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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공공에, 권한은 민간에…현장에서 본 민자철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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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공공에, 권한은 민간에…현장에서 본 민자철도의 민낯

[철도 공공성의 위기와 대안] ④ 국가철도공단노동조합이 본 민자철도

매일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철도지만, 그 노선망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계획하고 얼마나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는 시민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국가철도망구축계획은 4차에 걸쳐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으나 재원 부족과 계획·집행의 구조적 불일치로 목표를 크게 밑돌아왔고, 그 공백을 메워온 민자철도 개발은 공사비 부풀리기와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안전사고, 이용자 운임 부담 증가 등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현행 철도망 계획의 한계를 짚고, 지속가능한 재정 구조와 민자철도의 대안, 철도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4회에 걸쳐 기고한다.

앞선 연재들은 국가철도망 계획의 공백, 재정전략의 부재, 민자철도 확대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필요한 철도는 많지만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고, 안정적인 재정전략은 부족하며, 그 공백을 민간투자사업이 메워 온 현실이 드러났다. 이제 남은 질문은 현장의 것이다. 그런 구조 속에서 철도를 실제로 건설하고 관리하는 노동자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보고서와 협약서 안에서 민자철도는 재정부담을 줄이고 민간의 효율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철도건설 현장에 민자철도는 조금 다르게 도착한다. 안전과 품질을 둘러싼 판단이 비용과 공사기간, 수익성의 언어로 계속 번역되는 구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전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

철도건설 현장에서 안전은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다. 터널을 어떤 방식으로 뚫을 것인지, 위험 구간에 어떤 보강 대책을 세울 것인지, 품질관리 인력을 얼마나 배치할 것인지가 모두 안전의 문제다. 공정이 늦어질 때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현장 조건이 달라졌을 때 어떤 보완 조치를 할 것인지도 안전과 직결된다.

재정사업이라면 이 판단의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안전과 품질에 필요한 비용은 줄여야 할 낭비가 아니라 사업비에 반영되어야 할 필수 비용이다. 그러나 민자사업에서는 같은 요구가 다르게 취급된다. 사업비 총액과 수익구조가 이미 협약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현장에서 안전 보완을 요구하면 대개 비슷한 질문이 돌아온다.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 "공사기간이 지연되는 것 아닌가.”

안전과 품질을 기준으로 제기한 요구가 사업비와 수익률의 언어로 되물어지는 순간, 철도건설의 우선순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안전은 사후에 확인되는 결과가 아니다. 공법을 정하고, 설계를 검토하고,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과정마다 안전 요구가 비용 문제로 되돌아온다면, 안전은 원칙이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된다.

민자사업이라고 해서 곧바로 안전이 포기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사업자를 움직이게 하느냐다. 정해진 사업비 안에서 투자수익을 회수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안전과 품질에 필요한 비용도 수익률을 압박하는 항목으로 계산된다. 철도를 공공재가 아니라 투자수익 회수용 사업으로 설계하는 순간, 안전은 언제든 비용절감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전을 줄여 확보한 비용절감을 효율이라 부를 수는 없다. 철도건설 노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민자철도의 효율이라는 말이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비용까지 줄여야 할 대상으로 만들 때, 그 효율은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착시에 불과하다.

책임은 공공에, 권한은 협상 테이블 밖에

민자철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공사가 민간사업 현장에서 이뤄졌더라도, 사고 수습과 국민 안전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결국 공공의 몫으로 남는다. 국민은 사고가 민자사업인지 재정사업인지보다, 국가가 안전한 철도를 제대로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그렇다면 공공은 안전을 책임질 권한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민자사업 구조에서는 안전과 품질에 관한 공공의 요구가 민간사업자의 사업성 판단 앞에서 제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공공기관이 현장에서 위험을 확인하고 보완을 요구하더라도, 그것이 사업비 증가나 공사기간 지연으로 해석되는 순간 요구의 힘은 약해질 수 있다.

권한은 민간에 두고 책임만 공공에 남기는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공공기관에 안전 책임을 요구한다면, 공공기관이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최소한 안전과 품질에 관한 국가철도공단의 요구가 민간사업자의 사업성 판단보다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관의 권한 확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안전과 품질에 관한 공공의 요구가 협약과 제도 안에서 강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민자철도는 책임의 공백을 제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선로용량은 숫자가 아니라 현장의 제약이다

민자철도는 국가가 이미 구축한 철도망과 재정투입을 활용해 사업성을 확보해 왔다. GTX 사업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민자사업의 경제성을 맞추기 위해 국가재정으로 건설한 구간이나 기존 선로용량이 민자노선과 결합되는 방식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선로용량은 비용편익분석만을 위한 숫자가 아니다. 실제로 열차를 얼마나 넣을 수 있는지, 기존 열차의 운행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향후 증편 여지를 얼마나 남길 수 있는지의 문제다. 민자열차가 기존 선로를 이용할수록 다른 열차와 향후 공공철도 서비스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신설선과 기존선이 접속되는 지점, 공사 중 운행선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구간, 향후 유지관리와 운영 조정이 필요한 구간에서는 더 많은 검토와 조율이 필요하다. 공공철도망을 민자사업의 사업성 확보에 동원하는 순간, 그 부담은 결국 현장과 공공기관의 업무로 돌아온다. 민자사업의 경제성이 공공철도망의 여유를 끌어다 쓴 결과라면, 그것은 민간의 효율이 아니라 공공자산의 이전이다.

소송은 숫자가 아니라 노동시간으로 돌아온다

민간이 사업 위험을 부담한다는 명분도 현장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된 민자철도 관련 소송은 총 20건, 소송가액은 1조 4134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민간사업자인 SPC(특수목적법인)가 주무관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정부 패소 등으로 이미 발생한 재정 부담도 2991억 원에 달하고, 진행 중인 소송 금액도 1조 원을 넘는다.

그러나 소송은 숫자로만 남지 않는다. 소송이 시작되면 공공기관은 당시의 협약, 설계변경, 공정관리, 안전관리 기록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공정과 협의 과정을 복기하고, 사실관계를 정리하며, 대응 자료를 작성해야 한다. 철도를 짓고 관리해야 할 시간과 인력이 소송 대응 업무로 이동하는 것이다.

민간이 부담하기로 했던 위험은 이렇게 공공의 재정만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행정력과 노동시간까지 잠식한다. 사업을 추진할 때는 민간의 효율을 말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발생하면 그 부담은 소송과 협상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게 되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현장은 철도건설 본연의 업무와 소송 대응 실무를 함께 떠안게 된다.

위험을 부담하겠다던 민간이 예상치 못한 비용 앞에서 소송으로 부담을 되돌린다면, 애초의 위험 분담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민간의 위험이 공공의 예산과 노동시간으로 돌아오는 구조를 효율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재정구조의 문제는 현장에서 공정 조율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정사업이 느려 보이는 이유는 재정사업 방식의 근본적 한계라기보다 매년 국가예산 배정을 기다려야 하는 재정투입 구조에 있다. 이 문제는 현장에서 추상적인 예산 논쟁으로 머물지 않는다. 해당 연도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공정은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미 투입된 인력과 장비의 일정을 다시 짜야 하고, 협력업체와의 계약도 재조정해야 한다.

이 조건의 차이를 그대로 둔 채 민자는 빠르고 재정은 느리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비교가 아니다. 민자사업은 사업기간과 자금조달계획을 사전에 마련해 사업비를 투입하는 반면, 재정사업은 매년 예산 배정을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재정사업 자체가 아니라, 필요한 철도에 대해 안정적인 다년도 재정투입 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국가 재정전략의 부재다.

해법은 필요한 철도를 민자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노선에 대해 실행 가능한 재정전략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안정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철도건설 현장은 공공책임의 원칙을 요구한다

민자철도 문제는 민간이냐 공공이냐의 추상적인 이념 문제가 아니다. 철도를 어떤 기준으로 건설할 것인가의 문제다. 철도는 개별 사업자의 투자수익률로만 평가할 수 없는 국가 네트워크 인프라다. 한 노선의 건설 방식은 다른 노선의 운행 가능성에 영향을 주고, 한 구간의 선로용량 배분은 수십 년 동안 국가철도망의 운영 구조를 좌우한다.

철도건설 현장에서 우리는 민자철도의 효율이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는지 보고 있다. 안전 요구가 비용으로 번역되는 구조, 공공의 권한보다 민간의 사업성 판단이 앞서는 구조, 국가철도망의 여유가 민자사업의 경제성 확보에 동원되는 구조, 민간이 부담한다던 위험이 소송을 거쳐 다시 공공의 업무와 재정 부담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 철도 안전과 공공성을 말할 수는 없다. 현재 추진 중인 민자철도건설은 재정사업 전환을 원칙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철도망의 핵심노선은 공공이 책임지고 건설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민자철도 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철도건설 현장의 노동조합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안전과 품질을 책임져야 할 철도라면 공공이 책임지고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민간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철도망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건설체계를 만들자는 요구다. 철도망 계획을 계획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국가는 책임질 노선과 재정투입 방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공기관에는 안전과 품질을 책임질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안전과 품질을 책임져야 할 철도라면, 그 책임을 이행할 권한도 공공에 있어야 한다. 책임은 공공에 남기고 권한은 민간의 사업성 판단에 묶어두는 방식으로는 안전한 철도를 만들 수 없다.

철도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수익률도 당장의 사업비 절감도 아니다. 안전하게 건설하고, 안전하게 운영하며, 국민 누구나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가철도망을 만드는 것이다. 철도의 공공성은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뒤에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책임으로, 어떤 가치를 우선해 철도를 건설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서울역.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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