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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운동이 더 커지려면…'해야 한다'는 당위의 언어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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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운동이 더 커지려면…'해야 한다'는 당위의 언어 넘어야

[시민건강논평]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할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지난 1일 전국의 환경단체가 모여 '환경비상시국회의'를 열었다. 2004년 이후 22년 만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주요 언론에서 다룬 곳은 거의 없었다. 환경과 기후는 여전히 주류 의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사이 탄소 감축 목표는 번번이 과학적 지식과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선에서 정해졌고, 화석연료 산업은 그대로이며, 메가특구와 같은 대규모 지역 개발 사업은 새로운 국정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묻는다. 그런데 사회학자 더글러스 포포라(Douglas Porpora)는 반대로 묻는다. 세상은 왜 바뀌지 않는가? 미국이 전 국민 건강보험을 수십 년째 거부해 온 일, 지구온난화를 알면서도 충분히 대응하지 않는 일 등에서 나타나듯 세상에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 이유에도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포라는 마가렛 아처(Margaret Archer)를 따라 이를 구조, 문화, 행위주체의 세 층위로 나눠서 설명한다.

우리는 그의 논의를 빌려 한국의 기후 위기 대응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가에 대해 돌아보고자 한다. 화석연료 산업권력과 성장주의 국가권력에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기후운동이 왜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지 못하는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연구소도 지난 9월 19일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한 한 주체로서 이제 운동 내부를 반성적으로 성찰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먼저 구조의 층위다. 포포라는 기업이 규제에 저항하는 이유를 경영자의 탐욕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 차지한 위치가 만든 이해관계에서 찾는다. 같은 논리는 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에게도 적용된다. 기후위기를 위한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에 수반되는 비용은 지금 당장, 특정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화석연료 발전소 폐쇄는 하청노동자의 일자리를, 농지 위 태양광은 임차농의 땅을 위협한다. 반면 중산층에게 기후 대응은 전기차와 단열 공사와 옥상 태양광처럼 보조금이 붙는 선택이다. 노동자와 농민과 저소득층에게 기후운동 편에 서는 일은 자기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일이 되는 셈이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에서 유명해진 표어인 '엘리트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지만, 우리는 이달 말을 말한다'가 보여주듯 당장의 생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무지나 탐욕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다음은 문화의 층위다. 현재 주류 사회가 받아들이는 기후 위기는 개인 차원의 도덕과 윤리로 프레이밍되어 있다. 그러나 텀블러 사용, 채식, 제로웨이스트, 비행기 덜 타기와 같은 개인 수준의 실천은 시간과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미 덜 소비하고 덜 배출하는 저소득층에게 이 말은 공허하거나 때로 모욕적이다. 이런 윤리는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만들 뿐 구조에 대해서는 어느 것도 지적하지 않는다. 기후가 교양 있는 중산층의 문화 코드로 소비되는 사이 '지역이 살 길은 개발 뿐'이라는 지배적 담론의 힘은 줄어들 줄 모른다. 새만금 신공항이나 메가특구에 호의적인 지역 언론 보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지막은 행위주체의 층위, 곧 누가 조직되어 목소리를 내는가의 문제다. 고무적인 변화는 분명히 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의 5대 요구에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농민·먹거리 기본권'이 나란히 들어갔고, 기후정의실천단은 당진 석탄발전소와 홍성 송전탑 현장을 돌며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났다. 이 과정에서 고용 위협을 안고도 발전소 폐쇄에 동의한다고 밝힌 발전 노동자들도 있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그러나 동시에 우리 연구소를 포함해 기후정의행진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발전소가 문을 닫아도 일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비용을 치르는 다수의 사람들의 요구는 탈석탄을 앞당기라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부터 지켜 달라는 것이 되고, 그 요구를 기후운동 안에서 대변할 통로는 아직 좁다.

이처럼 구조, 문화, 행위주체의 세 층위를 나누어 보면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사람과 기후 위기 대응의 비용을 치르는 사람의 요구가 아직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극 자체가 운동의 잘못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이를 이어 서로 다른 요구를 하나로 묶어 낼 전략, 곧 실천론은 운동의 과제이다.

한국의 기후운동에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진단은 위기의식도, 과학적 근거도, 도덕적 정당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탄소 발생 감축 목표를 올려야 한다, 법을 바꿔야 한다,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구체적 제안은 이미 많다. 그런데 이 문장들은 모두 "해야 한다"에서 끝난다. 누가 하는가 그리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서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이론이 운동에 부족하다는 것이 지금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해야 한다'로 끝마치는 것은 지금 이 글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이론을 우리 역시 아직 충분하게 벼리지 못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다시 확인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거리에 나온 발걸음이 헛수고였다는 뜻이 아니다. 그 발걸음이 없었다면 돌아볼 운동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다음 걸음은 '일자리부터 지켜 달라'는 요구와 '이달 말이 걱정'이라는 사람들의 고통을 설득해야 할 반대편의 목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후위기 대응의 요구와 서로 연결하여 공동의 요구로 만들어 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작업에서 우리 연구소가 할 수 있는 몫은 비용을 치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그것이 운동의 언어가 되어가게 하는 것이다.

※ 참고문헌

Porpora, D. V. (2015). Why don&t things change? The matter of morphostasis. In Generative mechanisms transforming the social order(pp. 185-203).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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