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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에 1000조(兆) 담기] ③새만금은 왜 자꾸 다시 그려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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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에 1000조(兆) 담기] ③새만금은 왜 자꾸 다시 그려졌나

바뀐 마스터플랜의 역사, 그리고 1000조를 담는 그릇이 되기 위한 조건

새만금은 늘 ‘그림’으로 먼저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그림은 한 번에 완성된 적이 없다.

새만금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어온 시간은, 어떤 면에서는 토지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또 다른 면에서는 개발의 방향을 끝없이 다시 그리는 과정이었다.

농지 중심의 간척사업으로 출발한 새만금은 이후 산업, 국제협력, 관광, 에너지, 도시, 생태, 그리고 최근에는 AI와 피지컬 AI까지 품는 구상으로 계속 옮겨왔다.

그 변천은 새만금이 유연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이 사업을 하나의 일관된 전략으로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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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의 첫 출발점은 식량안보였다. 1970년대 식량파동과 반복된 기상이변 속에서 국토를 넓혀 농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1991년 첫 삽을 뜬 뒤에도 한동안 새만금은 “농업용 토지”라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간척사업을 둘러싼 환경논란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시대가 바뀌며 달라진 산업정책은 새만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군산시

결국 새만금은 농지에서 산업과 도시, 물류와 국제교류, 에너지와 관광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바뀌는 긴 과정을 거쳤다.

특히 새만금의 토지이용 구상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요동쳤다. 어떤 시기에는 농지 비중이 높아졌고, 다른 시기에는 산업용지와 국제협력용지가 커졌으며, 또 다른 시기에는 관광·레저와 생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강조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새만금을 단순 간척지가 아니라 동북아 경제중심지, 복합도시, 미래형 산업기지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2011년 새만금 기본계획(MP)이 수립되고 2013년 새만금개발청이 출범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이 여러 번 바뀐 것이 아니라, 바뀐 방향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새만금은 매번 큰 구호를 얻었지만, 매번 속도와 우선순위에서 흔들렸다.

어떤 정부에서는 국제사업의 상징이었고, 어떤 정부에서는 친환경 개발의 모델이었고, 또 어떤 시기에는 예산 삭감과 정치적 논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새만금은 다시 “기회의 땅”과 “공허의 땅” 사이를 오갔다. 이런 흔들림은 사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새만금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관된 산업전략이 아니라 정권별 공약의 변주에 머문 탓이 크다.

이제 새만금은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이번에는 단순한 도로·방조제·매립의 차원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수소 생산, 재생에너지, 국제 해저케이블 육양국이 결합하는 디지털·에너지 복합거점으로의 재구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새만금이 1000조 원의 경제효과를 꿈꾼다면, 그것은 대규모 예산 한 번으로 실현되는 숫자가 아니라 수많은 기업과 기술, 인프라와 제도가 연결되며 만들어내는 누적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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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새만금이 1000조를 담는 그릇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는 명확한 방향성이다. 새만금은 더 이상 매번 새로 해석되는 사업이어서는 안 된다. 농업, 산업, 관광, 에너지, 도시, 국제협력, AI라는 키워드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프레임 안에서 질서 있게 연결돼야 한다.

새만금이 국가 AI 전략 거점으로 기능하려면 “무엇을 안 할 것인가”까지 포함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둘째는 전력과 통신이다. AI 산업은 땅보다 전력을 먹고 자란다. 대형 데이터센터, 로봇 생산, 수소 생산,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실증은 모두 안정적인 전력망과 국제 통신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새만금에 해저케이블 육양국이 들어서고 재생에너지 기반 확충이 추진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새만금이 디지털 인프라 거점으로 넘어가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두 요소를 개별 사업으로 두지 않고, 장기적으로 묶어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셋째는 규제특례와 인허가 혁신이다. 새만금은 미래산업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려면 일반 산업단지와 같은 규칙으로는 안 된다.

기업이 들어와 실증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며, 데이터와 전력과 부지 조성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특구가 특구답지 않으면 기업은 오지 않는다. 특히 AI, 로봇, 자율주행, 수소 산업은 기술 자체보다도 제도 환경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넷째는 앵커기업 이후의 생태계다. 현대차그룹의 9조 원 투자가 새만금의 출발점이라면, 그 다음 단계는 부품업체와 소프트웨어 기업, 시험·인증기관, 연구소, 대학, 스타트업이 모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앵커 투자 하나로 끝나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그 투자를 매개로 로봇, 센서, 모터, 감속기, 클라우드, 전력기기, 수소장비 기업이 잇따라 들어오면 새만금은 공장 하나가 아니라 산업군 전체를 묶는 허브가 된다.

다섯째는 거버넌스다. 새만금은 이제 전북만의 사업이 아니다. 중앙정부의 정책 의지, 전북도의 실행력, 군산·김제·부안의 공간전략, 민간기업의 투자 판단이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누구 하나가 끌고 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여러 주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장기간 움직여야 하는 사업이다.

새만금이 여러 번 그림만 바뀌고 완성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거버넌스의 일관성 부족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약점을 넘어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섯째는 도민의 결속과 정치적 지속성이다. 새만금은 오랫동안 전북에 희망을 주는 동시에 상처도 남겼다.

그래서 새만금의 미래는 행정문서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이 사업을 단기 성과나 정권별 이벤트가 아니라 백년대계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본과 기업도 움직인다.

▲ 이재명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월 새만금 로봇·수소 첨단산업 육성 및 AI 수소시티 조성을 위한 투자협약식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재생에너지 등을 포함한 약 9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북도

전북이 새만금을 둘러싸고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외부는 그 지역을 진짜 투자처로 보기 시작한다.

이번 새만금의 변곡점은 과거와 다르다. 예전에는 “그럴듯한 계획”이 많았지만, 이를 지탱할 산업논리와 통신·전력·규제의 결합이 부족했다.

지금은 현대차의 피지컬 AI 투자, 해저케이블 육양국, RE100 산업단지, AI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축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다.

이제 새만금은 토지개발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새만금은 데이터와 전력, 제조와 실증, 국제통신과 에너지 자립이 만나는 복합 플랫폼으로 다시 정의돼야 한다.

새만금이 1000조를 담는 그릇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하나다.

다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한 번 정한 그림을 끝까지 밀고 갈 힘이다. 새만금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수없이 다시 그려졌다.

이제는 더 이상 자주 고치는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그 마스터플랜 위에 전력과 데이터, 기업과 인재, 도시와 산업이 차곡차곡 쌓일 때 새만금은 비로소 한국 산업지도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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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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