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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것만 좇는 기업, 미래 없다"

기술 패러다임의 미래를 찾아서 <9> 기술혁신과 기업의 역할

***근본 기술 혁신, 누가 할 것인가?**

현재 미국에서 특허를 획득한 나노 관련 기술의 상용화는 대부분 적어도 5~10년 뒤에나 가능한 것들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나노기술의 대부분은 근본 기술 혁신에 속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근본 기술의 경우 시장수요보다는 기술적 가능성 그 자체가 강조되며, 일단 특허로 등록될 경우 해당 기술의 이론적 기반이 아주 빠르게 전파 공유된다. 특허를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기술 선점의 경제적 기대 효과가 대단히 낮다는 얘기다.

자,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근본 기술 혁신에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까? 개별 기업의 경우 근본 기술 혁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이 낮기 때문에 정부나 대학교에서 지출되는 연구개발비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미국의 경우만 놓고 본다면, 대답은 전혀 아니다.

***미국의 근본 기술 혁신, 상위 기업들이 감당해**

미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노 근본 기술 관련 연구개발비 총액 중 절반을 20대 기업들이 감당하고 있으며, 정부와 연구 기관 및 신생 창업 기업들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에 발표된 관련 연구 논문에서 밝힌 특허 통계를 보면 이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IBM, 3M, HP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나노 관련 특허가 세계 최고의 대학 혹은 국립 연구소의 그것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의 특허에 기반이 되는 과학 이론들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 저널들에서도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을 만큼 그 이론적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특허와 학술저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인용지수와 인용시차는 과학과 기술의 근접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근본 기술 혁신이 갖고 있는 이론 지향적 특성, 낮은 기업 귀속성, 해당 이론 지식에 대한 경쟁 기업들의 접근을 선택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특성(비배제성)으로 인해 대기업들이 근본기술 혁신에 대해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항상 전체 연구개발 예산의 5~10%를 이 분야에 대해 지출해 왔고, 전환기에 이 분야에 대해 투자되는 비중은 특별히 높았었다. 해당 연구개발의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으며, 개발에서 상용화에 걸리는 시간이 대부분 7~10년 이상이고, 하나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연구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경영학적 지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대기업들이 근본기술 혁신 혹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지출하는가?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제시하기란 어렵다.

***과학과 기술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이론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 이론'이다. 근본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발견, 창조된 새로운 이론을 응용한 기술 혁신이 불가능 하다는 게 핵심 논거이다. 이 이론은 현재 기술경제학계에서 주류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아주 잘못된 가정 위에서만 성립한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 간에 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학-산 지식이전 촉진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하면 된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기술은 둘 이상의 서로 다른 성격의 과학적 이론을 필요로 한다. 동일한 시장 수요를 만족시키는 제품 개발을 할 수 있는 길은 최소한 두 개 이상 존재한다. 기업은 이렇게 아주 많은 가능한 기술적 방식들 중에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의 기준은 당연히 해당 기업의 특정한 비즈니스 전략이다. 다시 말해 기술이란 과학적 이론에 의해 정의 가능한 모집단 집합 중에서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상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에 기술 변화의 논리는 비즈니스의 논리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학-산 지식 이전 유형을 살펴보면, '흡수역량' 이론이 예측하는 바와는 달리 대기업의 경우 학-산 라이센싱 보다는 계약형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대기업이 첨단 근본 기술 산-학-연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기술 그 자체의 이전이 아니라 고급 연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기술 특허들 중에서 상용화에 실제 성공하는 비율은 미국의 경우 30%, 우리나라의 경우도 역시 25~30%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도 총 특허 중 상용화 비율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별로 독특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전략과 해당 기술의 특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아웃소싱, 과연 '만병통치약'인가?**

같은 이유로 몇몇 사람들은 '혁신'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활동 중에서 정작 기술 혁신 그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도 안 되며, 오히려 중요한 건 경영과 관리, 마케팅에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몇몇 대기업들조차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국가적 요구와는 반대로 장기간 막대한 투자비용 지출이 필요한 근본 기술 혁신에 역량을 집중하기 보다는 특허 경영이니 기술 아웃소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기술 및 지식 시장의 확산 및 성장에 관련된 소식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런 주장에 부쩍 힘이 실리고 있다. 아웃소싱을 강조하는 이들은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들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그 핵심은 어떤 기업에게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자체 개발을 하기보다는 아웃소싱을 통하는 게 불확실성도 줄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장도입에 필요한 시간 역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형성된 기술 아웃소싱은 미국이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통해 진행하는 아주 낮은 차원의 것에서부터 세계적 대기업인 필립스의 연구소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계약형 첨단기술 아웃소싱, 그리고 세계적인 유명 대학을 근거지로 삼아 아예 특정 기술과 관련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연구개발 전문 회사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암묵적 지식보다는 명시적 지식에 더욱 많이 의존하는 현대적인 기술 혁신 패턴을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기술-지식 시장을 통한 아웃소싱은 더욱 확장, 강화될 것이 분명한다. 그렇다면 과연 향후 기업들의 세계적인 경쟁력은 가장 적절한 기술들을 탐색, 구매, 결합해서 해당 기업에 적용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설계하는 능력에 좌우된다고 해도 좋은 것일까? 물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이다.

우선 기술 아웃소싱이나 지식 시장의 출현은 현대의 특징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00~40년대에 기술 개발만을 전담하는 상당한 규모의 독립 연구소가 수십 개 존재했었고, 이들을 통한 기술 아웃소싱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소들은 이후 대기업들의 산하 연구소 체제로 흡수되면서 서서히 소멸된 뒤, 최근 들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웃 소싱에도 일종의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기술 아웃소싱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한 기업의 기술역량을 구성하는 시스템 차원의 기반 기술은 아웃소싱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구성 부분을 대체하거나 접합하기 위한 패치워크 방식, 혹은 토털 솔루션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해당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 기술 시스템과의 호환성이 높거나 연속성이 높은 경우에만 아웃소싱이 이루어진다. 기술혁 신의 종류를 그 특성에 따라 나눌 경우, 근본 기술 혁신과 점진 기술 혁신, 전환 기술 혁신과 연속 기술 혁신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지식 시장을 통한 아웃소싱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기술은 점진 및 연속기술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전환 기술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어떤 기술 혁신이 해당 기업의 기술역량을 대체 전환하는지 아니면 보충하거나 승계하는지 여부이다.)

***근본 기술 혁신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

기업들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기술 혁신은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에 의해 선택된다. 그러나 이렇게 면밀한 고려와 엄청난 투자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근본) 기술 혁신조차도 시장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 뿐만 아니라 잘못 선택된 근본 기술 혁신의 경우는 해당 기업의 기술 역량을 열등한 부문에 붙잡아 매게 된다. 소위 말하는 락인(Lock in)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 비배제성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기업들의 근본 기술 혁신을 위한 투자는 '야심 차지만 현명하지 못한 일'이거나 혹은 '일확천금을 위한 위험한 도박'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후진적인 경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본 기술 혁신의 경우 해당 지식 기반이 되는 과학이론의 명시적(codified knowledge) 특성으로 인해 비배제성, 외부성 문제가 심각하며, 그래서 근본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특별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우선 지식은 정보가 아니다. 지식은 특정한 형태로 구조화된 시스템이며, 특정한 범주와 관점이 공유되지 않으면 해당 지식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방이나 이전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전환기 근본 기술 혁신은 특정 기업의 기술 역량을 구성하는 시스템의 얼개이다. 그리고 기술 지식 시스템의 전반적 형태 혹은 구조는 해당 기업의 특정한 비즈니스 전략, 각각의 시스템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불확실성의 질적인 특성, 그것에 대한 해당 기업의 특수한 대응역량이 어떠한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설계된다. 다시 말해 근본 기술 혁신에 필요한 지식의 구성 요소 각각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반면, 시스템 설계에 대한 접근은 극도로 제약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업 간 기술 시스템 이전이나 모방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위에서 거론된 것처럼 세계적인 대기업이 근본기술 혁신에 필요한 연구개발에 미연방정부의 총지출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엄청난 투자를 하는 이유이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근본 기술 혁신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상용화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예상 기대수익이 아니다. 특히 전환, 근본 기술 혁신의 경우는 어떤 기업이 자신의 기술 역량을 구조 전환할 때 요구되는 신규 기술 중핵(core technology), 시장 및 경쟁기업의 기술전략에 따라 기술 시스템의 설계를 변경해야 할 때 요구되는 적시 유연성 (on time flexibility), 다양하게 분화 가능한 관련 기술혁신의 풍부한 잠재 다양성(potential versatility)으로 측정되는 전략적 기술 역량의 근간을 이룬다. 따라서 근본 전환 기술 혁신의 경우는 어떤 특정한 특허 기술의 기대 수익, 잠재 시장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당 기술지식 시스템의 전체적인 얼개가 제공하는 시스템 효과, 시너지 효과, 전략적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근본 기술혁신에 투자하는 기업들은 시장경쟁에서의 상대적 우위가 아니라 해당 시장 전체에 대한 장기적 지배력을, 비교우위가 아니라 독보적 우위 전략을 추구한다.

***구호는 기술혁신, 속내는 아웃소싱?**

한국에서 "기술혁신에 올인"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대세가 되었다. 그에 따라 국내의 대기업들 역시 기술 혁신을 누구보다 앞장서 주창하며 정부의 더 적극적인 지원, 기업 근접지원형 기술 혁신 정책을 요구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전환기 근본기술 혁신에 실제로 투여하는 노력, 투자는 얼마나 될까?

이에 관한 전반적 현실을 보여줄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정확하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신문이나 기업 홍보 자료를 통해 소개되는 내용을 보면 근본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공정 및 점진 제품 기술에 대한 투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근본 기술 혁신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고, 특허 경영, 아웃소싱, 라이센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게다가 최근 대기업이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 정부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양상을 보면, 아예 정부와 대학교를 기업 기술 아웃소싱의 아주 효과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투자와 대학교의 연구 인력을 통해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그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만을 선정, 구매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우리나라의 국가적 기술경쟁력을 내부로부터 잠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기업들의 장기 생존력을 스스로 파괴할 뿐이다. 대기업들이 국내 연구소나 대학을 효과적인 아웃소싱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한,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역량, 근본기술 역량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없다. 정부의 기초 연구에 대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와 동시에, 해당 기초 연구 역량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존재해야 하는데, 대기업의 기술 경영 전략에 대한 마인드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조건을 만들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극대 이윤을 추구하는 게 그 본질인 대기업들에게 해당 기업이 손해를 보더라도 공공의 이익, 국가적 경쟁력을 위해 근본기술 혁신에 투자하라는 당위적 요청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업 내 근본기술 혁신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아웃소싱이 가능한 기술은 상당히 제약적이며, 경영전략상 중핵이 될 수 있는 근본기술은 그 본질상 아웃소싱도, 모방도, 이전도 불가능하다. 정부와 대학교를 한꺼번에 기업 부설 연구소 체제로 변화시킬게 아니라고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현재의 후진적인 경영 마인드를 내던지고 세계적 기술 선도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감한 전략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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