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습니다. 회사가 거대한 힘 가진 거 압니다.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있어요. 근데 잘못됐으니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겁니다. 우린 스리랑카 노동자를 대표하지만, 모두를 대표합니다. 우린 모두 노동자로 같고, 이건 모두의 조건을 나쁘게 합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노동자 다누스카(44) 씨가 5일 오후 울산 HD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공동행동대회' 집회에서 <프레시안>과 만나 말했다. HD현대중공업에서 일한 지 3년째인 그는 지금 한국에서 투쟁 중이다. 지난 5월, 회사가 강요한 '기본급 삭감'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이건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있다.
이날 같은 뜻으로 집회에 참석한 스리랑카 노동자는 2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누스카 씨는 이들을 대의하는 대표자 10명 중 한 사람이다. 현대중공업의 이른바 '차별 계약'은 이주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서명을 거부하며 가장 먼저 움직였다. 앞서 울산에서 두 차례 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은 이날 세 번째 집회도 이어 갔다.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과 이주노동자 800여 명이 현대중공업 정문에 모여 "불공정 계약을 철회하고 임금 삭감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스리랑카,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함께했다. 집회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 및 사내하청지회, 울산이주민센터가 공동주최했다.
식대 56만 원 공제에 성과급 0원 차별
이번 차별 계약의 피해자는 현대중공업에 고용된 'E-7-3' 비자(일반기능인력) 노동자다. 정부는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은 2022년경, 용접공, 전기공, 도장공 등 전문 기술직 이주노동자를 대거 유입하는 정책을 폈다. 그렇게 2023년, 1600명 넘는 'E-7-3'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해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임금 차별과 부당 대우는 이때부터 쌓여 왔다. 계약서상 기본급은 280여만 원이었으나, 식대 등으로 56만 원을 공제해 실상 최저임금에 가까운 기본급을 받았다. 이들을 제외한 원·하청 노동자는 모두 무료로 점심, 저녁을 먹고 있었다.
지난 2월엔 이들만 성과급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반면, 원청 정규직은 평균 1721만 원, 하청 내국인 노동자는 920~1035만 원, 하청 이주노동자는 465~520만 원 등의 성과급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 5월 27일, 현대중공업은 기본급 대폭 삭감을 골자로 한 새 근로계약서 체결을 요구했다. 근속연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한 노동자는 기본급 23만 8400원이 삭감됐고, 이에 따라 통상시급 기준 1021원이 삭감됐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계약을 거부하자 관리자의 압박이 시작됐다. 이주노동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사인 안 할 거면 사직하라", "앞으로 재계약하지 않겠다", "다른 곳에 취업 못 하게 하겠다"라며 엄포를 놨다. 또한 서명한 이들만 식당에서 밥을 무료로 먹을 수 있게 차별 대우를 했다. 지난달 중순 투쟁이 본격화 배경이다.
첫 연대발언에 나선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같은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이 일한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이 차별받아야 하나' 이 말을 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조를 만들 때 했다"며 "23년 후인 지금, 이 말을 이주노동자들이 한다. 2003년 그때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이라 불렀듯, 오늘 이 자리는 이주노동자의 인간 선언이 선포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도 무대에 올라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을 덜 주고 계약을 달리하는 건 인종차별이고, 균등대우 원칙 위반"이라며 "조선업을 비롯한 수많은 산업 현장이 이주노동자 없이 안 굴러가는데, 세계적 기업이라는 현대중공업에서 이런 차별을 해도 되느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휴일 반납하고 울산 모인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의 참여도는 뜨거웠다. 투쟁 구호가 나오면,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힘을 줘 큰 소리를 내질렀다. 일부는 붉은색 깃발 십수 개를 단체로 연신 흔들었다. 국적 별로 삼삼오오 모여 앉은 현장 곳곳에선 각국의 투쟁 구호가 동시 다발로 들렸다.
현대미포조선에서 7년, 현대중공업에서 7년을 일한 베트남 노동자 까인진(37) 씨는 동료 7명과 함께 참석했다. 그는 "오늘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갑자기 특근이 잡혔으나, 가지 않고 이곳에 왔다"며 "두렵지 않다. 기본급 삭감은 정말 부당하다.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지 말고 공평하게 대해달라"고 말했다.
스리랑카 노동자 대표로 나온 차리타 씨가 발언할 땐, 수십 명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약속한 듯 주먹 쥔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으며 "투쟁"을 한국어로 외쳤다. 차리타 씨가 "우리가 원하는 건 나쁜 계약을 철회하는 것"이라며 "끝까지 함께 싸울 겁니까?"라 물은 후다.
차리타 씨는 "한국 동료가 '회사는 힘이 세다. 그러니 이런 거 하지 말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며 "나는 그에게 '회사의 힘이 누굽니까? 회사의 힘은 이 건물입니까? 이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3년 동안 (식대 공제 등으로) 월급을 삭감당해 왔다"며 "이 회사는 우리를 노예로 본다. 동지들, 앞으로 노예처럼 일할 겁니까?"라 물었다.
베트남 노동자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 원서현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활동가는 "우리는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다! 한국 조선업의 인력 부족을 메우고, 선박을 만들어내며,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당당한 노동자다!"라 외치며, "우리의 노동이 당당한 만큼, 우리의 건강을 보호받고 법이 정한 노동권을 보장받을 자격이 있다!"고 소리쳤다.
라셰드 이주노조 사무국장도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대신해 무대에 올라 "우리가 '개발도상국'에서 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값싼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노동하기 위해 나라를 떠났지, 목숨을 바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꿈, 자존심, 그리고 인간의 권리를 결코 두고 오지 않았다"며 "여기서 죽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모욕을 견디기 위해 온 것도 아니며, 우리의 노동, 능력 그리고 땀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왔다"고 강조했다.
펜 들고 노조 가입... 국경 넘어선 연대
스리랑카 노동자 대표단들은 무대에 올라 지난 4일 회의를 거쳐 금속노조 조합원 가입을 결의한 사실을 알렸다. 이날 현장 곳곳에선 집회 주최 측이 들고 다니며 받은 조합원 가입 신청서에 서명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집회가 끝난 후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서부문까지 "노동자는 하나다"가 적힌 현수막과 깃발,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백 명이 넘게 모여 행진한 스리랑카 노동자 대열에선 악기 소리와 스리랑카어의 '투쟁' 구호가 쉬지 않고 반복됐다.
부족한 휴일 시간을 쪼개어 이들을 지지하러 온 이주노동자도 적지 않았다. 경기 포천에서 온 방글라데시인 샤히둘 이슬람 씨는 "어제 4시간이 걸려 서울 숙소에 도착했고, 동료들과 잠시 눈을 붙이고 오늘 새벽에 울산으로 출발해 다시 자정이 넘어 포천에 도착한다"며 "남 일이 아니란 생각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서 울산에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동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은 행진을 마친 후 "이 문제를 더 이상 갈등과 대립으로만 끌고 갈 게 아니라, 정부와 현대중공업 사측, 현대중공업지부가 함께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 테이블을 즉각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며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임금체계와 노동조건, 차별 개선 방안을 함께 논의해 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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