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종시에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기는 AI 서버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설비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아성다이소도 대규모 물류거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함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각 세종’을 AI 팩토리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SK증권·메테우스자산운용·시드에이치 컨소시엄이 2029년까지 약 7조 원을 투자해 세종에 360MW급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겠다는 협약도 체결했다.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세종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AI 컴퓨팅 인프라 집적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투자 규모에 감탄하기 전에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데이터센터가 세종에 들어오면 세종에는 무엇이 남는가?”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핵심 기반시설이다. 과거의 데이터센터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설이었다면,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와 고성능 네트워크를 활용해 AI 모델을 학습하고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지능 생산공장’에 가깝다. 데이터센터가 없는 AI 산업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데이터센터가 들어온다고 지역의 AI 산업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건설 단계에서는 상당한 투자와 고용이 발생하지만, 완공 이후의 상시 고용은 투자 규모에 비해 제한적일 수 있다. 본사와 연구개발 조직, AI 기업과 전문인력이 다른 지역에 있고 세종에는 서버와 냉각시설만 남는다면 지역경제 효과는 기대보다 작아진다.
반면 막대한 전력과 용수는 지속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송전망과 변전소 등 기반시설 확충에 공공의 부담이 발생하고, 전력 공급 여건에 따라 다른 기업의 입지가 제약될 가능성도 있다. 세수와 지역 구매, 고용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면 데이터센터는 세종의 산업기반이 아니라 전기만 소비하는 거대한 서버 창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센터를 유치했느냐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이용해 세종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과 서비스, 일자리와 지식재산을 만들어내느냐이다.
첫째,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세종의 기업과 대학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종시가 인허가와 기반시설을 지원한다면 투자기업도 일정 부분 지역사회와 산업생태계에 기여해야 한다. 세종지역 스타트업과 대학, 연구기관에 GPU와 클라우드 자원을 우선 또는 할인 제공하는 ‘세종 AI 컴퓨팅 바우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비용 때문에 자체적인 AI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운 지역기업이 데이터센터의 연산자원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할 수 있어야 한다. 서버는 세종에 있지만 그 혜택은 수도권 기업만 누리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네이버와 엔비디아의 AI 팩토리, 신규 데이터센터, 삼성전기 투자를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네이버와 엔비디아의 AI 인프라, 삼성전기의 AI 서버용 패키지 기판, 세종의 스마트시티와 자율주행 실증기반, 중앙부처의 공공데이터는 서로 분리된 사업이 아니다. 이를 연결하면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와 공공서비스가 결합된 세종만의 산업모델을 만들 수 있다.
데이터센터 주변에 서버·냉각·전력관리·사이버보안·데이터 분석·AI 소프트웨어 기업을 유치하고, 삼성전기 협력기업과 연계한 AI 반도체 및 첨단부품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한두 곳의 유치가 아니라 관련 기업이 모이는 ‘세종 AI 팩토리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셋째, 행정수도 세종의 강점을 활용해 데이터센터를 GovTech 산업의 기반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종에는 중앙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으며 국가 정책과 공공데이터가 생산된다. 행정수도특별법이 제정되고 국회와 대통령실 기능까지 확대되면 행정 AI, 정책분석, 민원 자동화, 사이버보안, 디지털 신원과 공공 클라우드 수요도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고, 세종의 기업과 대학이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한 뒤 세종에서 실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검증된 제품과 서비스는 공공조달을 통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으로 확산할 수 있다.
행정수도와 데이터센터가 결합하면 세종은 단순한 서버 입지에서 대한민국 공공 AI 산업의 실증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
넷째, 데이터센터 투자협약에 지역 상생 조건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지역인재 채용, 지역기업 구매, 협력기업 유치, 공동 연구개발, 스타트업 지원과 컴퓨팅 자원 개방 목표를 투자협약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투자기업과 지역 대학이 공동으로 AI·클라우드·전력·냉각·보안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교육 수료가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운영 과정에서 개발되는 냉각, 전력효율, 보안과 운영 자동화 기술을 지역기업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특허와 영업비밀로 축적하는 구조도 중요하다. 데이터센터 안에 외국산 장비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세종기업의 기술이 들어가야 한다.
다섯째, 전력과 환경 문제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장기간 사용하는 시설이다. 따라서 투자액뿐 아니라 전력 사용량과 공급계획, 에너지 효율, 재생에너지 활용, 용수 사용과 탄소배출 저감 방안을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고효율 냉각시스템과 에너지저장장치를 도입하고, 서버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인근 건물과 공공시설, 스마트팜 등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때문에 다른 기업의 전력 공급이 지연되지 않도록 전력망 확충 비용과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데이터센터의 성과를 투자금액이 아닌 지역경제 기여도로 평가해야 한다. 실제 투자 집행액과 상시 고용, 세종시민 채용, 지역기업 구매액, 세수 증가, 협력기업 유치, 지역기업의 컴퓨팅 자원 이용량, 공동특허와 AI 서비스 개발 실적을 매년 공개해야 한다.
삼성전기와 다이소의 투자가 생산과 물류의 기반을 넓히는 일이라면, 데이터센터 투자는 세종의 미래 산업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데이터센터는 그 자체로 산업생태계가 아니다.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는 기업과 인재가 모이고, 새로운 AI 서비스와 지식재산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지역산업이 된다.
세종시는 지금 투자 규모를 자랑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력과 부지를 제공하는 도시에서 AI 기술과 기업, 일자리와 특허를 생산하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데이터센터가 전기만 소비하는 거대한 서버 창고가 될 것인지, 세종의 새로운 산업을 움직이는 엔진이 될 것인지는 건물이 아니라 지금부터 설계할 지역상생 전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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