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2017년 8월에는 아파트 단지와 학생들이 다니는 길목에 '5.18 유공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으로 공직을 다 차지하는데 학생들이 공부해서 무엇하냐'는 식의 전단지를 부착해 청와대에 대책을 호소하는 민원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는 다시 구청으로 내려와 담당자가 나에게 알아보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이 건을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관련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았으나 정부는 단순한 광고전단지를 부착하는 것으로 처리한 것이다.
▲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일대에 2017년 부착된 유공자 관련 전단지 ⓒ장재열
5.18 당시 나는 광주에서 북한군의 침투 관련해서 아무 것도 들은 것도 본 것도 없다.(참고로 나의 본적은 서울 종로구이다.) 북한군이 6백명이 내려왔다면 그 정도로 끝나겠는가? 계엄군이 물러갔어도 광주 시내는 조용했다.
또 서울 계엄사령부는 광주시가 평온하다는 식의 기사는 검열에서 거의 게재 불가라고 했다. 폭동으로 몰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5.18을 두고 이상한 분위기가 있어왔다. 일반인들이 5.18을 거론하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식자층은 필요없이 이념 논쟁에 휩쓸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호남사람은 오해받을까 걱정한다. 5.18을 두고 우리 사회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파고 든 것이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도 생각된다. 여기에 철저한 단죄가 없으니 망언이 일파만파로 번져 나가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 5.18 이야기가 나오면 대개 두 파로 갈린다. 5.18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파와 아닌 파가 4대6로 나뉘는 것이다. 2대8이 아니다. 그런데 6쪽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군인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지금의 상식으로 보면 5.18 당시의 사태는 상상하기 어려운 면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진실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사회의 정치인을 비롯한 지도층, 특히 호남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들의 확실한 자기반성과 의견개진이 필요하다. 또 5.18의 성격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는 이를 공직에 두면 안된다. 청문회에서 5.16을 어떻게 보느냐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5.18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5.18에 대한 사실에 어긋난 주장은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표현의 자유와 관계없는 극히 일부의 노이즈 마케팅이나 선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나서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일부 언론이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가볍게 취급하는 것은 언론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분명한 단죄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퍼져나가게 나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유공자 문제는 사안의 본류에서 벗어난 의제로 일부의 얄팍한 사술일 뿐이다. 5.18당시 사망한 군인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것을 포함하여 신군부쪽의 포상자들의 명단공개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자리 잡아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나라의 미래를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현지 기자의 의견과 다르게 게재된 1980년 5월25일 기사. 그때 정리하면서 ×표시로 불만을 나타낸 것 같다. 계엄사 검열에서 이런 류는 잘 통과시켰다.ⓒ장재열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