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도둑을 잡으면 어떻게 가둘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왜 가둬야 하는지부터 따져 묻는 사람이 있다. 루스 리튼하우스 모리스(Ruth Rittenhouse Morris, 1933~2001)는 후자였다. 그것도 아주 끈질기게.
바이올린 켜던 아이, 감옥을 켜다
모리스는 1933년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아버지와 함께 빈민가 선교현장에서 연주를 했다고 전해진다. 음악으로 시작한 인생이 결국 형벌제도와 씨름하는 인생으로 흘러간 것을 보면, 인생이란 악보 없는 즉흥곡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오벌린대학교에서 음악과 사회학을 함께 공부했고,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미시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학위만 늘어놓아도 숨이 가쁘지만, 본인은 이 모든 것을 베트남전쟁과 인종차별, 가난에 분노하는 데 썼다.
1968년 캐나다로 이주한 뒤 모리스는 형벌제도라는 거대한 짐승의 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결론은 단순했다. 응보적 정의, 즉 "누가 했나, 어떻게 벌 줄까"를 묻는 전통적 사법체계는 비싸고 부당하고 비도덕적인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피해자가 무엇을 잃었는지, 그 사람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는 게 그녀의 진단이었다. 감옥은 범죄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또 다른 범죄였다.
회복적 정의도 모자라다
모리스는 하워드 제어의 책과 메노나이트 교단이 주도한 회복적 정의운동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갔다. 회복적 정의라는 말 자체가 "원래 정의로운 상태가 있었고 그걸 복원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가난과 차별로 누더기가 된 사회에 복원할 정의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낳은 구조적 불의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슬그머니 빼놓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전환적 정의'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북미 원주민의 치유의 원(서클) 전통과 뉴질랜드의 공동체 회의 모델을 빌려와,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상처와 책임과 사회적 뿌리를 함께 들여다보게 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전환적 정의는 "범죄가 풀어놓은 상처의 힘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들이 진정으로 창조적이고 치유적인 해법을 찾는데 쓰는 것"이었다. 어려운 말 같지만 풀어보면 단순하다. 벌 주는 데 쓰던 에너지를 고치는 데 쓰자는 말이다.
두 번 해고당한 공무원
1979년 온타리오 주 정부는 모리스에게 토론토 보석 프로그램 설립을 맡겼다. 그녀는 토론토 최초의 보석 거주시설과 출소자를 위한 중간시설을 세웠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이런 공적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인권을 지키겠다는 고집 때문에 사법관련 일자리에서 두 차례나 해고당했다는 사실이다. 모리스는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이야기했다. 성공만큼이나 실패도 중요하다는 게 그녀의 신조였으니, 해고는 실패가 아니라 원칙의 증거였던 셈이다.
그녀가 속했던 퀘이커 감옥·사법위원회는 1981년 세계 최초로 감옥 폐지를 공식 지지한 종교단체가 되었다. 선언문은 이렇게 말한다.
"감옥제도는 폭력과 사회적 불의의 원인이자 결과다. 역사를 통틀어 수감자의 대다수는 힘없고 억압받는 이들이었다. 우리는 인간을 가두는 일이 노예로 만드는 일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며, 가두는 자에게도 갇힌 자에게도 똑같이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깨닫고 있다."
1983년에는 토론토에서 국제감옥폐지대회를 창설해 나이지리아부터 코스타리카까지 격년으로 이어지는 국제연대를 만들었고, 1990년에는 '리튼하우스: 새로운 비전'이라는 단체를 세워 1995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육책임자로 일했다.
2001년 5월 캐나다정부는 그녀에게 캐나다 훈장을 수여했다. 공로문은 "남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본보기"라고 적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모리스는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훈장을 받고 넉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평생 감옥의 벽을 무너뜨리려던 사람이, 끝내 자기 몸이라는 또 하나의 감옥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한 셈이다. 이런 아이러니에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한바탕 웃었을 것이다.
한국이 새겨볼 대목
여기서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가 몇 시간 만에 무산된 사건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날 이후 한국사회는 누구를 처벌할지, 어떤 죄목으로 가둘지를 놓고 들끓었다. 모리스의 질문을 빌리면, 이 모든 소란에서 정작 빠진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다쳤는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려면 사회는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뒷전이다.
한국의 사법담론은 유독 응보 일변도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형량의 숫자가 곧 정의의 척도가 된다. 그러나 모리스가 평생 보여준 것은, 처벌의 강도와 사회의 치유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가해자를 깊은 감옥에 가둔다고 해서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리스라면 한국사회에 이렇게 되물었을 법하다.
“계엄을 선포한 자들만 벌하면 끝나는가?
아니면 그런 시도가 가능했던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하는가?”
전환적 정의의 발상은 거창한 제도 개혁만을 뜻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가정 문제처럼 일상의 갈등에서도 응보 대신 치유와 책임, 구조적 원인을 함께 다루는 접근이 한국에도 조금씩 도입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변두리의 실험에 머물러 있다. 모리스가 두 번 해고당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기존 체계와 불편한 마찰을 감수할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감옥의 벽을 허물자는 말이 아직 낯설게 들린다면, 적어도 처벌만이 정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그녀의 한마디만큼은 곱씹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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