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이고 뭐고 다 떠내려가불고 목숨만 겨우 건졌당께요. 냉장고, 텔레비전이고 되는 것도 하나 없는디 우리 조카 손주들이 올 수나 있겄습니까."
추석 명절을 앞두고 22일 찾은 전남광주 영광군 백수읍 백암리 동백마을. 백수해안도로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자리잡은 이곳에는 지난달 31일 마을을 덮친 폭우가 남긴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박모씨(60대·여성)의 집은 바닥과 장판이 모두 뜯겨 있었다. 집 안에서는 선풍기와 건조기만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벽지를 따라 검은 곰팡이가 번져 있었다. 마당에는 못 쓰게 된 냉장고와 텔레비전, 곰팡이가 핀 이불과 가재도구가 쌓여 있었다.
박씨는 몸이 아픈 동생과 단둘이 살며 농사로 생계를 이어왔다. 이번 호우 피해로 집이 사람이 지낼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두 사람은 현재 마을회관에서 임시로 생활하고 있다.
올해 추석에는 부모 산소를 찾는 형제와 조카 손주들이 박씨 집에 모일 예정이었다. 가족들을 기다리던 박씨는 수해 이후 먼저 전화를 걸어 올해는 오지 말라고 했다.
박씨는 "여기에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까 추석이면 형제들과 조카, 손주들까지 다 올라고 했지요"라며 "올해도 우리 이쁜 손주 조카 오기를 기다렸는데 집이 이렇게 돼 아무도 못 오게 됐으니까 가족끼리 추석 보내기는 글렀고 재울 곳이 어디 있것소"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광지역에는 지난달 31일 시간당 최대 107.5㎜의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박씨는 잠을 자다 이웃 주민으로부터 "집은 괜찮냐"는 전화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렸고, 이미 집은 방 안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대피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와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며 "밖으로 나왔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당 빨랫줄을 붙잡고 집 위쪽으로 올라갔다. 추워서 덜덜 떨면서 119에 신고하면서도 '나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며 "소방관들도 집에 접근하기 어려워 한참이 걸렸다.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집 뿐만 아니라 생계를 책임지던 텃밭도 함께 피해를 입었다. 산비탈이 무너지면서 토사가 밭으로 쏟아졌고 수로도 일부가 파괴됐다.
박모씨는 "집과 살림살이, 한 해 농사까지 한꺼번에 잃으면서 당장 생계를 다시 꾸릴 길도 막막해졌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보다 아픈 동생의 생활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침대에서 생활해야 하는 동생이 마을회관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통증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이 많이 아파서 원래 침대에서 생활하는데, 침대도 폭우에 다 망가졌다"며 "마을회관 바닥에서 자느라 온몸이 아프다고 한다. 가족과 추석을 보내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아픈 사람이라도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빨리 복구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난달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영광군에 극한호우가 쏟아지면서 주민 11세대가 대피하는 등 당시 120여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다. 하천범란, 도로 침수, 가로수 쓰러짐, 산사태로 인한 토사 유출 등 공공시설 피해규모만 40억원이 넘어섰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 18일 영광 백수읍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영광군은 공공시설 복구와 재난지원금 등에 필요한 총사업비 75억5000만 원 가운데 56억8000만 원을 국비와 시비로 지원받을 예정이다.
군은 현재 침수 주택에 쌓인 토사와 가재도구를 치우고 도로·하천 등 공공시설을 응급 복구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위험한 상황은 긴급 복구로 대부분 정리된 상황이지만, 큰 하천이나 도로 등은 담당자들과 논의해 복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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