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파산의 벼랑끝에서 작은 불씨 하나를 살려냈다. 하지만 결국 홈플러스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어야 할 것이고, 엄청난 숫자의 노동자들이 길바닥으로 떠밀려 나올 것이다. 이 자본주의의 '우화'에서 우린 문제의 근본을 짚어야 한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기업 사냥'으로 시작된 '홈플러스 스토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본주의의 신화'를 해체한다. 금융자본이 멀쩡하게 운영되던 기업을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사들여 기업의 인수자금을 부채로 떠넘긴 후 자산을 매각하고 직원을 해고하는 방식은 전혀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일찍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에서 한계에 봉착한 자본은, 금융 기술을 진화시켜 물리적 국경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역내 주권을 해체하는 방식을 통해 글로벌 신자유주의로 진화했다. 과거엔 국가가 자본을 통제했다면, 이제 국가는 자본의 하위 파트너에 불과하다. 이런 금융 자본주의와 '빅테크 기업'의 플랫폼 경제가 맞물리면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과거의 '자본주의적 상식'에 반하는 일들은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대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 중세의 봉건주의처럼 변하고 있다는 분석에 솔깃해졌다.
자본은 이제 중세 영주처럼 군다. 사모펀드와 같은 많은 '순수 자본 덩어리'들은 영지를 찾기 위해 세계를 배회하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습격해 해체한다. 또 어떤 생산 수단도 소유하지 않은 거대 플랫폼 영주들(우버, 배민,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X, 인스타그램 등)은 시장의 길목에 서서 현대판 농노(이용자)들의 지대를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빨아먹는다. 그 플랫폼 영주들에게 무기(자본)을 대는 건 벤처 자본과 사모펀드들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디 딘은 <자본의 무덤>(하승우 번역, 이상북스)을 통해 이런 세상을 '신봉건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세상은 지금 혁신, 경쟁, 이윤, 축적, 노동과 같은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들을 부수는 중이다. 우리는 자본은 축적되며, 경쟁, 혁신, 이윤을 위해 재투자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팔아 자본가들에 의해 고용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이 다시 노동자들에 의해 소비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식들은 뒤틀리고 파괴되어 간다.
인류가 집단 지성으로 내린 '자본주의'란 규정에서 이탈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면, 우리는 그걸 계속해서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자본주의'로 규정할 수 없는 어떤 단계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자본은 더이상 재투자를 위해 축적되지 않는다. 자본은 이제 '부'가 되기 위해 축적되고, 단지 축적되기 위해서 축적된다. 파리경제대학 세계불평등연구소(WIL)가 공개한 ‘2026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가 부의 75%와 소득의 53%를 차지했다. 50%는 부의 2%와 소득의 8%를 보유한다. 1995년 이후 30년 동안 극소수 상위 계층(0.001%)의 자산은 연 8% 이상 늘었는데, 하위 50%는 연 2~4% 늘었다.
축적된 부는 더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대신, 점점 가사나 미용과 같은 개인적 편의를 돕는 서비스업(돌봄, 배달, 청소 등)에 종사한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세계 주요 국가들이 만들어낸 국내 총생산의 50%이상이 이런 서비스업에서 생긴다. 미국에서 1970년대 제조업 노동자들은 20% 이상이었지만, 트럼프가 처음 당선된 2016년엔 고작 8%에 불과했다. 미국의 경우에 70% 이상이 서비스업이다. 100만 명에 달하는 변호사들의 페이퍼 워크, 월마트, 우버, 아마존 같은 곳에서 배달, 하역, 물품분류 등의 업무가 '생산'으로 분류된다. 상품은 이제 무형의 어떤 것이 되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월가 빌딩이나, 실리콘 밸리에서 클릭 몇 번으로 수천억 원을 다루는 사람들만큼이나 '실질적 생산'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걸 '하인 경제'(Servant Economy)라 부를 수 있다.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없는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들은 이제 '서비스'를 내걸고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로 이동한다. 소유의 개념을 이용과 체험으로 바꿔치기 하면서 사람들(판매자와 구매자)을 '플랫폼'이라는 봉건 영지에 종속시키고, 양 쪽으로부터 수수료와 구독료를 챙긴다. 이들은 시장을 창출하는 게 아니다. 시장에 '플랫폼'을 씌우고, 그 진입로에 '건달'을 세워둔채 통행료를 받고 있는 것에 가깝다. 테슬라는 이제 '자율주행'을 이용하기 위해 매월 15만 원의 구독료를 받을 예정이다. IT 테크 기업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수천년간 생성한 데이터를 거의 공짜로 학습해 AI를 구축해 놓고,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매달 구독료를 받아 챙긴다. 이런 구독료가 없으면 AI기업은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과 혁신과 이윤 창출은 약탈과 점유, 그리고 지대추구로 변하고 있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처럼, 사모펀드는 이제 '멀쩡하게 운영되는 기업'을 사들이려 한다. 홈플러스는 MBK가 사들인 후 망가져 파산 위기에 처했다. 비용 절감을 위한 가혹한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또 다시 '긱 이코노미', '하인 경제'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산업혁명 시절이나, 한국의 개발시대에 저곡가 정책으로 농민들이 땅, 혹은 소작지를 잃고 몸뚱이 하나를 남겨 '도시 노동자'로 유입됐듯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타다' 논쟁의 본질은 택시를 한 대도 소유하지 않은 IT기업이 택시 시장을 통째로 삼키려 했던 사례다. 우버는 미국의 택시 시장을 장악한 후 요금을 후려치고 노동자가 아닌 '드라이버 사장님' 들에게 수수료를 떼 간다. 얼마 전 있었던 '배달 라이더'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한국의 판결은 그 약탈 속에서 노동자가 내지른 구조 신호가 우연히 법망에 걸려 표출된 사건이다.
배달은 전형적인 '긱 이코노미'이자 '서번트 이코노미'다. 배달업계는 요리사(음식점 점주)의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요리사와 라이더에게서 돈을 떼 간다. 쿠팡과 같은 기업은 그 생태계에서 생산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이용해 이윤을 뽑아낸다. 이걸 우린 '계약'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계약 형태는 동등한 노동계약이 아니라, 봉건 영주와 농노의 '주종관계'와 같은 계약이다.
봉건 영주처럼 '플랫폼 영주'들은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신체를 통제하고, 친절도를 측정하며, 일할 '기회'를 제공해준 대가로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생산수단(배달 오토바이) 구매와 유지 비용은 노동자가 부담한다. 노동자(사장님?)의 벌이 수준은 점점 낮아지고, 그러면 '편한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투잡', '쓰리잡'을 뛰게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하는 에어비앤비는 방을 단 한칸도 사들이지 않지만, 플랫폼에 종속된 '집주인'들과 '여행자'들 양쪽에서 수수료를 떼 가면서 전 세계 도시의 집값과 임대료를 치솟게 한다. '무주택자'와 '세입자'는 도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봉건영주의 '수탈'에 더 가까운 행태다.
자본주의가 봉착한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암호화폐 사업이다. 이 사업은 막대한 지구의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채굴하고 사고 파는데 매달리고 있다. 기괴한 풍경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암호화폐 광풍은 2000년대 신자유주의가 추구한 금융자본주의(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의 사망할 뻔 했던)의 어떤 은유 같은 것이라고 할까. 이름을 붙인다면 '헛것 경제(Nothing Economy)' 쯤 될 수 있겠다.
더이상 새로운 걸 생산해내지 않은 자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산주의', 혹은 '신봉건주의'에 가깝다. 사모펀드와 투자은행, 벤처 자본이 만들어낸 테크기업들과 노동자는 이제 영주와 농노의 관계, 주군과 봉신의 관계에 가까워지고, 세상은 혁신과 경쟁이 아니라 약탈과 지대 추구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인류 역사의 첨단에 서 있다는 생각, 자본주의가 역사 발전의 최종 단계일 것이라는 생각, 이런 모든 게 다 착각이 아닐까.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가 어디 쯤 와 있는지, 우린 스스로의 좌표를 자가진단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지금 한계에 봉착해서 새로운 운동 법칙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스템이 '발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정치를 약화시키고 우리의 주권(Sovereignty)을 점점 종주권(Suzerainty)으로 대체한다. 세상은 소수의 '자산(기술)보유 계급'과, 절대다수의 '서비스노동 계급'으로 분화되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이나 민족주의적 극우의 전 세계적 부상은 우연이 아니다. 극우의 입장에서 보자. '신사협정'을 부순 건 '자본'이 먼저다. 정치가 약화되면서 체제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 간다. 불평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과 함께, 그들은 무엇인가 '약탈'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극우가 (트럼프의 방식과 같은) '보호주의'나 '폐쇄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에 열광하고 환호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서 '리버럴리스트'들은 '내로남불'을 일삼는 비겁한 족속들이다.
자본주의는 이제, 경쟁과 혁신이 아니라, '신봉건주의'적인 불평등과 약탈로 대변되고 있다. 전 세계적 극우화의 원인, 특히 청년들의 극우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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