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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다방동유적 발굴조사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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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다방동유적 발굴조사 꼭 필요합니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 '다방동 유적 성격과 가치 규명 학술대회'에서 밝혀

"경남 양산 다방동유적은 청동기시대(후기)부터 4세기대까지 양산지역 정치체의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는 지난 11일 양산 다방동 유적의 성격과 가치 규명 학술대회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이 교수는 "4세기대에는 금관가야 토기문화가 양산지역에 확산되어 김해 가락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금관가야 연맹체에 소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양산 다방동유적의 위상은 그대로 지속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4세기대 양산지역 상위층의 무덤에서 가락국(금관가야)의 토기들이 확인되고 있다"면서 "이는 금관가야와 양산지역 가야세력의 긴밀한 연대를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방동유적 인근의 지배층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가 꼭 필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른바 물금의 철광석은 가락국과 양산지역 가야세력을 잇는 매개체였을 것이다는 것.

▲이동희 인제대 교수가 '양산 다방동 유적의 성격과 가치 규명 학술대회'에서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조민규)

이 교수는 "400년 고구려 남정 이후에 낙동강유역과 낙동강 이동 지역은 점차 신라의 영향권 하에 들어갔다"며 "양산지역도 그러한 큰 흐름에 포함되어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양산은 5〜6세기대에 낙동강 동안 지역 가운데 창녕지역과 함께 가장 많은 고총이 확인된 지역이다"면서 "이는 신라가 대외적으로 급성장하던 5세기대에 양산지역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양산은 신라 경주에서 양산지구대를 통해서 낙동강 하구~중국·일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이자 낙동강하구를 통해 가야 경영을 도모할 수 있는 지정학적 거점이다"고 말했다.

"신라가 5세기 후엽을 중심으로 신기동 산성과 북부동 산성을 축조함은 직접지배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자료이다"고 하는 이 교수는 "이 무렵에 들어서는 토착 유력세력과 관련되는 다방동유적은 쇠퇴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양산지역도 향후 발굴조사 성과가 축적된다면 이와 같은 고총(古墳)의 변천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며 "수장층과 정치체의 양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동희 교수는 "다방동유적에 대해서 4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생활유적 중심이다"고 하면서 "생활유적 배후의 (추정)분묘유적(다방동유물산포지 1)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 당시 지배층의 무덤 양상을 통해 양산지역 고대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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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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