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는 장기요양 현장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요원과 장기요양서비스를 경험한 서울시민의 이야기를 통해 돌봄 현장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일상 속 '좋은돌봄'의 가치와 의미를 시민들과 나누기 위한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을 통해 올해 수상작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곧 여름인데 걱정이에요. 실온에 두면 음식이 금방 상할 텐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신대요?"
저는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내디딘 5개월 차 재가 복지센터 사회복지사입니다. 요즘 P 요양보호사님과 통화할 때면 종종 듣는 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이 짤막한 우려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현장에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묵묵히 돌봄을 실천하시는 요양보호사님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속 깊이 새겨진 화두는 바로 '사람 중심 돌봄'입니다. 사람 중심 돌봄이란 단순히 돌봄이 필요한 대상을 관리하거나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삶과 존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현장에 있다 보면 치매 어르신 돌봄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론으로 배운 것과 전혀 다른 돌발 상황을 마주할 때가 많아 돌봄 제공자도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P 요양보호사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돌봄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르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기관에서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시는 L 어르신은 알츠하이머 치매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인지 기능과 기억력이 저하되면서 홀로 계실 때는 식사를 거르거나 약을 제때 드시지 못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치매약은 규칙적인 복용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독거생활을 하시는 어르신께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려야 할지 사회복지사인 저로서는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P 요양보호사님은 어르신의 일상생활 패턴을 세심하게 관찰한 끝에 작지만 빛나는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리셨습니다. A4 용지와 굵은 매직을 준비해 큼직한 글씨로 메모를 적은 뒤, 미리 준비해 둔 식사와 약 접시 위에 올려두신 것입니다.
"OO월 OO일 오후 6시, 약 꼭 드세요."
"OO월 OO일 오전 8시, 아침 식사 드세요."
아주 짧고 단순한 문장들이었지만 그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님이 퇴근하신 뒤에도 그 메모를 보며 스스로 식사를 하시고 약을 챙겨 드셨습니다. 덕분에 평일 기준 하루 2회씩 발생하던 미복용 횟수가 1회로 줄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3월부터 토요일까지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주말 미복용 횟수 또한 기존 6회에서 절반 이상 줄어드는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는 어르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해 낸 값진 결과였으며, 요양보호사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에도 그 종이 한 장이 어르신의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어르신께서 식사를 하시고도 간식을 워낙 자주 찾으시다 보니, 최근 병원에서 당뇨 전 단계 진단을 받으신 것입니다.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간식 섭취를 줄여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조치라면 간식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기거나 아예 사두지 않는 '물리적인 통제'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님은 억제와 통제 대신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간식을 무작정 치우기보다 한 번에 드시는 양을 소량으로 나누어 담아두셨고, 당과 나트륨 함량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무가당 또는 저당이면서도 상온 보관이 가능한 품목으로 교체해 주셨습니다.
"치매라고 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간식을 찾아 집안을 헤매시게 하느니,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대로 챙겨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요양보호사님의 이 한마디는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금요일 퇴근길, 주말 동안 어르신이 드실 식사와 간식을 챙기는 요양보호사님의 손길에는 평소보다 몇 배의 정성이 묻어납니다. 최근 맛을 잘 구별하지 못해 음식을 자꾸 뱉어내시는 어르신을 위해, 모든 식재료를 일일이 잘게 다져야 하는 고된 수고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님은 자신의 편의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자 어르신 그 자체로 존중하는, 돌봄의 진정한 가치를 몸소 실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평탄한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센터장님께서 제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 L 어르신 댁에 가봐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따라 P 요양보호사님은 왠지 모르게 서둘러 어르신 댁에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예정된 서비스 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나 일찍 어르신 댁에 도착하셨고, 가슴 철렁한 상황을 목격하신 뒤 센터로 급히 연락을 취하신 것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가시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문턱에 주저앉으신 어르신은, 꼼짝달싹도 못 한 채 배설하신 상태로 멍하니 계셨습니다. 요양보호사님과 저는 어르신을 조심스레 일으켜보려 했지만,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셔서, 즉시 119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로 모셨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 어르신의 몸에는 배설물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나 불편함 같은 감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작은 움직임에도 고통스러워하시는 어르신의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물티슈를 준비해 요양보호사님과 함께 어르신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드렸습니다. 몸을 닦아드리는 동안 "어르신, 이제 괜찮아요. 저희가 옆에 있어요"라고 말씀드리며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다행히 어르신은 점차 안정을 찾으셨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으신 뒤 필요한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멀리 사는 가족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저희는 어르신의 곁을 든든히 지켰습니다.
병원을 나선 후에야 요양보호사님과 저는 비로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만약 요양보호사님이 일찍 가야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더라면 어땠을까. 마침, 근무가 없는 주말이나 공휴일이 아니어서 즉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요양보호사님의 깊은 관심과 직감이 또 한 번 어르신의 생명과 일상을 지켜낸 아침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노쇠로 몸이 약해지고 치매로 기억이 흐려져도 사람은 누구나 끝까지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좋은 돌봄은 바로 그 마음을 잊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확신과 함께'어르신이 살아온 삶의 자리를 지켜드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낯설고 외로운 시설이 아니라, 평생 살아온 집에서 익숙한 물건들과 손때 묻은 풍경 속에 머물며 자신의 삶을 끝까지 이어가실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돌봄입니다.
치매 어르신 돌봄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억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같은 질문과 말이 반복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마주하며 저 역시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요양보호사님이 매일 준비하시는 메모 한 장, 그리고 어르신의 인격을 위해 통제와 제한을 내려놓은 실천들은 좋은 돌봄이 결코 거창하거나 특별한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존중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 마음에서 우러나온 작은 실천들이 모여 비로소 가장 위대한 '좋은 돌봄'이 완성된다는 것을 현장에서 배웁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어르신의 안녕을 위해 일상을 지켜주고 계시는 P 요양보호사님을 비롯한 모든 요양보호사님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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