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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례대표제는 한국 정치를 구원할 수 있을까?

[기고] 부실한 정당들로는 비례대표제 장점 발현 어렵다

현대 민주주의와 정당 이론에 초석을 놓은 이탈리아 정치학자 죠반니 사르토리는 선거제도 개혁의 어려움을 논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도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을까? 그들 사회의 균열 구조를 관찰하는 데서? 자기 나라 역사 발전의 근본 동인을 찾아내는 데서?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서나 선거제도 입안자들은 기존 제도는 대충 훑어보고, 전문가란 사람들에게 제대로 조언을 구하지도 않으면서,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제도를 선택하는 것으로 자기 일을 마친다."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물론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에 충실한 것을 두고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그렇게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정당한 사회에서 정치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정치인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바는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취한 판단과 행동이 시민 다수의 이익에도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선거제도를 선택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르토리의 우려도 정치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전문가연하는 이들이 정치인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선거제도에 관한 조언이 기대만큼 견실하지 못하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비례 대표제는 어떨까?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그것은 우리나라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일까? 아니면 그것 또한 그들만의 이익 다툼, 그들만의 논리에 불과한 것일까?

1위 대표제의 원리와 효과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비례 대표제와 대척점에 있는 1위 대표제의 원리와 효과부터 살펴보자. 알다시피 우리나라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253명은 이 제도를 통해 선출되는데, 여기서는 1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구에서 단순히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그렇다보니 전국에 걸쳐 1, 2위를 다투는 양대 정당 후보들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3당 이하 군소 정당이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당이 비례대표에서 26.7%의 높은 지지를 받고도 전체 의석에서는 12.7%(38석)을 얻는데 그친 것이 제3정당에 불리한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는데, 이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영국 자유민주당의 전신인 사민-자유연합당은 1983년 선거에서 25.4%의 지지를 획득하고도 전체 의석에서는 3.5%(23석) 밖에 얻지 못했다. 당시 노동당은 연합당보다 불과 2.2%포인트 많은 27.6%의 득표율을 보였지만 연합당보다 186석이나 많은 209석을 차지했다. 참고로 국민의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총 득표율은 14.9%이다. 요컨대 1위 대표제는 전국적으로는 지지율이 낮지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높은 지지를 받으며 의석을 획득하는 정당이 드문 만큼 한 나라의 정당체계를 양당제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표출하고 대표하는 정당의 수를 크게 제한하는 것은 1위 대표제의 큰 문제임에 분명하다. 또한 이 제도에서는 다른 후보들 득표율이나 투표율을 감안하면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소수파 후보'(largest minority)가 당선되는 일도 비일비재해 민주적 대표성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게다가 선거구별로 한 명의 의원만 선출토록 한 까닭에 의회 정치를 지역구 봉사에 몰두하는 '소매상 정치'(retail politics)로 파편화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물론 1위 대표제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편화 문제는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대통령 정치와 함께 하거나 중앙집권적인 정당들이 개별 의원과 후보를 통제할 경우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단순다수 득표자에게 당선을 보장하면서 정당의 수를 줄이는 것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다. 1위 대표제가 양당제를 가져올 때 그것은 선거에서 분명한 승자와 패자를 가려 한 정당에게 전적으로 통치를 맡기고 그럼으로써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가 집권 정당의 실적을 두고 확실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해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와 같은 장점은 양당제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며, 1위 대표제라 하더라도 정당 수가 늘어나는 만큼 그 효능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비례 대표제의 원리와 효과

비례 대표제는 우리나라와 같이 전국 단위나 상대적으로 큰 지역 내지 권역을 선거구로 하여 다수의 의원들을 정당 득표 비율에 따라 선출하는 제도이다. 득표-의석 전환 공식(translation formulae), 선거구별 의원 수(constituency size), 진입 장벽으로 불리는 의석 보장 최소 득표 기준(threshold), 다수파 정당에 주는 의석 혜택(majority premium) 등에 따라 정도 차는 있지만,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만큼 1위 대표제보다 정당 수를 줄이는 효과가 적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정당을 허용한다. 최초로 비례 대표제를 도입한 벨기에의 경우, 선거구당 평균 14인의 의원 수에 5% 진입 장벽을 두고 동트 방식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조건에서 원내 의석을 보유한 정당 수가 모두 13개이고, 이들 중 연정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의석률 5%(8석) 이상의 정당 수는 7개이다(2014년 선거 기준). 대통령제 하에서 비례 대표제를 운영하고 있는 브라질은 동트 방식이면서 선거구당 평균 의원 수가 19명으로 많고 진입 장벽도 없어 원내 정당 수가 무려 30개이고, 5%(25석) 이상 정당 수도 11개나 된다(2018년 하원 선거 기준). 비례 대표제가 무색할 만큼 정당 수가 적은 경우도 있다. 터키에서는 같은 동트 방식이지만, 선거구당 평균 의원 수 7인에 진입 장벽 10%를 두어 4개 정당만이 원내 의석을 보유하게 되었다(2015년 선거 기준).

비례 대표제의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대표의 공정성에 있다. 승자독식 원리로 인해 사표 규모가 큰 1위 대표제와 달리 비례 대표제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유권자들의 표가 온전히 정당 의석 수로 반영되어 전체 의회를 구성한다. 그에 따른 결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석을 보유한 정당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고, 그만큼 시민사회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의회로 대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장점이 이렇다면 1위 대표제에 적용했던 같은 논리에 따라 비례 대표제의 단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당 수가 많은 만큼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는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정당 간 연합이 불가피한데, 그 수가 늘어나고 거기다 그들 간 갈등이 심할 경우 연정 구성 작업이 꽤나 어려울 수 있다. 설령 쉽게 연정을 구성해 정부를 운영하더라도 다당제에 따른 연합정부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가 정부 실적을 평가하고자 할 때 연정에 참여한 정당이 많을수록 어느 정당이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자기 나름의 판단에 따라 표를 던지더라도 다시 연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유권자의 책임 추궁 의사가 쉽게 무시될 수 있다.

정당 난립 가능성과 책임 정치 부족이란 결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 이 제도가 이뤄낸 역사적 성취를 간과할 수는 없다. 20세기 초반 처음 도입될 당시 비례 대표제는 약화일로에 있던 명사 정당들에게 일정 정도의 의석을 보장해주려는 목적이 컸다. 그러나 이 제도는 처음 의도와 달리 사회주의 정당에 연정 참여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그들이 체제를 위협할 뿐인 '운동 정당'에서 통치의 일익을 담당하는 '책임 정당'으로 거듭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례 대표제는 종교, 언어, 인종 등으로 크게 갈라진 나라에서 소수파를 대표하는 정당에 일정 의석을 할애하며 연정에 참여토록 함으로써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데도 일조했다. 분명 비례대표제와 그에 따른 연합정부는 정당 간 밀실 거래를 조장하며 책임성을 부과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불투명성 덕분에 반체제 정당과 소수파 정당이 통치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 사회 통합이 용이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동형 비례 대표제의 문제

두 선거제도의 기본 원리와 효과를 확인했으니 이제 우리 현실로 돌아와 정치개혁 차원에서 도입하려는 이른바 연동형 비례 대표제의 문제를 다뤄보자. 독일 선거제도를 모델로 한 연동형 비례 대표제는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명부를 제시한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투표하는 방식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지만, 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는 점에서 비례 대표제 성격을 가지며, 지역구 당선자 수에 맞춰 비례 대표 의석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연동형으로 불린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 대표제를 두고 1위 대표제와 비례 대표제를 묶은 혼합형 선거제도로 이해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유권자가 정당에 던지는 두 번째 표가 정당 의석을 사실상 결정하는 만큼 비례 대표제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연동형 비례제도 앞에서 밝힌 비례 대표제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즉 정당 난립과 그에 따른 연합정부 구성과 운영 문제로 인해 효과적이고 책임 있는 통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례 대표제 도입을 두고 대통령제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주장 또한 다수파 정당연합 구성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여소야대 분점정부의 작동 불가능성을 우려한 비판이다.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연동형 비례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현재 3%인 비례 의석 허용 최소 득표 기준을 독일과 같이 5% 수준으로 높이면 정당 난립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가 의회로 대표되지 못하는 데 있으므로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해야 한다. 한국 정치에 대한 문제 의식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두 반론 모두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근거는 이렇다.

독일 정당체계의 경험

첫 번째 반론은 독일의 역사적 경험에서 유추한 것으로 이해된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프랑스 3·4공화국, 전후 이탈리아와 함께 위에서 밝힌 비례 대표제의 결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예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례제는 의석 하나를 얻는데 최소 6만 표, 0.4% 득표율의 매우 낮은 진입 장벽을 두었는데, 이것이 10~15개의 정당 난립과 그에 따른 정부 구성의 어려움으로 정치 혼란을 부추겨 나치 집권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학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기도 했다. 이에 전후 독일은 지역구 3석 이상 또는 5%의 진입 장벽을 설정했고, 그 덕분에 통일 이전까지 기민·기사당, 사민당, 자민당의 3당 체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5% 진입 조항으로 3당 체계를 만든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전후 독일의 3당 체계를 만든 결정적인 요인도 진입 조항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위헌 정당 해산 판결이었다. 1952년에는 나치 부활을 노리는 사회주의제국당이, 1956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향하는 공산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당했는데, 이는 본 공화국 초기 극좌·극우 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발흥할 수 있었던 두 정당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현재 독일은 왼쪽 끝의 녹색당부터 오른쪽 끝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까지 6개 정당이 경합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 총선 후에는 그 6개만으로도 연정 협상에 난항을 겪으며 4개월이 지난 후에야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터키처럼 10% 진입 장벽을 두는 건 어떨까? 너무 높아 다수의 정당을 허용하는 비례 대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까? 그럼 행운의 수 7%는 또 어떨까? 6%는? 8%는? 안타깝게도 원내에 몇 개의 정당이 등장할지는 정말이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 어려움은 다음 두 번째 논의로 연결된다.

강건한 정당 조직의 중요성

한국 민주주의는 몇 개의 정당을 필요로 할까? 정당의 기능은 한 사회의 여러 갈등하는 이익과 가치를 표출하고 결집하고 대표하는 데 있기에, 그 수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갈등의 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정당 수가 너무 많은 것은 문제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발전과 분화로 과거보다 더 많은 부문 이익들 간의 갈등이 나타나고, 전통과 현대, 탈현대의 가치들이 각축을 벌이는 조건에서 단 두 개의 정당만으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수용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최소 넷 이상의 정당들에게 적정 수의 의석을 보장하는 비례제는 매력적인 대안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당이 시민들의 바람대로 자기 본연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당 수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기반과 체계적 연계를 가지며 안정적이고 위계적으로 조직화된 강건한 정당 조직의 존재 여부이다.

이런 정당이 없다면 비례제 덕에 정당 수가 늘어나도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모아 법률과 정책으로 전환하고 그 집행을 감독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통령이나 그런 잠재력을 가진 후보를 따라 흩어졌다 모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던 정당들이 비례제가 도입되었다고 해서 그런 행태를 바꿀 수 있을까?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노동자와 민중을 외쳤음에도 자기 지지 기반은 중산층 화이트칼라에 있는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던 정당이 비례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래도 비례 대표제가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연동형 비례 대표제가 도입되어 여러 정당들이 경쟁하다보면 진보 정당은 자기 지지 기반으로 돌아가고 다른 정당도 안정적으로 제도화될 기회를 얻지 않을까? 제도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그 반대의 가능성이 더 높다. 비례제는 작은 정당에 유리하다. 이것은 그만큼 정당을 만들기도 쉽고 해소하기도 쉽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 정당들은 대통령의 구심력과 비례제의 원심력 사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진보 정당이 왼편에서 표를 모으는 동안 오른편에서는 재벌 정당, 종교 정당, 극우 정당이 나타나 전체 정당 경쟁 구도를 양극단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5% 이상의 높은 진입 장벽에도 불구하고 비례제 하에서 정당 수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도 지금까지 한국 정당이 보여준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때문이다.

병립형 선거제도의 문제와 2회 투표제의 효능

연동형은 포기하고 비례의석 수를 지금보다 조금 더 늘리는 1위 대표제와 비례제 병립형은 어떨까? 이 제도가 양대 정당의 반발도 줄이고 전면 비례제의 부작용도 줄이는 만큼 사려 깊고 실현 가능성도 높은 대안이 아닐까? 그러나 이 역시 현명한 대책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1위 대표제에 따른 양당제와 비례 대표제에 따른 다당제는 각각 서로 상반되는 장점과 단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병립형은 양자의 장점보다 단점을 드러낼 가능성이 더 높다. 즉 양당제가 아닌 만큼 한 정당이 국정을 전담하며 유권자가 확실히 책임을 묻기도 어렵고, 다당제임에도 양대 정당에 의석이 쏠려 다양한 의견이 공정하게 대표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퓨전과 멀티가 대세라지만 선거제도에서만큼은 순수형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선거제도 변화로 지금까지와 다른 정치를 기대하고 싶다면, 흔히 결선 투표제로 불리는 프랑스식 2회 투표제(double ballot system)를 추천하고 싶다. 이 제도는 유권자가 1차 투표에서 자유롭게 자기 선호를 밝히고 규정에 따른 승자가 없을 경우, 일반적으로 2주 후에 치러지는 2차 투표를 통해 당선자를 결정한다. 2회 투표도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제약이 1위 대표제만큼 인위적이지 않다. 정당 난립을 방지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유권자의 선택지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1위 대표제에서는 그 제도 탓에 유권자가 원래 자기 선호는 밝히지도 못한 채 처음부터 당선 가능성을 고려한 차선 내지 차악의 후보를 찾아야 한다. 반면 2회 투표제는 제도 자체보다 다른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즉 1차 투표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최종 지지를 결정할 수 있다.

둘째, 이 제도는 정당 간 연합을 유도하며 경쟁의 양극화를 제한한다. 2차 투표는 유권자뿐 아니라 정당들에게도 합리적 선택을 강요하는데, 그것은 1차 투표에서 받은 성적과 당선 가능성을 고려한 정당 간 거래로 나타난다. 즉 선거구별로 득표율에 따라 자당 후보를 빼고 타당 후보에 지지를 더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합 형성을 위한 거래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념이나 정책에서 인접한 정당들 사이에서 좀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자명하다. 2회 투표제는 이런 방식으로 이념과 정서의 차이만 강조하는 정치를 줄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정당 간 연합을 모색하는 정치를 장려한다. 한국 정치에서도 점점 더 심화되는 진영 간 대립과 정당 간 갈등을 고려하면 이 또한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 선거에서 2회 투표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이미 선거 공약으로 제시된 바와 같이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실시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 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도 강건한 정당 조직 없이는 쉽게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정당이 취약하거나 이름뿐인 경우에는 어떤 선거제도도 기대하는 바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이것은 뒤베르제의 법칙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선거제도 효과에 관한 논의의 대전제이다.

막스 베버의 조언

대략 십수년 전 우리는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지지와 성원 속에 일련의 정치제도 변화를 단행한 바 있다. 정당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국민 경선제를 도입했고, 부패정치 청산을 위해 지구당 폐지,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 선거기간 중 정당 연설회, 확대 당직자 회의 금지, 선거 30일전부터 단합·수련·교육 목적의 정당 집회 금지 등 정당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을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이와 같은 제도 변화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애써 눈여겨보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2004년 이후 우리 정치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비례대표제는 이와 같은 제도 변화와 다른 결과를 보여줄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논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례 대표제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그것은 명부 작성을 둘러싸고 명사들 사이에 추악한 거래를 조장할 뿐 아니라 향후 이익단체들이 정당을 압박해 자신들의 간부를 후보 명부에 올리도록 만들 것이다. 그로 인해 의회는 진정한 지도자가 설 자리 없는 그런 비정치적 의회로 전락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 정당의 비례명부 작성처럼 보인다면서 누군가 그래서 정당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말할까봐 밝혀둔다. 베버는 머신이라고 불리는 강한 정당에 기반을 둔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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