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민주시민교육 법안이 발의된 지 꼭 30년이 된다. 보통 가장 오래된 법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법 제정을 가장 오래 '기다리고 있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법안을 통한 민주시민교육 제도화의 시작은 김영삼 정부에서 '시민정치의식의 세계화'를 공식 의제로 논의하면서부터였다. 1997년 10월 최초의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은 민관학이 공동으로 제출한 법안이었다. 그동안 국회는 민주시민교육지원법, 민주시민교육활성화법이란 이름으로 총 17차례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한번도 상임위에 올라가서 논의된 적이 없었고 행안위나 교육위 소위에 머물다 회기 만료나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가 되곤 했다.
가장 오래 기다리고 있는 법이 된 민주시민교육법
왜 이렇게 법안 통과가 힘들까? 그 이유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민생 법안이나 쟁점 법안 또는 긴급한 입법을 필요로 하는 법안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의 입법예고 게시판 글만 보면 관심 폭주에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쟁점이 넘쳐난다. 인민민주주의, 공산사회주의, 전체주의 포퓰리즘, 동성애 교육, 좌파사상 주입과 같은 편향된 이념교육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이 대부분이고 정치적 편향, 편가르기 교육, 혈세 낭비, 평생교육법으로 충분하다는 비교적 온건한 댓글도 있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 공세는 낡고 뻔한 듯 하지만, 분단국가이고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주의, 진보-보수 진영논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앞세운 탈정치와 반정치 같은 요인들과 결합되면 그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이처럼 법안이 입법과정에서 막히자, 교육운동 시민단체는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하는 방향으로 제도화 기조를 틀게 된다. 서울시가 2014년 1월, '서울시 민주시민교육 지원 조례'를 최초로 통과시킨 후, 조례는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2026년 10월 현재, 광역시·도 12곳, 시·도교육청 14곳, 기초 시·군·구 58곳 등 총 84개의 민주시민교육 조례가 제정되었다. 조례로나마 지역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게 되었다. 민주시민교육센터도 서울시와 경기도 5곳, 부산에 설립되어 서울시의 경우 최대 6년 가까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현재 민주시민교육센터가 운영되는 곳은 없다. 그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부 지역에서 조례가 폐지되거나 지방권력 교체로 민주시민교육 예산과 인력이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정책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념적 백래시로 일부 지역에서는 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강했었다. 이는 민주시민교육 정책의 방향과 실행이 정치 지형과 정책결정권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크게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서울시의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쇠퇴를 거듭하면서 거의 해체 상태에 직면했다. 한 민주시민교육 시민단체가 서울시에 단체 등록을 하려고 시도했을 때 담당 부서가 아예 등록 업무를 다루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더구나 지난 2025년 9월 개정된 현행 서울특별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뜯어보면 사실상 개정이 아니라 개악이나 다름없다. 민주시민교육 정의부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정책 추진 내용이 없고 민주시민교육자문회의의 비상설화로 유명무실한 조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민참여기본법 틀 안에 들어간 민주시민교육
2024년 12.3 내란 사태는 한국 현대사에서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위기 순간이었다. 아무리 정교한 헌법과 법률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권력을 가진 주체가 민주적 규범을 무시하면 헌정 위기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광장의 응원봉과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적 회복 능력과 미래 과제를 명확히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그 미래 과제 중 하나로 민주시민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시민참여기본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은 아직 행안위소위에 계류 중이다. 시민참여기본법은 시민사회활성화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어 온 역사가 있다. 1990년대 시민사회 성장으로 국가-시민사회의 거버넌스적 관계가 중요해지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시민사회발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역대 정부에서 위상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민주시민교육의 추진과 강화는 시민사회발전위원회가 꾸준히 제기해 온 의제였다.
결국 민주시민교육은 단독 입법의 반복된 실패로 다시 시민참여기본법 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시민참여기본법 제정의 민주시민교육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찾을 수 있다. ① 입법 현실화와 시민의 기본권 명문화, ② 시민참여 4대 종합체계 구축을 통한 분절화 극복과 위상 재정립, ③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서 실천 연계형 교육으로 전환, ④ 지역 민주시민교육 생태계 조성의 근거 등이다.
다음 달 2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 민주시민교육 조례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다. 시민참여기본법 제정 의의를 이해하고 지역 사회의 대응을 위한 서울시 민주시민교육 조례의 개정 필요성을 관심 있는 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토론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의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며 관심있는 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 제도화 정착의 마지막 기회
민주시민교육 단체와 연구활동가들은 민주시민교육법이 단독 입법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민참여기본법의 조속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월엔 국회 본관 앞에서 다수의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입법과 제도화가 모든 일의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은 국가의 중요한 활동이며 주요 민주주의 선진국은 명칭은 서로 다르지만, 민주시민교육을 국가정책으로 지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과를 보장하는 정치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과정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 평범한 시민이 공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보장의 첫걸음은 그 사회에 민주시민이자 주권자가 구조적 다수를 차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행동하는 시민의 도덕이 되도록 교육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그 목표가 이미 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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