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6년 SIPRI 연감'에서 올해 1월 기준 9개의 핵보유국의 핵탄두 수 추정치를 내놨다. 보유량 순서를 보면, 러시아 5천420기, 미국 5천42기, 중국 620기, 프랑스 370기, 영국 225기, 인도 190기, 파키스탄 170기, 이스라엘 90기, 조선(북한) 60기 등이다.
조선의 핵무기 보유량이 제일 적지만, 한국은 조선의 핵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관계가 가장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불가역적인 핵시대에 접어든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의 조건이 '남북관계(한조관계) 재설정'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적화통일론도, 전시 무력편입론도 내려놓았나?
남북관계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모델은 '통일지향적인 적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쌍방이나 어느 한쪽이 상대에 대해 적대성을 품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상대를 제거하고 자신의 체제로 통일하겠다는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악의 형태는 1950년 조선의 전면 남침으로 발현된 바 있고, 이후로도 남북관계에 잠재된 문제였다. 특히 조선이 핵무력을 앞세워 '적화통일'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는 우리에겐 가장 심각한 '실존적 위협'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시나리오는 이랬다.
'1단계로 조선이 파괴력이 낮은 전술핵무기를 동원해 한국에 기습적인 핵공격을 가하거나 위협한다. 2단계로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의 대도시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다. 3단계로 조선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에 핵미사일 공격을 가해 한미 연합 전력을 무력화하고 특수부대를 대거 투입해 한국의 주요 시설을 장악한다. 끝으로 조선이 지상군을 대거 투입해 한반도 무력통일을 완성한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주장이 맹위를 떨쳤던 데에는 조선이 호심탐탐 '남침 통일'을 노리고 있다는 통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은 1950년에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이러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4년 1월까지만 하더라도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핵무력을 앞세워 한국을 조선의 영역에 편입하겠다는 발언도 했었다.
그런데 조선은 최근 들어 남북관계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조선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노동당 규약에서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으로 제시했던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또 2026년 3월 개정 헌법에서 기존 헌법에 있던 "북반부의 사회주의 완전 승리,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 실현"이라는 조항을 빼고 영토조항은 신설했다.
유엔사는 왜 '방어적 조치'라고 했을까?
김정은 위원장이 2024년 10월 7일에 내놓은 발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다"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즉시 행동으로 조선은 옮겨졌다. 조선은 2024년 11월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철도·도로를 폭파하고 그 위에 방어벽을 설치했다. 그 이후로는 들어서는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철조망 설치, 지뢰 매설을 위한 '불모지화'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이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현재 추진 중에 있는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를 질적으로 완결"하라고 지시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를 두고 유엔사령부는 '방어적 조치'에 해당함으로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실제로 조선의 장애물 설치는 공격용이라기보다는 방어적 성격이 짙은 것이다. 상기한 일련의 조치는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북진'을 막겠다는 취지도 있지만, 조선군의 '남진'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물리적 조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본 연재의 주제인 조선의 핵무력의 용도가 '현상 변경'(통일)이 아니라 '현상 유지'(두 국가)로 확고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조선은 한국, 혹은 한미동맹이 침공하면, 핵무력을 앞세운 '통일성전'으로 되받아치겠다고 위협했었다. 하지만 '두 국가론'을 공식하면서 화법이 달라졌다. 한국이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시도하면, 핵무력을 동원해 한국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고 위협한다.
위협의 성격이 바뀌었다
이렇듯 핵무기를 비롯한 조선 위협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우리에게 '최악의 조선'은 조선이 핵무력 강화에 매진하면서 사회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국시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은 통일 자체를 내려놓았다. 이는 '강압과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품고 있기에 우리로선 '실존적 위협'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고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은 유사시 선제 핵공격 독트린을 채택하면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핵위협을 가하고 있다. 조선이 "한국을 동족에서 배제하겠다"는 입장도 유사시 핵무기 사용 위협을 높여 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 위해 나온 것이다.
위협의 성격이 바뀌고 있는 만큼, 한국의 대응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과 자주국방력을 통해 대북 억제력을 갖추려는 노력은 지금까지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쌍방이 억제에만 의존하는 평화는 매우 취약하다. 억제와 더불어 '관계에 의한 평화'에도 주목해야 할 까닭이다.
'통일지향적인 적대 관계'가 남북관계의 최악의 모델이라면, '통일지향적인 평화 관계'는 최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에 다가서려면 현재의 재구성이 필수적이다. '적대적 현상 유지'를 '평화적 현상 유지'로 바꾸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미 조선은 한국을 국가로 간주하면서 '적화통일론'이나 '전시 무력편입론'도 내려놓겠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면서 '흡수통일론'이나 '전시 무력통일론'을 실질적으로 내려놓아야 할 때이다.
이를 통해 분단 이래 남북관계가 품어온 가장 원초적이고도 근본적인 적대성을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야말로 생존의 조건을 굳건히 하면서 대한민국의 자강을 드높이고 첩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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