는 셈이다. 형사처벌까지 가면 최대 5년의 징역과 상한 없는 벌금이 기다린다. 벌금에 상한이 없다는 대목에서, 한국의 과징금 상한 30퍼센트 논의가 오히려 온건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국에서도 담합에 가담한 기업총수나 임원에게 개인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이 최근 논의되고 있다니, 방향은 비슷하다. 다만 실제로 이사 개인이 15년씩 업계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본 적은 아직 없다. 한국의 처벌이 회사라는 법인 뒤에 숨은 사람에게까지 닿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빨리 자백하는 자가 산다
영국에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라는 것이 있다.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털어놓는 회사는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고, 관련 임직원까지 형사처벌과 이사 자격 박탈에서 벗어난다. 다만 최근 제도를 손질하면서 늦게 신고할수록 혜택이 확 줄어들도록 바꿔놓았다. 자백은 일등만 후하게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담합에 가담한 회사들 사이에 "누가 먼저 배신하나" 하는 은밀한 눈치 게임이 벌어지게 만드는 구조인데, 도둑들끼리 의리를 지키기보다 서로 등에 칼을 꽂도록 유도하는 이 발상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한 제도설계라 할 만하다.
공정위 없이도 고발할 수 있다면
한국에는 오랫동안 공정위만이 담합사건을 검찰에 넘길 수 있는, 이른바 전속고발권이라는 것이 있었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나 협력업체가 아무리 억울해도 공정위가 움직이지 않으면 형사 절차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 구조였다. 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가 딱 하나뿐이니, 그 문지기와 친분이 있는 쪽이 유리한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최근 정부가 이 제도를 46년 만에 전면 손질해, 국민이나 기업이 일정 수 이상 모이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도 검찰에 직접 고발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반가운 소식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애초에 소비자가 직접 소송을 걸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었으니, 한국은 이제야 그 문을 조금 넓히기 시작한 셈이다.
삼겹살 한 점에도 정의는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영국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크게 물리고, 개인에게 이사 자격 박탈과 징역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며, 빨리 자백하는 쪽에 확실한 보상을 준다. 그리고 문지기 하나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과징금이 실제 피해에 비해 우스울 정도로 작았고, 개인에 대한 책임은 흐릿했으며, 공정위라는 단 하나의 문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 이 세 가지 모두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과징금 상한을 올리고, 총수 개인에게 과징금을 물리려 하고, 전속고발권도 손질하려 한다.
방향은 옳다. 다만 방향만 옳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재계의 반발이 벌써 거세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이 개혁이 흐지부지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삼겹살 한 점 굽는 서민의 밥상까지 건드리는 담합이 400분의 1짜리 벌금으로 끝나는 나라에서는, 기업이 몸을 사릴 이유가 없다. 영국의 이사들이 15년짜리 자격박탈을 두려워하며 몸을 사리듯, 한국의 기업들도 진짜로 겁을 낼만 한 벌을 받아야 다음번엔 텔레그램 대화방을 폭파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국민의 밥상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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