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서 학도병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자체가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학도병을 꼭 기억해주세요”
78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만난 6.25전쟁 참전용사 윤한균(94) 옹은 학도병들의 역할과 희생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16세이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구로 피난갔던 윤 옹은 자신을 비롯한 4형제 모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입대 후 미 7사단 32연대 3대대 본부중대로 배치 받아 일본에서 미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서울 수복에 참전한 윤 옹은 북한 지역의 이원상륙작전, 북청, 산수, 갑산, 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던 중 장진호 전투에도 참전했다.
윤 옹은 “일반적으로 군번 없는 군인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학도병 중 일부는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고 군인으로 참전했다”며 “6.25전쟁 전 국군의 수는 10만 여명이었는데 대구까지 후퇴하면서 이미 4만 여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해 전투에 투입될 수 없게 되자 대구 시내에서 모병관이 나이보다는 총을 들만한 사람을 징집하기도 하고 자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저는 동생이 모병관에게 징집당하는 것을 보고 저도 데려가 달라고 해서 함께 입대를 하게 됐는데 가보니 형님 두 분도 그 곳에서 만났다”며 “형들은 모두 전사했다”고 덧붙였다.
윤 옹은 학도병에 대해 “전쟁이 발발한 후 5만 여명의 학생들이 전쟁에 참가했고 이중 15~16세의 여학생 470여 명 등 2만 9622명은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아 정규군으로 전쟁에 참전했고 이 중 2570명이 전사했고 1080명이 부상을 당했다”며 “이들은 죽거나 다치지도 않아도 될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정부나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특히 “이는 자유세계에서 15~6세 어린 학생들을 정규군으로 참전시켜 총알받이로 써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국제적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해 국방부가 은폐했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2010년에야 국방부가 소년소녀 학생 징집의 불법성을 시인한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윤 옹은 “자의로 입대했든지, 강제로 징집이 됐든지 간에 우리는 학교 학도호국단에서 정규 과정의 군사교육을 받았고 애국애족에 대해 교육을 받으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전쟁에 참여하는 의의가 컸다”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했던 학생들을 떠올렸다.
또한 “학생들이 입대 하면 ‘하루살이 소위’ 가 됐는데 이는 당시 병사로 입대한 사람들 중에는 남의 집 머습살이 하던 사람 등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80%나 됐기 때문”이라고 당시 어려웠던 실정을 소개했다.
윤 옹은 “낙동강 전선이 무너졌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낙동강 전투에서 학도병들이 대거 참전해 교두보가 구축되면서 UN군이 참가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하게 됐고 동해안 영천, 포항, 울산, 장사 상륙작전에 600여 명의 학도의용군이 참전해 북한군의 시선을 흐뜨렸다”며 “상륙작전에서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했는데 나라가 사과나 예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현했다.
윤 옹은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후손들에게 “예전에 대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 전쟁이 발발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75%가 외국으로 피난을 가겠다고 응답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피난을 가서는 안된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가 싸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나라에 환란이 발생하면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한다”며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항상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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