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국민경선이 있기 전인 지난 해 봄에도 김의원이 뉴욕에 온 일이 있었다. 그가 뉴욕에 오면 필자와의 방송대담 말고도 일부 지인들이 모이는 작은 모임이 열리곤 한다.
그때도 그랬는데 이 자리에서 김의원은 "반드시 정권재창출을 이뤄낼 수 있다"면서서 "놀랄 만한 드라마가 준비 돼 있다"고 말해 좌중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회창 후보는 절대 안 된다. 나한테 보름정도의 시간과 장소만 준다면 전국을 돌면서 그의 대세론을 한 순간에 잠재울 수 있다"고 기염을 토했는데 그땐 김의원 다운 주관적인 자신감의 피력이라고 여겼고 또 "노무현씨도 여러 모로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주목해 봐야 한다"는 말도 했었는데 당시만 해도 그냥 스쳐 들었던 게 사실이다.
***노무현과 김경재**
지난 대선에서 김의원은 국민경선 대회 후보토론 사회자, 당대표로 나선 방송 토론 단골 주자, 대선 선대위 홍보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뛰어 노무현 당선의 이른바 1등 공신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그는 고비마다 중심부에 서서 큰 역할을 했었는데,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원칙이 합의되던 현장에서 '언빌리버블(믿을 수 없다)'이란 탄성을 질렀던 일이며 단일화 방법으로 노후보가 여론조사를 수용한 것이 그의 지역구였던 순천에서의 결정이었다는 것 등은 언론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김의원은 선거 마지막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철회를 선언했던 그때가 가장 가슴 졸였던 때였다는데, 명륜동 자택 침실에 들어가 있던 노후보를 깨워 청운동 정후보 집 앞으로 함께 갔던 순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우리 후보님이 보통 프라이드가 센 분입니까? 청운동에 가야 한다고 하니까, 여러분과는 정치같이 못해먹겠습니다라고까지 역정을 냈었지요. 그런 그를 달래 김원기 고문 차에 태워 청운동으로 가는 길에 옆에 앉아 얼마나 절절하게 설득을 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노후보가 부산 억양으로 '아픕니더' 해서 정신을 차렸는데 노후보의 허벅지를 그렇게 주물렀던 모양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상은 동포사회에서도 큰 얘깃거리가 됐었다. 김의원의 성격을 잘 아는 동포들은 노후보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헌신과 열심이 참 의외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요즘 김경재 의원에 대한 동포사회의 평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그가 원내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을 헤맬 때 그를 잘 안다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 동지들 가운데 몇몇은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해 남들과 잘 융화하지 못하고 생색나고 폼나는 일만 하려해 어렵고 힘든 일에 몸을 던지지 않기에 그렇다는 말을 했었다. 한마디로 재승박덕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그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그의 태도에도 여유와 온화함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부분의 동포들이 망설이지 않고 '자랑스러운 동포출신'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미주동포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으며 동포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동포 문제에 대해서는 앞장서 나서곤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많은 의원들이 미주에 후원회를 갖고 있지만 정작 동포 출신인 그는 미주에 후원회가 없다. 그의 출신교인 순천고 동문회며 호남향우회 등을 중심으로 후원회를 만들려면야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쁘고 고달픈 동포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재의 최근 두 고민, 신당과 햇볕정책**
지난 대선 선거유세 기간 중 김 의원은 유세 현장에서도 모바일폰을 통해 뉴욕의 동포들에게 상황을 몇 차례 전하기도 했으며 개표가 끝난 후에도 전화를 통해 이렇게 감격을 전했다.
"신만이 쓸 수 있는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감동의 드라마를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 감동을 그대로 간직해 평화의 조국, 통일의 조국으로 이어 나가게 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 지난 이즈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김경재의원의 심기는 그다지 편치 않은 듯 하다. 개혁적 신당 창당문제와 연관된 자신의 입지, 그리고 자신 스스로도 크게 참여하고 공헌했다고 자부하는 햇볕정책과 관련된 새 정부의 일종의 궤도수정의 움직임 때문이다.
신당 문제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그의 입장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월말 노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직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벌써 그때 했던 말에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노대통령의 당선에 민주당이 기여한 바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전국에 있는 민주당 조직이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당선은 어림없었을 겁니다. 물론 민주당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의 정통 야당의 전통이 민주당에 담겨있는데 이를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죠."
햇볕정책 궤도 수정에 대한 그의 입장은 며칠 전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마디 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급작스런 여행 때문에 기사를 놓치고 말았지만 피력해온 특검 수용에 대한 불만으로 미루어 어떤 내용이었을까는 짐작 할 수 있다.
김 의원은 특검 수용이 잘못된 일이라는 견해를 계속 피력하고 있는데 야당의 정치공세에 놀아난 형국으로 특검을 해서 뭐 더 밝혀 낼 수 있겠냐는 입장이다. 그 일이나 국정원장 임명 때의 정보위 건의 소동 같은 일은 청와대의 정무 라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필자에게까지 목소리를 돋우기도 했다.
***"모든 것은 남북문제로 귀결된다"**
아무튼 한국정치의 활로와 관련 김의원은 모든 것이 남북문제에 귀결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어 자신의 향후 활동도 이쪽에 천착하겠다고 말한다.
"한국정치의 활로는 누가 뭐라해도 남북문제 해결에 있습니다. 시급하다는 경제 문제도 따지고 보면 분단문제, 분단비용과 큰 관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떻게 남북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가에 따라 정치는 물론 나라의 명운이 갈린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시급한 것은 평화정착입니다. 모든 제도와 법이 하나가 되는 완전한 통일국가야 조금 늦어지면 어떻습니까.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공존하면 엄청난 분단 비용이 해소되는 것 아닙니까?"
그에게는 꿈이 또 하나 있단다.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평화와 번영의 지대'로 조성하는 일이다.
"인천공항에서 시작해 동해안에서 끝나는 DMZ 전체에 8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합니다. 그 주변 엄청난 삼림과 하천 그리고 녹지대, 손댈 필요 하나 없는 자연의 보고 아닙니까? 관광의 명소일뿐 아니라 세계 환경운동이며 생물 생태학의 메카로 부상할 수 있을 겁니다.
문산쯤 되는 지역을 통일 한국의 행정 수도로 건설하는 겁니다. 글쎄 김대중시(市)라는 명칭은 어떨까요. 서울은 경제수도 또 충남권 신수도는 남쪽 자치정부의 행정수도, 평양은 북 자치정부의 수도, 이렇게 되는 겁니다.
김대중시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지대가 조성된 그해 6월15일 세계적인 축제가 열립니다. 미국의 대통령도, 러시아의 대통령도, 일본의 수상도, 중국의 총서기도 모두 참석하는 대대적인 축제입니다. 2000년 6월의 감격과 2002년 6월의 함성이 한 데 모아진 아니 그보다 더 큰 열기와 환희가 넘치는 그런 축제입니다."
역시 로맨티스트만이 꿀 수 있는 대단한 꿈이다. 하지만 왜 불가능한 꿈이라고 치부하려 하는가. 미국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경구가 있다. 바로 'NEVER TOO LATE'이란 말이다. 아주 늦은 법은 없는 것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오래 살았던 김의원의 정치철학, 인생모토도 '늦게 가더라도 바른 길로 가자' 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쯤에서 이번 글은 마치지만 김경재 의원, 그를 주목하고 있는 필자와 미주동포, 그리고 국내의 유권자 국민들의 시선이야말로 현재 '진행형'이기에 앞으로도 그를 다룰 기회는 많으리라 본다. <김경재편-끝>
***필자 안동일: 뉴욕 라디오서울 K-TV 뉴스앵커. 재외동포신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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