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같은 시기에 같이 병역거부를 하게 된 친구
길수와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대학에서였다. 과반 같은 데서 만난 것은 아니었고, 학교 안에 있는 평화운동자치모임, 〈적극적 평화 행동(Positive Peace Action)〉에서였다. 그때 나는 신입생이었고 길수는 꽤나 '고학번'이라 부를 법했지만, <적극적 평화 행동>은 특별히 그런 학번이나 나이 위계를 의식하지 않는 문화였기 때문에, "선배"라고 불러본 적도 없으며, 지금도 딱히 '선배'라거나 '고학번'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는 같이 병역거부에 대해 이야기했고, 요한 갈퉁에 대해, 군수산업과 군사주의와 전쟁에 대해, 여성주의에 대해 세미나를 했고, 대자보를 붙였고, 팔레스타인 고립 장벽 문제를 다룬 <내 사랑 블레인 Bilin My Love> 같은 영화들로 상영회를 열었다.
2년, 3년, 시간이 흘러 <적극적 평화 행동>도 사람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과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지냈다. 길수와는 그 중에서도 비교적 자주 보는 편이었다. 내가 대학을 자퇴하고 대학거부선언에 참여할 때 학교 안에 자보를 붙이는 걸 도와준 것도 길수였다. 그리고 작년 11월 19일, 입영통지서를 받은 뒤에 길수에게 전화를 했다. 오래 전부터 병역거부를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에, 몇 가지 물어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얘기나 할까 싶어서 건 전화였다. 그런데 길수의 첫 마디는 이거였다. "어, 너 나 이번에 병역거부 하는 거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 길수는 입영일이 11월 21일, 나는 입영일이 11월 29일이었다.
그 뒤에 길수와 같이 여러 번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병역거부를 했지만 따로 기자회견 같은 건 가지지 않았기에, 나와 길수가 병역거부한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전할지를 가지고 몇 번 회의 아닌 회의를 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서울에서 지금 투쟁 중인 곳들, 점거 농성 중인 곳들을 연대 방문하고, 병역거부 소견서 등을 나눠주자고 했다. 그래서 여의도 Occupy 농성장을 갔고, 재능교육 투쟁 현장을 찾았다. 농성장에서, 집회 현장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환대해주었고 어떤 분들은 노조 활동 때문에 수감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해줬으며, 어떤 분들은 자신도 병역거부를 고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2~3곳 더 예정해두었지만 길수의 재판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아쉽게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 ▲ 병역거부자 길수 씨. ⓒ공현 |
지금의 한국군이 시민의 것이 아니기에,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바라기에, 병역을 거부한다
길수는 병역거부 소견서에 이렇게 썼다.
"군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군대의 무력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오직 시민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군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전쟁 준 민간인 학살, 전시 성폭력, 성매매, 그리고 베트남 전쟁 중 학살과 성폭력, 또한 군사쿠데타와 80년 광주에서의 시민학살로 얼룩져 있습니다. 한국군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서의 군대'의 정체성이 아니라, '전시를 위해 강력함을 유지해야 하는 군대'라는 정체성 하에서 이뤄지는 군사훈련은 부정의하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저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폭력의 가해자 또한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의 군대는 시민의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병역거부의 이유를 밝혔다. 1월 30일, 부천지원 453호 법정 '병역법 위반' 첫 공판에서 길수가 그런 자신의 주장을 좀 버벅거리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그 내용이 감동적이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저 자리에 홀로 서서 자신의 신념을, 존재를 증명하고 주장해야 하는 그 상황이 가슴 아파서, 울었다. 얼마 안 있어 나도 저 자리에 서서 나의 신념을 호소하고 증명해야 할 것을 알기에, 울었다.
(길수의 병역거부 소견서 <헌법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할 자는 제가 아니라 한국군입니다>는 길수 후원 카페 http://cafe.daum.net/withgilsu/2AP2/1 또는 '전쟁 없는 세상' 홈페이지 ☞바로가기에서 읽어보실 수 있다.)
세세한 부분에서는, 나와 길수의 병역거부의 이유는 서로 다르다. 하기야 병역거부자들의 이유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사실 처음에 병역거부 소견서를 쓸 때는 내 병역거부의 이유가 뭔지 사람들이 이해할 만하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내가 병역거부를 하는 이유라는 덩어리가 머릿속에 있는데, 그 덩어리를 이 각도에서 보면 이거 같고, 저 개념을 가지고 보면 저거 같은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일단 병무청에 보내기 위해 병역거부 소견서를 작성하고, 그렇게 쓴 병역거부 소견서를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스스로 다시 읽고 또 읽으면서 대충 내 병역거부의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이유는 지금의 병역 제도가 개인의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억압하며,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적은 군인의 임금 문제도 그렇고, 군대 생활에서 의식주 등의 질, 그리고 군대 내에서의 여러 문화가 모두 그렇다. 또한 한층 근본적으로는,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병역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상당한 확률로 군대에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곤 하는 많은 성소수자들, 종교적 신앙이나 기타 여러 이유로 군사 훈련에 불참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양식들, 그 모두가 깡그리 무시당하고 획일적인 생활을 할 것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건강을 해쳐 면제를 받든, 알아서 기능을 익혀 운 좋게 특례를 받든, 아니면 최근의 사례처럼 망명을 가는 수밖엔 없다. 그동안 여러 방면에서 주창된 국방 개혁안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문제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방안들을 충분히 모색하고 추진할 수 있음에도, 정부는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만 한다. 나는 이처럼 개인을 무시하는 병역 제도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
두 번째는 내가 군사력 증강을 통해 평화를 이룬다는 발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평화주의적 사상이라고 해도 아마 괜찮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무기를 줄이고, 여러 국가들이 공동으로 군비축소를 하고, 종국에는 상비군이 사라지거나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한이 휴전 상태이기에 군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휴전 상태를 종결시키기 위한 평화적 수단―외교든 뭐든―을 통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면서, 군대는 필요악으로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사적 수단에 의한 평화란 안정적이고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극복해야 하는 한시적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정부는 그동안 남북한 대치 상황을 국내 정치나 체제 유지에 이용해오곤 했으며, 불안한 대치 상태를 유지시키기만 했다. 나는 수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불안한 비(非) 전쟁 또는 반(半) 전쟁 상황이 아니라, 평화적 수단을 통한 평화를 이룩하고 유지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도록 촉구하는 차원에서 병역을 거부한다.
'대체복무제 개선'부터
| ⓒ공현과함께라면 |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얼마 전 <주간경향> 기사에서 언급되었듯이 "G20 회원국 중 병역거부자가 징역을 사는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라는 식으로 말해볼 수도 있겠다. 군사 훈련이나 병역이 특수한 활동이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나 개인의 양심, 신념에 충돌하기 쉽기에, 그리고 군사 훈련이나 병역 등에 반대하는 것이 인류 사회의 가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에, 대개의 나라들은 병역거부를 인정한다. 유엔시민적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등을 비롯하여 많은 국제인권 기준들 역시 병역거부를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이 당장 연간 수백 명이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되고 전과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특별한 현실이기 때문에,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복무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이미 한국에는 공익근무요원, 방위산업체, 상근예비역, 해외봉사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대체복무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복무 형태이든 4주간의 군사 훈련은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으며, 양심적 사상적 종교적 이유를 대체복무 사유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병역거부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4주간의 군사 훈련이 없는 대체복무제를 만드는 등, 대체복무제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물론 '대체복무제 개선'이 나나 길수나 다른 병역거부자들이 꿈꾸는 세상, 요구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대개의 병역거부자들은 더 많은 것들 더 나아간 것들을 상상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선 나는 여기에서는 '대체복무제 개선'부터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를 포함한 병역거부자들, 우리 사회의 어떤 '소수자'들을 배려해달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일단 우리 사회가 병역거부를, 이 목소리들을 '인정'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를 거부하는 신념들, 그리고 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그 목소리들을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그 사회적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갇히는 사회, 군복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사회에서, 평화주의에 관한 어떤 변화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도 군사주의에 균열 하나 생길 것 같지가 않다. 내가 대체복무제 개선을 우선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군사주의가 아니라, 강한 군대로 전쟁을 막는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군대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생각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변화할 여지를 두기 위해서이다.
그리 먼 미래는 아닐 거라 믿고 싶다
내 첫 재판은 3월 14일로 잡혀 있다. 길수와 나의 입영일자 차이는 8일밖에 나지 않는데, 서울지역이 밀린 사건들이 많은지 내 일정이 길수보다 한 달 이상 늦어졌다. 병역거부는 보통 재판에서 다퉈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첫 재판 직후 두 번째 재판 때 바로 선고를 한다. 그리고 대개는 선고를 하고 바로 법정 구속을 해서 수감된다. 내가 수감되는 날짜는 아마도 3월 20일에서 30일 사이로 예상하고 있다.
수감을 채 한 달 못 남겨둔 요즈음, 마음은 아주 착잡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감옥에 갇히는 꿈,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꿈도 많이 꾼다. 지금은 수형자들이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헌법소원에 청구인으로 참여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기도 하고, 여러 일들을 정리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2주 전에는 인천구치소까지 길수 면회를 갔다 왔다. 길수는 구치소 생활이 힘들어보였지만, 전해 듣자니 지금은 또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성격이 모난 나와 달리 길수는 좀 온순한 성격인지라 어찌 잘 지낼 것 같다. 감옥 안에서 '잘' 지낸다는 게 어떤 건지는 사실 아직 잘 상상은 안 가지만 말이다.
병역거부 소견서를 쓰면서, 그리고 또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길수가, 내가, 그리고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병역거부에 따른 1년 6월의 징역 생활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앞으로 더는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당하고 배제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그렇게까지 먼 미래는 아닐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렇게 믿기라도 하지 않으면, 이 시간들을 보내기가 아무래도 참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 ▲ 병역거부자 공현 씨. ⓒ공현과함께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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