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 미국 서던메소디스트 대학교(댈러스 소재) 교수는 나노 공학자다. 특히 나노로봇 공학자로 알려져 있다. 나노로봇은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규모의 부품이나 구조를 이용해 미세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만든 초소형 로봇을 말한다. 너무 작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는 2020년에 <이너스페이스>라는 책을 내고, 자신의 나노로봇 연구를 일반인에게 소개한 바 있다. 제목 '이너스페이스'는 초소형 잠수함이 사람의 몸속을 탐험하는 1987년 공상과학영화 이름에서 따왔다.
김 교수는 두 번째 교양과학책 <사랑의 열역학>을 7월 초에 냈다. 나노 로봇을 만드는 공학자가 왜 '열역학'을 사랑에 비유한 책을 냈을까 궁금했다. 그뿐 아니라 공학자로서 그가 어떤 질문을 품고 연구해왔는지도 알고 싶었다. 지난 16일 서울 남산 기슭의 동아시아빌딩 2층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연구의 출발에는 박테리아가 있다
김 교수는 "내 연구의 모든 시발점은 박테리아다"라고 말했다. 박테리아의 세 개 요소에서 시작했다. △편모, △세포막의 나노포어(나노 규모의 구멍), 그리고 △박테리아의 생체분자 모터다. '편모'와 '박테리아 생체분자 모터'는 미국 브라운 대학교 박사과정에서, '나노포어'는 하버드 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시절에 만났다.
먼저 나노포어 이야기. 그는 지난 2021년에 나노포어를 갖고 유전자문자(염기서열) 10개를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A-C-C-T-C-C-T-G-T-A를 읽어냈고, 학술지 <Electrophoresis> 표지 논문으로 나왔다. 이때 이용한 나노포어는 박테리아 막이 아니고, 고체 막이다.
그런데 김 교수 이야기를 들으니, 의아한 게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법으로 유전체 염기서열, 즉 유전자 문자를 잘 읽어내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왜 '나노포어'라는 다른 방법으로 힘들게 염기서열을 읽어내려고 할까.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사용되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은 사람의 전장 유전체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하지만 DNA를 잘게 절단한 뒤 수없이 증폭하고, 형광 신호를 광학적으로 읽어낸 후 컴퓨터로 다시 조립한다. 사람의 유전체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NGS 플랫폼은 한 번에 수백 개 정도의 염기만 읽는다. 때문에, 수많은 짧은 조각을 읽은 뒤 이를 다시 이어 붙여 전체 유전체를 재구성한다. 최근에는 긴 DNA를 읽는 롱리드(long-read)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확도와 비용, 처리량 사이의 절충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문제는 유전체를 읽을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간단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DNA를 증폭하거나 형광 표지를 붙이지 않고 직접 읽을 수 있느냐가 다음 세대 기술의 경쟁력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연구하는 고체 나노포어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DNA 한 가닥이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만으로 염기서열을 직접 읽어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높은 정확도와 속도를 확보한다면, 손바닥만 한 장비에서 유전체를 분석하는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NGS 방식 이후의 '넥스트' 방법을 찾는 연구가 활발하다. 연구가 진행 중인 새로운 염기서열 판독법 중 김 교수가 설명한 방식은 크게 세 갈래였다. ⓵김 교수가 시도한 고체 나노포어 방식, ⓶생물학적 나노포어, ⓷ 나노 유체 채널 방식이다. 생물학적 나노포어는 박테리아 세포막에서 유래한 막단백질 구멍을 이용한다. 제일 앞서가고 있다. '옥스퍼드 나노포어'(Oxford Nanopore)는 상업용 제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김민준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시절(2006년)에 어떻게 나노포어를 만들어냈을까?
전자현미경으로 나노 크기 구멍을 뚫다
김 교수는 브라운 대학교에서 2005년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 박사후연구원으로 갔다. 지도교수는 물리학자인 아밋 멜러였다. 아밋 멜러 교수에게 그를 추천한 건 브라운 대학교 박사과정 지도교수 케네스 브로이어였다. 케네스 브로이어는 미세유체역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대가다. 김 교수는 "나의 박사, 박사후연구원 지도교수들이 모두 유대인이었다. 하버드에서 박사후연구원 할 때는 연구실에서 나만 히브리어를 못했다"며 웃었다.
아밋 멜러 교수는 단분자 생물물리학자. 단분자 생물물리학은 DNA, RNA, 단백질과 같은 생체 분자 하나하나를 직접 관찰하고 측정하는 분야다. 당시 연구실은 머리카락 두께보다 1000배 얇은 질화규소 박막에 3-5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을 격자 형태로 배열한 '나노포어 어레이'(nanopore array)를 개발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투과전자현미경(TEM)을 이용해 직경 수 나노미터의 나노포어를 균일하게 제작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김 교수 말을 옮겨 본다.
"나노포어 어레이가 당시 왜 대단했느냐면, 지금의 반도체 공정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TSMC가 지금도 2~3나노미터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나는 2005년 이미 직경 3나노미터 수준의 나노포어를 만들고 있었다. 반도체 회사들은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이용해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만든다. 내가 한 일도 본질적으로는 나노 가공이었다. 다만 빛 대신 주사전자현미경(TEM)의 전자빔을 이용해 질화규소(Si₃N₄) 막에서 원자를 하나씩 제거하면서 나노 크기의 구멍을 만든 것이다. 내가 하는 나노포어 제작 공정은 상당 부분 반도체 미세가공 기술과 맞닿아 있다."
나노포어 어레이를 분자가 통과한다는 걸 읽어내다
나노포어 어레이를 만들었으면, 이제 이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응용 분야 가운데 하나가 DNA 시퀀싱이었다. 당시에도 DNA 염기서열읽기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더 빠르고 간단하며 저렴하게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의 아밋 멜러 교수 연구실도 이런 맥락에서 나노포어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김민준 박사는 나노포어 어레이 제작에 성공하자, 그 구멍으로 DNA 분자를 통과시키는 실험을 시작했다. DNA는 일반적으로 두 가닥으로 존재하지만, 이 실험에서는 단일가닥 DNA를 사용했다. 나노포어 양쪽에 전압을 걸어 전기장을 만들면 음전하를 띤 DNA가 구멍을 통과하게 된다. DNA가 나노포어를 지나는 순간 이온전류가 순간적으로 감소하는데, 이를 측정했다. 단일 DNA 분자가 나노포어를 통과하는 현상을 전기적으로 검출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한 거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에 보고했다.
고체 나노포어로 DNA 염기서열을 직접 읽으려면 적어도 세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①DNA가 나노포어를 너무 빠르게 통과하기 때문에 통과 속도를 충분히 늦춰야 한다. ②고체 나노포어는 생물학적 나노포어보다 전기적 잡음이 큰 편이어서 이를 효과적으로 줄여야 한다. ③나노포어가 뚫린 막을 훨씬 더 얇게 만들어야 한다. DNA(B-DNA)에서 인접한 두 염기 사이의 간격은 0.34나노미터다. 그러나 당시 김민준 박사가 제작한 질화규소 막의 두께는 약 50나노미터였다. 이렇게 막이 두꺼우면 수십 개 이상의 염기가 동시에 나노포어 안에 존재하게 되어, 개별 염기가 만드는 전기 신호를 구분하기 어렵다. 염기를 하나씩 읽기 위해서는 막을 한두 개의 염기만 동시에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얇게 만들어야 했다. 김 교수는 "포닥 때 연구의 한계 덕분에 나는 이후 30년 동안 연구할 숙제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교수가 되다, 그리고 두 갈래 길을 함께 걷다
김 교수는 여러 대학의 교수 자리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2006년 8월 필라델피아의 드렉셀 대학교에 교수로 갔다. 인근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가 있어, 공동연구 환경이 좋은 점을 고려했다.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케네스 브로이어 교수가 "연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학교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연구실 이름을 BAST('생물 구동, 감지, 운송'의 줄임말)라고 지었다. 이때부터 그는 두 갈래 연구를 끌고 가고 있다. 하나는 박테리아의 편모 운동 원리를 이용한 나노로봇 연구, 고체 나노포어 연구다.
고체 나노포어의 세 가지 문제를 풀다
고체 나노포어로 DNA 염기서열 읽기의 세 가지 문제는 막 소재를 바꿔가며 풀었다. 그래핀을 시도해 두께 문제를 풀었고, 육방정계 질화붕소(hexagonal boron nitride, h-BN)는 잡음 문제도 해결했다. 남은 문제는 '나노포어를 통과하는 분자의 속도 제어'다. 이 문제는 액체의 점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물 대신 꿀처럼 점성이 매우 큰 액체를 사용하자 DNA의 통과 속도가 수천 분의 1 수준까지 감소했다. 덕분에 개별 DNA 조각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훨씬 안정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다. 김 교수팀은 10개 염기로 이루어진 단일가닥 DNA 조각들을 전기 신호만으로 구별할 수 있음을 보였다. 연구는 2021년 학술지 <Electrophoresis>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이걸로 사람의 DNA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DNA 시퀀싱이 완성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 세포 하나의 DNA를 모두 펼치면 길이가 2미터에 이른다. 반면 당시 연구는 약 2나노미터 길이의 짧은 DNA 조각에서 개별 신호를 구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유전체 전체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는 기술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난제가 많이 남아 있다.
김 교수는 말했다. "염기서열을 읽는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한국은 아직 이 분야 연구자가 많지 않고 정부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 그는 이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DNA 시퀀싱을 한다'고 쉽게 말하는데, 어려운 기술이다. 나는 지금은 DNA 시퀀싱 자체보다 나노포어를 이용한 단백질 상호작용 분석과 소프트 나노입자 연구에 더 집중하고 있다."
기자는 다시 물었다. "2021년 이후에는 DNA 시퀀싱 연구는 어떻게 됐나?"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까지였다. 내가 하는 나노포어 연구가 열 가지라면 DNA 시퀀싱은 하나 정도다. 지금은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 연구가 더 크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이러스와 리포솜(세포안의 지질입자) 같은 소프트 나노입자 연구다." 순간 기자는 생각했다. 김 교수의 중요한 연구를 묻지 않고 내내 헛다리를 짚은 것인가?
HIV와 AAV 연구
김 교수는 "내가 연구하는 대표적인 소프트 나노입자가 HIV와 AAV같은 바이러스다"라고 말했다. 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이고, AAV(아데노연관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킨 사례가 알려져 있지 않다. AAV는 유전자 치료를 위한 운반체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김 교수는 "내가 개발하는 나노로봇 기술도 결국은 이런 바이러스 전달체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바이러스를 체내의 원하는 곳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자신의 박테리아 기반 마이크로로봇 연구를 예로 들었다. "초기에 내가 만든 마이크로로봇은 자성입자에 박테리아의 편모를 붙인 구조였다. 편모는 박테리아의 프로펠러 역할을 한다. 자기장을 가하면 로봇은 회전하지만, 단순히 회전만 한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미세유체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원리다."
로봇이 유체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두 가지 설계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로봇 구조가 완전히 대칭이어서는 안 된다. x, y, z 방향 가운데 적어도 한 방향에서는 비대칭성이 있어야한다. 그래야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이동한다. 즉 회전 운동이 병진 운동으로 바뀐다. 둘째, 로봇은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유연한 구조는 유체와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추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김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자성입자 표면에 항체를 결합시키고, 필요에 따라 항체에 약물을 연결한 항체-약물 전달체를 개발했다. 자기장을 이용해 목표 위치까지 이동한 뒤,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과 결합하면, 약물이 세포 내부에서 방출되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
김 교수는 "문제는 바이러스의 경우 자성입자처럼 외부에서 자기장만으로 쉽게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러스를 제어해서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HIV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김 교수가 만든 나노포어를 이용하면 바이러스의 구조와 물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구멍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바이러스의 전기적 신호를 이해하고 분석하면 된다. HIV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나노포어를 통과시키면 전기 신호도 비슷하게 나온다. 신호만 보고는 두 바이러스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
김 교수는 두 바이러스의 차이 한 가지에 주목했다. 서로 달라붙는 상대가 다르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 세포의 ACE2라는 단백질에 잘 결합하나, HIV는 그렇지 않다. 생김새는 비슷한 두 열쇠가 서로 다른 자물쇠를 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김 교수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만 달라붙는 단백질을 시료에 넣었다. 이 상태에서 두 바이러스를 나노포어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코로나바이러스는 단백질을 하나 더 달고 지나가기 때문에 원래와 다른 전기 신호를 낸다. 반면 HIV는 아무것도 붙지 않은 채 지나가므로 기존 신호 그대로다. 그 결과 당초 비슷했던 두 바이러스의 전기 신호가 뚜렷하게 달라져 서로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김 교수는 "이런 방법을 바이오센싱(biosensing)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치료 유전자 택배차로 주목 받는 AAV
AAV는 유전자 치료에서 '택배차' 역할을 한다. 치료에 필요한 유전자를 AAV 안에 넣어 환자의 세포까지 안전하게 전달한다. AAV를 운반체로 사용하는 대표적 치료제로 유전성 망막 질환 치료제 '럭스터나'가 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안이 비어 있는 AAV가 적지 않게 만들어진다. 이때문에 환자에게 치료용 유전자를 정확한 양만큼 전달하려면 이런 '빈 상자'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현재는 '빈 상자'를 골라내기 위해 원심분리기를 이용한다. 원심분리기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구분한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많은 양의 시료도 필요하다는 거다. 김 교수는 이 문제를 나노포어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AAV 하나하나를 나노포어에 통과시키면 전기 신호가 나타난다. 빈 AAV와 유전자가 들어 있는 AAV는 무게뿐 아니라 단단한 정도와 전기적인 성질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나노포어를 지날 때 서로 다른 신호를 만든다. 김 교수 연구팀은 이런 작은 차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AAV 안에 치료용 유전자가 들어 있는지, 비어 있는지를 구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실제 생산과 임상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김 교수 연구팀은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 AAV 코어센터(스티브 그레이 교수)와 함께 실용화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관련 연구는 2019년 처음 발표됐으며, 후속 연구는 올해 <ACS Nano>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나노포어와 NMR
김민준 교수가 나노포어 연구의 또 다른 중요한 분야로 꼽은 것은 단백질과 단백질이 어떻게 서로 달라붙는지를 알아내는 연구다. 우리 몸에서는 단백질들이 서로 만나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항체가 바이러스에 달라붙는 것도, 약물이 단백질과 결합하는 것도 모두 이런 상호작용이다. 이런 원리를 이해해야 새로운 약을 만들거나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도 발전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연구를 하려면 핵자기공명분광기(NMR)라는 대형 장비를 주로 사용했다. NMR은 단백질의 구조와 움직임을 매우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장비다. 하지만, 가격이 수십억 원으로 비싸고 운용도 쉽지 않다. 그는 나노포어가 일부 분석에서는 더 간단하고 경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열정에서 행동을 빼면 사랑이 남는다
그의 연구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했다. 이제 만남의 계기가 된 책 <사랑의 열역학>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김 교수는 2018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연재해왔다. 처음에는 제목도 '사랑의 열역학'이 아니었다. 그냥 '열역학'이었다. 번호를 매겨가며 5년 가까이 써 내려갔다. 서던메소디스트 대학교에서 2016년부터 맡아온 기계공학과 전공필수 과목인 열역학 강의 중 나온 에피소드들을 대화체로 풀어쓴 글이었다.
그가 열역학을 사랑에 대입한 이유는 소박했다. "열역학이 정말 어려운 과목이다. 가장 단순한 것 같은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이 열역학이다." 열역학에는 네 개의 법칙이 있는데, 그중 학생들이 가장 자주 마주치는 두 가지가 제1법칙(에너지 보존)과 제2법칙(엔트로피)이다. 이 추상적인 개념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다 보니, 자연스레 감정의 언어를 빌려오게 됐다.
"우리가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열정만 있어서는 안 되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그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공식도 열역학 제1법칙에서 출발했다. 사랑의 에너지(E)는 열정(Q)에서 행동(W)을 뺀 것이라는 식이다. 사랑으로 열역학을 설명하자 신기한 변화가 생겼다. 남학생이 대부분이던 강의실에 어느 학기부터인가 여학생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