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중지 경험을 유튜브에 올렸다 재판에 넘겨진 산모 권모 씨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살인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이 뒤집혔다. 이를 두고 '무죄 판결을 넘어 정부는 더 이상 제도 공백으로 인한 산모의 고통을 방치하지 말라'는 시민사회 목소리가 나왔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24일 성명을 내고 "서울고등법원이 후기 임신중지를 한 당사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엠네스티는 "국제인권법 및 기준에 따르면 임신중지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이자 인권의 문제"라며 "임신중지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제공한 사람, 또는 이를 지원한 사람을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고, 임신중지 서비스의 제공과 접근에 관한 명확한 법적·제도적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모자보건법을 즉시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의료진을 처벌한 판결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조희경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모든 여성은 최신의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누구도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 처장은 그러면서 "정부는 더 이상 제도적 공백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또한 전날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가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이 사건 항소심 판결의 의미는 단지 이 사건의 당사자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이미 7년 전인 2019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어떠한 이유로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정부가 했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 책임과 의무를 정부에 다시금 묻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권 씨 변호인 김명선 변호사도 "이 사건이 권 씨의 개인적인 형사 처벌을 무죄로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지금 현행 법률이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계속되는 입법 공백 속에서 의료계와 산모들, 일반인들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져서 이와 같은 비극을 낳게 됐는지 여기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위험은 임신중지 자체보다 그것을 안전하게 의료 안에서 다루지 못하는 구조에서 더 크게 만들어진다"며 "그래서 임신중지는 총체적 삶과 건강의 문제이며, 재생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료계는 더이상 여성 건강을 방치하지 말고,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안전하고 정당하게 필수의료서비스로 보장할지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용석)는 23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모 권 씨에게 무죄 판단을 내렸다.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한 병원장 윤모 씨에게는 징역 4년, 수술을 집도한 의사 심모 씨에게는 징역 2년 6개월, 브로커 한모 씨 등 2명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씨와 심 씨가 지난 2024년 6월 임신부 권 씨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해 태아를 출산시킨 뒤 사각포로 태아를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권 씨에 대해서는 태아가 산 채로 태어난 뒤 의료진에 의해 살해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고 보기 어렵고, 권 씨가 수술 전 태아 처리 절차를 병원에 위임한다는 동의서를 작성한 부분도 살해를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권 씨가 2024년 6월 유튜브에 올린 임신중지 과정 영상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같은 해 7월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수사 결과 권 씨와 의료진은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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