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이건 애초부터 무모한 계획일지 모른다. 뉴욕에서 LA까지 미국의 심장부를 가르며 달리는 기차를 이용해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것, 168시간의 기차여행을 통해 한국의 정신세계를 표현한다는 것, 그건 단순한 추상을 넘어 과욕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전수천. 1995년 베니스국제비엔날레 특별상 작가. 당시 수상작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 그 한국인의 정신>은 산업폐기물과 함께 토우(土偶)를 거대한 유리판 위에 상징적으로 설치한 비디오 모니터 작품이었다. 전수천은 늘 첨단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때론 융합하고 때론 갈등해 온 우리의 정신세계, 그 관념체계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보여 왔다. 그의 설치미술은 한마디로 불협화음의 미학이다.
14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될 전수천의 신작 퍼포먼스 '전수천의 움직이는 선 드로잉'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한국, 중심과 주변, 세계화와 지역화, 다민족과 한민족. 이 안에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양립해 내고 있는 부조화의 공존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번 작품을 이해하고 또 감상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부감 샷의 감각이 필요하다. 뉴욕에서 LA까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워싱턴 D.C.와 신시내티, 시카고, 세인트 루이스, 가든 시티, 산타 페, 앨버쿼키와 그랜드 캐년을 거치는 대장정은 미국이라는 커다란 대륙에 화가 전수천이 상상의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그 상상의 붓, 신의 손을 표현하기 위해 전수천은 막대한 돈을 들여 미국의 암트랙을 임대하고 거기에 또 막대한 공정과정을 들여 차량 하나하나에 흰 천을 둘렀다. 암트랙은 모두 15량 짜리. 흰천이 둘러쳐진 기차는 전수천의 작업 의지대로 조금씩 조금씩 미국 대륙에 선을 그어 나갈 것이다. 그 중심부를. 한국적 색감인 하얀 색으로.
스탭만 수십 명이 움직이고 거기에 따르는 문화인사들까지 합하면 100명이 훌쩍 넘을 인력 베이스도 이번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임을 드러낸다.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거대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정신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사람들이 전수천의 작품세계, 작업의 정신에 철저하게 동화될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한 부르주아 작가의 값비싼 여행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나친 관념의 여정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소란스런 세상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가기 위한 철학적 여정은 상업적 계산과 물질적 판단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창조한다. 9.11 이후 많은 작가들은 미국의 내면을 고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연찮게도 독일의 명감독 빔 벤더스도 '랜드 오브 플렌티'란 영화 작품에서 전수천 화백과는 반대의 길, 그러니까 LA에서 뉴욕으로 가는 여정을 잡았다. 9.11이 만든 미국의 흉터는 어느 정도인지, 그 트라우마는 알 카에다의 테러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근원적이고 본래적이었던 것이 아닌지를 파헤친다.
이번 전수천의 행위도 그 큰 틀의 사고에 속해 있는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이루는 것은 좁게는 미국의 내상을 하루 빨리 치유시키는 것이며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한국적 정서와 정신, 관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전수천은 생각하고 있다.
여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기차를 찍기 위해 헬기도 뜰 것이고, 역시 기차를 찍기 위해 촬영 차량도 따라 붙을 것이다. 기차 안에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기 소르망의 강연이 있을 것이고, 건축가 황두진, 사진작가 배병우, 피아니스트 노영심, 소설가 신경숙의 강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15량에 해당하는 거대한 기차, 암트랙이다. 기차가 움직이는 동선을 사람들이 좇아가는 건 상당 부분 호흡이 벅찬 일이 될 것이다. 전수천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3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움직이는 선이 그려져 있었던 셈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와 문화단체, 기업들의 협조를 구했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숙원의 프로젝트였던 만큼 전수천은 이번 작업에 자신이 가진 것 거의 모두를 걸었다. 3000마일 미국 대륙에 한 획 한 획 그어 나가는 이 야심찬 계획에 어떤 사람들은 실물경제 차원에서 비웃음을 보냈다. 하지만 그 정신적 가치의 영구성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을 정도다.
'움직이는 선 드로잉' D-1일.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가 그려낸 '폭주기관차'처럼 전수천의 기차 또한 미국 대륙을 달릴 것이다. 노도와 같이.
<프레시안>은 이 프로젝트 8일을 몇 차례에 나눠 현지 중계한다. 그 새로운 시도의 현장으로 독자들들을 초대한다.
ohdjin@hotmail.com
<박스 시작>
***'움직이는 선 드로잉'은 어떤 프로젝트?**
14일부터 21일까지 7박8일 동안 뉴욕에서 LA까지 미국 대륙을 흰색 천을 씌운 15량의 미국 암트랙 기차로 횡단하는 퍼포먼스. 이 때 15량의 기차는 일종의 드로잉의 도구가 되고 미국 대륙은 스케치 북이 된다.
따라서 이번 퍼포먼스 또는 프로젝트는 미 대륙의 중심에 한국적 정신세계를 관통해 내겠다는 작가적 야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프로젝트 기간에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다양한 소통의 장, 강론과 대화가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위해 국내외의 명망가급 인사들이 대거 기차에 동승할 예정이다.
전수천씨는 이번 작업을 위해 이미 지난 6일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로 뉴욕 맨해튼 한국문화원에서 지난 8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예술장르의 표현기법으로 움직이는 기차를 선택햇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박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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