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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파병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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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파병을 반대한다

[인권의 바람] 파병에 반대한다.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반대하니까

오래전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시절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는 미술 수업 시간, 일곱 살 남짓 된 남자아이가 탱크를 그리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 전쟁은 언제 나요? 저는 전쟁 구경하고 싶어요. 하늘에 전투기도 날아가고 탱크도 지나가는 거 보고 싶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저 멋진 비행기와 탱크가 좋아 전쟁까지 좋아하게 된 이 어린이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엄마와 헤어져 영영 못 보게 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사는 집이 다 무너져서 길거리에서 위험하게 자야 하고, 무엇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특히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다치고 죽어요."

나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했다.

"전쟁 싫어요. 전쟁 무서워요. 비행기랑 탱크도 이제 안 좋아할래요."

일곱 살 어린이가 감당하기엔 조금 버겁고 현실적인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이 대화를 문득문득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전쟁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할 대상은 일곱 살 어린이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시민의 손으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9월 15일 오후 전남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미리내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 반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전투병이면 괜찮은 걸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전쟁 및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 확보를 이유로 주요 원유 수입국들에 파병을 요구했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이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형태의 전투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나는 전쟁이라는 참극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이토록 무지할 수 있는가 싶어 깊은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은 도대체 전쟁을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그 말의 진짜 무게와 의미를 알고나 한 발언인가.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전쟁을 둘러싼 어떠한 군사적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전투 병력을 직접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군사 작전을 후방에서 돕거나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명백한 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일곱살 어린이에게 전쟁의 진실을 가르쳐주었듯,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조곤조곤 일러주고 싶다. 이재명 대통령님, 총을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가해국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랍니다. 설마, 진짜로 몰랐던 건 아니죠?

어떤 이들은 '국익'을 명분으로 해외 파병을 주장한다. 일례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아덴만에 위치한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역 외곽으로 재배치하여 미국에 생색을 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국익을 단순한 정치적 '생색내기'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국익은 결코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국익은 국가라는 공동체 내부의 사회적·맥락적 약자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근본적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전제가 없다면, 우리가 말하는 '국가의 이익'이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겠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5조 제1항이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명시한 이유도 바로여기에 있다.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립 이유이자 다름 아닌 '최고의 국익'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파병을 반대한다

전쟁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결합해 발현되는 가장 극단적이고 잔인한 폭력의 형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한 여성 간호병은 이렇게 증언한다.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남자의 팬티를 빠는 일이야. 그게 가장 무서웠어." 이 짧은 고백은 전쟁이 여성의 노동을 어떻게 도구화하고 모욕하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은 통계 수치로 결코 계량할 수 없는 참혹한 파괴를 몰고 오지만, 그 칼날은 언제나 여성,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숙이 파고든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구조 속에서 약자들의 생존권은 유예되며, 오직 '가부장적 남성성의 현현'이라는 맹목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모든 존재와 가치가 처참히 희생당할 뿐이다. 구체적인 위협 또한 눈앞에 산적해 있다.

파병이 강행될 경우, 해외 교민들은 중동 내 보복 폭격이나 테러의 직접적인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파병에 투입되는 막대한 국가재정은 공공 돌봄과 사회 안전망 등 취약계층을 지탱하는 핵심 복지 예산의 삭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보라는 명분 아래 약자들의 삶의 기반부터 무너뜨리는 꼴이다.

제도권 정치가 내리는 결정 중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폭력은 멈출 수 있고, 부당한 전쟁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비극을 막고 진정한 국익인 평등과 평화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도대체 누구를 위해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엄중히 되물어야 한다. 국가의 이익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누군가 페미니스트의 반댓말은 '성차별주의자'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모든 이들은 곧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동안 끈질긴 연대와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적폐와 모순된 제도들을 뿌리 뽑아왔으며, 주체적으로 정치를 실현하는 시민으로서 존재해 왔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이 반대하는 파병은 결코 소수의 목소리가 아닌, 평등과 평화를 열망하는 평범한 시민 모두가 원하지 않는 파병과 같다.

페미니스트들이 반대하는 파병은 시민이 원하지 않는 파병이다. 정부는 이를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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