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주요 정부부처들이 장애인 접근권 제도 개선안을 묻는 국가인권위원회 질의에 두 차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인권위는 물론 현행 장애인 접근권 제도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까지 무시한 셈이다. 일부 부처 관계자가 인권위에 "(개선 권고) 할 테면 해보라" 등 핀잔 섞인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2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인권위는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 5개 정부부처에 기존 장애인 접근권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 방안에 관한 의견을 조회(문의)했다. 장애인 접근권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각종 시설, 교통수단, 정보 등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인권위가 문의한 부처는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행정안전부 등 장애인 정책의 주무부처이거나 장애인 접근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곳들이다.
이번 문의는 대법원이 위헌 요소를 인정한 현행 장애인 접근권 제도와 관련해 각 부처에 인권위가 개선 권고를 내리기 전 정책 현황을 파악하고 권고안에 반영하려는 목적이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을 '장애인이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초석이 되는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판단했다.
또 관련 시행령에서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 시설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규정한 국가의 입법 행정 부작위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한 김 씨 등 2명에 국가가 각 1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장애인 접근권이 헌법상 기본권임에도 실제로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으나, 지난 3월 5개 부처는 관련 대책을 묻는 인권위에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일부 부처는 인권위에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5월 진행된 제16차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각 부처와 협의를 진행한 인권위 조사관은 A 부처 담당자에 "할 테면 해 봐라, 어차피 하지도 못할 텐데"는 핀잔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이 조사관은 B 부처 담당자에게도 "인권위가 이런 권고 하시지도 못할 텐데 왜 우리들한테 공문을 보냈느냐"는 폄하성 발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조사관 보고를 들은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지난 5월 다시 한번 각 부처에 의견 조회를 요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회신도 받지 못하자 지난 16일 '공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의 건'을 의결했다.
장애인들은 장애인 접근권 제도에 대한 무책임한 정부 태도를 규탄했다. 지난 20일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집단소송 원고 182명 일동과 4개 장애인 단체는 성명을 내고 "5개 부처는 인권위의 두 차례의 의견요청을 묵살한 데 사과하라.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권고를 2026년 내에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이번에도 무대응과 불수용으로 일관한다면 대법원 판결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 그리고 국가인권기구의 권고까지 모두 무시하는 것"이라며 "정부 스스로 장애인 차별의 가해자임을 자인하는 바이며 우리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미화 의원은 "2024년 대법원이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했음에도 관계 부처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권리 보장의 책임을 지닌 정부가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형식적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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