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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토건·공적자금' 조합의 저주, 일본을 보라"

[기고] "일본 재정파탄론과 '反복지' 선동"

일본 국가채무에 대한 한국 보수세력의 묘한 관심

일본 정부의 국채 잔액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765조 엔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경400조 원쯤 된다. 국채란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말한다. 국가를 포함한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은 공채라고 한다. 국가는 재정이 부족하면 채권증서를 발행하여 이를 매각함으로써 부족한 돈을 마련한다. 이 채권증서는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또는 기관)이 사 간다. 일본 정부의 국채 잔액이 765조 엔이라는 얘기는 일본 정부가 여윳돈 있는 사람들한테서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한 채권 가운데 아직 갚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그 규모라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국채 말고도 단기증권 발행이나 일시 차입을 통해서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일본 정부가 빌린 돈을 모두 더한 것이 바로 일본의 국가채무이다. 국채는 국가채무 가운데 80% 정도를 차지한다. 일본의 국채규모는 사실 어마어마하다. 이게 우리나라 34년치 예산과 맞먹는다. 일본은 국채 이자만 해도 1년에 10조 엔을 지급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복지예산의 1.5배나 되는 금액이다. 일본의 국채 발행 규모가 이처럼 크지만 앞으로 줄어들 낌새도 별로 보이지 않자,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최근에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떨어뜨렸다. 국채 상환의 이행 능력이 낮아졌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의 국채 문제는 국제 금융시장의 큰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투자자들은 일본 국채의 발행과 유통 상황, 신용 등급 추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채가 금융시장에서 거래되고 있고 각국의 금융시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금융시장에서 생긴 문제는 곧바로 다른 나라 금융시장으로 번진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에게는 일본 국채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거대한 규모의 국채를 일본 정부가 얼마나 오래 짊어지고 갈 수 있을지, 만약 국채 상환에 문제가 생긴다면 금융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국제적인 논쟁도 한창이다.

일본의 국채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라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장도 일본의 국채 상황과 동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묘하게도 금융시장 참가자들보다 보수세력이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왜일까? 그 이유는 보수 세력이 어떻게 해서든 일본의 심각한 국채 문제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 논쟁과 연결시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 문제는 복지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한 탓에 생긴 것이니 우리나라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복지 지출을 늘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이들은 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본은 재정지출 규모가 국제적인 평균에 비해 오히려 작은 편에 속하는 나라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복지 지출 규모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조세부담률이나 사회보장 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도 국제적인 평균에 비해 훨씬 낮다. 이 부문에서 일본은 멕시코와 더불어 OECD 최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수 세력은 복지 지출 증가 때문에 국채가 증가한다는 주장을 별 부끄럼 없이 내세운다.

일본의 국채 발행은 재계와 자민당의 합작품

그렇다면 일본에서 국채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국채 발행이 늘어난 까닭은 일본정부가 세금은 덜 걷고 지출은 더 늘린 데 있다. 일본정부는 그 차이를 국채를 발행하여 벌충했다. 같은 얘기지만 일본정부가 세금보다는 국채에 기대서 재정을 운용한 것이 국채 발행 증가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정부는 국채 발행을 믿고 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었다. 토건과 공적자금에는 대규모 재정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 국채 발행을 늘려나갔다.

일본정부가 국채에 기대서 재정을 운용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국채 발행제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칙적으로 국채 발행을 금지한 나라였다. 일본의 財政法은 공채나 차입금 "이외의" 세입으로 세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법의 이 규정은 일본 헌법 제9조의 전쟁 포기 조항을 재정 면에서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뜻인가? 오늘날의 전쟁은 자금을 동원하지 못하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자금을 동원하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금을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규모 전쟁 비용을 세금을 걷어서 마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하려면 반드시 공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를 금지한다는 것은 전쟁 수단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재정법 제4조는 평화주의의 구현이다.

그러나 일본 재정법 제4조에는 공공사업비, 출자금과 대부금의 재원에 대해서는 국회의 의결을 받은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공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이 단서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공공사업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두고 일본 내에서는 지루한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한쪽은 공공사업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자 했고 다른 쪽은 넓게 해석하고자 했다. 마침내 힘겨루기는 공공사업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자는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다.

經團聯, 日經聯 등 일본 재계는 공채의 발행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공채의 발행이 재계의 이해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도로의 건설인데, 국가가 공채를 발행할 수 있어야 도로를 원활하게 건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 회사는 공채의 발행을 요구한다. 투자 대상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금융 자본가도 공채 발행 증가를 환영한다. 금융 자본가는 국채 보유를 통해 국가의 금융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이 재계가 공채의 발행을 바랐다는 사실은 공채가 왜 증가했는지를 이해하는데서 열쇠 역할을 한다.

1966년에 사토(佐藤榮作) 내각은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도로 특정재원과 공공사업 특정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건설공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한다. 자민당은 공공사업에 사용하는 자금은 재정건정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채 발행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예를 들어 건설공채를 발행하여 도로를 건설하더라도 나중에 통행료 수입으로 공채를 상환할 수 있어서 재정건전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님이 곧 드러났다. 통행료를 가지고 건설국채를 상환한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실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자민당은 공채를 발행하기 시작한 1966년을 "재정新시대"에 들어선 해로 규정했다. 실제로 그 때부터 일본정부의 재정 운영 행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맨 먼저 일본 정부는 법인세, 물품세 등의 감세정책을 폈다. 재정의 국채 의존도는 계속 높아갔다. 국채 발행 초기에 일본 정부는 공채 의존도를 5% 이내에서 막겠다고 했다지만 10%, 15%, 30%로 계속 늘어났고 1977년에는 30%를 넘어섰다. 1975년부터는 적자공채도 발행했다. 일본정부는 한 해에 한해서 재정법 특례법 형식을 통해 적자공채를 발행한다고 설명했지만, 이것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해마다 적자 공채가 발행되었다. 적자 공채는 특례법 형식으로 발행되었기 때문에 특례공채라고도 한다. 이 특례공채는 재정법과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지금도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재계의 요구에 의해 발행되기 시작한 건설공채와 특례공채는 자민당 정권의 장기집권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었다.

일본 국채 증가 3대 원인: 감세, 토건, 공적자금

일본 국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은 1990년대이다. 1990년대는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1980년대에 형성된 거품의 붕괴기였다.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감세를 해주는 한편 대대적인 토건 사업을 벌였다. 감세정책에 따라 소득세는 1991년 26.7조 엔에서 1999년에는 15.4조 엔으로, 법인세는 1989년 19조 엔에서 1999년 10.8조 엔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감세와 나란히 일본 정부는 1992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 정책을 폈다. 10여 년 동안 130조 엔이 넘는 돈이 경기부양에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해서 국채 발행이 늘어나자 고이즈미 내각(2001-05)은 국채 발행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로는 이 기간에 국채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91부터 10년 동안 증가한 국채보다 2001년부터 5년 동안 증가한 국채가 오히려 40%가 많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다시 한차례 국채 발행이 크게 증가한다.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1990년대 경기부양 지출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공공투자와 사회자본 정비가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 데는 집권 자민당의 정치적인 고려가 많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道路族"이라 불리는 자민당의 여러 의원들은 자신들의 주요 정치적 기반인 토건업자의 이익을 위해 공공 토목사업에 계속 재정을 배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에 대한 자금의 과잉 배분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공항을 많이 만들어서 그 수가 100여 개에 이르렀지만 비행기가 뜨지 않고 손님도 없는 공항이 늘어났다. 수많은 도로를 깔았지만, 한 행정장관이 말했듯이 곰만이 다니는 도로가 생겨났다. 여러 댐들을 만들었지만 별 쓸모가 없었다.

▲ 무리한 토건사업으로 국가재정을 망친 일본의 사례는 한국 정부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프레시안(조형·사진=손문상)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계기로 조성된 공적 자금도 국채 발행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은 동아시아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에 금융기능안정화를 위한 긴급조치법(금융안정화법)을 제정하여 대규모 공적자금을 조성했다. 이 자금은 주택전문 금융회사 등 부실금융기관 구제와 부실자산 인수 등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투입된 자금의 많은 부분은 회수되지 않았는데, 이는 고스란히 국채 증가로 남았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공적자금이 대규모로 투입되었다. 금융안정법은 2008년 3월에 시효가 만료되었지만 일본은 2008년 12월에 개정법을 만들면서까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국채 이자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국채 이자가 100조 엔이나 된다.

정리하자. 재계의 요구로 시작된 국채 발행 덕분에 보수 정권은 감세를 해줄 수 있었고 재정 지출도 늘릴 수 있었으며 자신의 집권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수혜자는 누구인가? 감세의 최대 수혜자는 말할 것도 없이 부유층이다. 공공 토건사업의 수혜자는 지역의 토호, 토건업자이다. 공적자금의 최대 수혜자는 고액 금융자산가 계급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 국채가 증가한 이유는 복지 지출이 증가한 데에 있지 않다. 물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 지출이 일정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국채 증가의 근본 원인이 감세, 토건, 공적자금 등 부유층, 재계 편향적인 정책에 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국채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 만만치 않은 反복지 논리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은 일본의 국채 문제를 복지 반대에 활용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채 증가 원인이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의 뜻은 쉽게 이뤄질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일본의 국채를 우리나라 복지와 집요하게 연결시키는 대담함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달리 보면 기득권층의 反복지 의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니 매우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복지의 제도화 역사가 짧을수록, 그리고 제도화 정도가 얕을수록 기득권층의 反복지 논리는 거세게 작용하는 법이다.

보수세력은 우리나라처럼 복지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복지국가 위기론, 복지국가 실패론을 얘기한다. 복지국가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부르고 이는 인플레이션, 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져 투자를 위축시키고 결국 고용과 성장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공공부문의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를 향해 보수주의자들은 큰 정부라고 공격한다. 부유층과 재벌을 지원하다가 늘어난 국가채무를 복지 때문에 늘어난 것으로 호도하면서 복지를 반대하는 근거로도 활용한다.

과거 보수세력은 "세금 폭탄론"으로 재미(?)를 좀 봤다. 세금 폭탄론은 일반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이용한 감성적인 논리인데, 의외로 위력을 발휘했다. 노무현 정부 때 종부세 대상이 아닌 사람들조차 세금 폭탄론의 영향을 받아 종부세를 걱정했다는 얘기는 이 논리가 잘 먹힌다는 것을 알려준다. 재정 파탄론은 최근에 보수 세력들이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논리이다. 보수 세력은 근거가 없음에도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일본의 국채 문제를 복지와 연계하여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재정파탄론이 외환위기를 겪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복지를 둘러싸고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복지 지출이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 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볼 때 복지 논쟁은 너무 당연하다. 논쟁을 통해서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反복지 논리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우리의 쉬운 논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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