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의 문화재 반환 목록 준비와 소네 아라스케의 반출 문화재
지난 칼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당시 소네 아라스케는 부통감과 통감을 지내면서 2,000여 권의 고서적을 손에 넣고 석굴암 오층석탑도 반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은 이에 대한 반환을 요청한다. 이하에서는 한일회담의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소네 아라스케가 반출한 고서적과 석굴암 오층석탑의 반환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한일 양국은 1957년 12월 31일에 문화재 반환 문제와 관련한 구두전달사항을 비롯하여 일본의 구보타 발언 및 역청구권 철회, 억류자 상호 석방 등을 합의했다. 한국정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일본국정부는 현재 소유하고 있는 한국 미술품으로 즉시 인도가 가능한 것을 대한민국에 건네고자 하며, 그 외의 한국 미술품의 향후 인도에 대해서는 전면회담에서 토의 및 처리하기로 한다"는 구두전달사항을 토대로 문화재 반환 교섭을 준비한다(☞ 칼럼 제1부 ④ 참조).
한국정부는 주일대표부에 '일본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반환받을 한국예술품 목록을 2월 1일까지 확보할 것', '제1차 반환은 2월 말까지이며, 남은 것은 전면회담에서 논의할 것'이라는 방침을 전달한다. 이와 함께 반환받을 문화재를 정리한 '피탈미술품목록'을 작성하면서 관련 자료를 주일대표부에 전달한다.
'피탈문화재 중 일부의 설명서'라는 자료를 보면 반환받아야 할 유물로 양산부부총 유물, 낙랑 관련 유물, 오대산 사고 조선왕조실록, 고려자기, 오구라 컬렉션과 함께 소네 아라스케가 반출한 유물을 언급하고 있다.
3. 경주 석굴암 내 대리석 사리탑 1, 감불 2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의 '조선의 미술'(「朝鮮の美術」),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의 '경주 유적'(「慶州遺跡」)에 의하면, 1909년경 소네(曾彌) 통감에 의하여 반출되었다고 함.
한국정부는 이와 같은 준비를 통해 제4차 회담 개최 후 소네 아라스케 관련 유물을 포함하여 여러 문화재를 돌려받을 생각이었지만, 일본 측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문화재 반환 교섭은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일본 측은 문화재소위원회 개최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한국 측이 설득하여 이를 개최했지만, 일본 측은 '정부 훈령을 받지 못했다', '문화재 반환 문제 관련 기본방침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문부성과 문화재보호위원회를 설득해야 한다' 등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한국 측은 1958년 10월 25일에 열린 제5회 문화재소위원회에서 '제1차 반환청구 한국문화재 항목'을 제시하면서 일본 측의 적극적인 태도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칼럼 제1부 ⑤ 참조). 이 항목은 '제1항 지정문화재(「중요미술품」을 포함)', '제2항 소위 조선총독부(「조선고적연구회」)에 의해 반출된 것', '제3항 소위 통감・총독 등에 의해 반출된 것', '제4항 경상남북도 소재 분묘 그 외 유적에서 출토된 것', '제5항 고려시대 분묘 그 외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항목의 구체적인 목록은 알 수 없지만, 소네 아라스케가 통감을 지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유물은 제3항에 해당한다. 제3항의 수량은 104개인데, 그가 반출한 것으로 생각되는 석굴암 오층석탑이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측이 '제1차 반환청구 한국문화재 항목'을 제시하는 등 일본 측을 구체적인 논의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일본 측은 여전히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 문화재 반환 논의는 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제4차 회담이 막을 내린다.
한국 측, 소네 아라스케 반출 고서적 언급
제5차 회담이 열리자 한국 측은 제1회 문화재소위원회(1960년 11월 11일)에서 '문화재 반환의 7항목'을 일본 측에 제시한다. 이 항목은 '제1차 반환청구 한국문화재 항목'에 '제6항 서화, 전적(고서) 및 지도원판'과 '제7항 개인 소유 문화재'를 추가한 것이다. 이 또한 7개의 항목만 제시하고 때문에 각 항목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화재가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제3항, 그리고 '전적(고서)'가 포함된 제6항에 소네 아라스케가 반출한 석굴암 오층석탑과 고서적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제5차 회담에서 한국 측의 요청으로 문화재 전문가가 모여 문화재의 소재 파악, 반출 경위 등을 논의하는 전문가 회의가 합의되었고 두 차례 열렸다. 제2회 전문가회의(1960년 5월 8일)에서는 제1항부터 제3항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한국 측은 제3항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토 히로부미, 데라이치 마사타케와 함께 소네 아라스케 관련 고서적을 언급했다.
대표적인 예로서 이등박문이 반출하여 일본 황실에 "진상"한 고려자기를 지적하면서 아측은 한말에 있어서 일본인에 의한 대규모의 고분 도굴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전적(典籍)으로서는 소네(曾禰) 통감의 반출본이 일본 궁내성 도서료(宮內省図書寮)에 있으며,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県)에는 데라우찌(寺内) 총독 문고가 있어서 그 장서가 2만 3천 권이 넘는다고 지적하였고 그 이외에도 데라우찌가 수집한 불상의 소재를 문의하였다.
위와 같이 한국 측이 제3항에서 반환을 요구한 문화재들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칼럼 제2부 ①, ②, ③ 참조), 제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 제3대 통감이자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중 한국 측이 강하게 반환을 요청했던 문화재는 이토 히로부미의 고려자기였으며, 다음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고서적 및 서화였다. 이에 비해 소네 아라스케 관련 문화재는 그 중요도가 낮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3항 소위 통감・총독 등에 의해 반출된 것'에 소네 아라스케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 측이 그를 피탈 문화재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장면 정권이 퇴진하면서 제5차 회담도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문화재 반환 교섭도 문화재소위원회 및 전문가 회의 두 차례, 수석대표간 비공식 회의 한 차례만 열리고 구체적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 참고문헌
한일회담 관련 한국외교문서 및 일본외교문서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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