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컬렉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그 세계를 이해하고 즐기는 컬렉터 층의 안목은 어느 수준의 폭과 깊이를 가지고 있는가? 또 물건의 거래 현장인 고미술 시장의 구조적 특징, 규율과 질서, 시장 참여자들의 구성과 자질은 어떠한가?
외환위기 때도 어려웠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질문들은 접할 때마다 가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그 모두의 현재와 미래를 긍정한다. 비록 지금은 우리 고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부족하고 시장 사정도 어렵지만 그 정도야 어느 사회에서나 있는 일이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긴 잠에서 깨어나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와 힘이 분출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원래 기대나 기다림에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동기가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우리 고미술 시장은 좀처럼 제자리를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컬렉션 문화도 무엇엔가 막혀 활력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미술업계 상인들은 "외환위기 때도 어려웠지만 이처럼 어렵지는 않았다"고 비명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수요는 기본적으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창출되는 법이어서 이러한 사정은 우리 경제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 우리나라 고미술 1번지 인사동 거리를 꽉 채운 인파. 사람들로 가득한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현재 우리 고미술 시장은 어려운 경제 사정에다 위작 시비, 투명하지 못한 거래 문화 등으로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길아트 |
이처럼 우리 고미술 시장의 불황과 정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어려운 경제사정을 그 주된 이유로 들고 있지만, 나는 정작 투명하지 못한 거래, 위작 모조품의 범람, 또 이를 적절히 걸러내지 못하는 감정 시스템과 시장 기능의 미흡함을 더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즉 시장질서와 거래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고미술 시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는 사회적 신뢰를 토대로 시장규율과 상도덕이 확립되어야 해결되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어떤 변화의 조짐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현실은 신규 컬렉터의 발굴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고미술품 컬렉션의 길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번 맛 들이면 헤어나기 어렵긴 하지만, 짧아도 4~5년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아야 눈이 뜨이고 컬렉션으로 향하는 마음의 문이 열린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은 미약한데다 고미술 컬렉션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해 초심자가 선뜻 발을 들여놓기 편한 분위기가 아니다.
경제력에 비추어 아직은 문화유산을 아끼고 그 가치를 탐구하는 우리 사회의 관심과 수준이 낮다는 의미일까? 아무튼 젊은 층의 신규 컬렉터들이 늘어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고미술업계의 장기 침체로 이쪽 분야에서 꿈을 펼쳐보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아 업계 종사자들의 평균연령도 높아지는 추세다. 컬렉터와 상인들의 동시적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에야 그 영향을 눈으로 피부로 못 느낄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언젠가는 우리 고미술 시장의 도약과 발전을 가로막거나 지연시키는 구조적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우선 시장거래의 정보공유와 경매시장의 활성화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고미술품 거래는 비밀스럽고 음성적으로 진행되는 관행이 뿌리 깊다. 그러다 보니 거래 물건에 대한 정보가 크게 제약되고 이로 인한 거래비용이 과다해진다. 경매시장은 그러한 불완전한 고미술품 거래시장을 완전경쟁시장으로 끌어낸 거래방식이다.
다행히 일부 대형 경매시장에서도 고미술품 거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최근 2~3년 사이에 인사동 지역에 몇몇 경매회사가 영업을 시작했고 지방에서도 소규모 경매시장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그 전망이 뚜렷하지 않지만 이처럼 다수 수요자와 공급자가 공개된 자리에서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경쟁하다 보면 시장거래는 활성화되고 불확실성은 줄어드는 반면 경제적 효율은 높아질 것이다.
▲ 마이아트 경매 현장. 경매는 정보의 비대칭성 등으로 음성적이고 불완전한 구조의 고미술품 거래시장을 완전경쟁시장으로 끌어내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이어서 앞으로 고미술 시장 활성화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한길아트 |
또 다른 변화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미술품 컬렉션 수요 기반이 조금씩 충실해지고 있는 점이다. 대학, 박물관, 협회 등 여러 기관에서 개설하고 있는 문화강좌, 답사, 단기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고 과거 서화, 도자기, 금속공예품 중심이던 컬렉션 영역이 민속,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잠재된 사회적 관심은 상당한대, 이를 제대로 발굴하고 표출케 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국미의 전통 미학과 특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컬렉션
우리 사회는 지난 30~4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여기서 축적된 국가 사회 에너지는 머지않아 또 다른 분야에서 성장 모멘텀이 되어 분출할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문화 예술, 그중에서도 고미술이 하나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서구 지향적 산업화와 압축성장 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우리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과 본질적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고, 그러한 인식 변화는 자연스레 고미술품의 컬렉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고미술품 컬렉션의 진정한 의미는 거기에 녹아 있는 한국미의 미학적 전통과 특징을 이해하고 그것과 소통하는 방법이자 채널이라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조금은 막연하게 우리 전통미와 소통하기 위해 고미술 컬렉션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고미술 컬렉션은 그 영역이 넓어 일반인이 시작의 단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또 그 속성이 얄궂은 데가 있어 쉽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여인처럼 초보 컬렉터를 애타게 한다.
컬렉션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배려와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고 열정을 가지고 때로는 저돌적인 공격이 필요하고 때로는 참고 기다리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포기할 수 없듯이 시도하지 않거나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고미술 컬렉션이다.
이쯤 해서 나는 우리 고미술 컬렉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을 위해 한국미의 특질에 대해 처음으로 뚜렷한 관점을 제시하고 한국 미술사의 초석을 놓은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40)의 말을 떠올린다. "한국 미술은 신앙과 삶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는, 즉 '생활 자체의 본연적(本然的) 양식화'라는 점에서 민예적(民藝的) 성격을 갖는다" 진정 한국미의 본질과 가치를 알고 싶다면 앞서 이 땅에 살았던 민초들의 삶과 가치관이 녹아 있는 물건들을 눈여겨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물건들은 완상을 목적으로 소수 계층을 위해 제작된 서화나 고급도자기가 아니라 대개가 농경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가재도구나 생활용품이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자연을 담은 목 가구에다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소망한 민화가 있고 규방 여인들의 한과 정성이 녹아든 자수품과 장신구가 있다. 민예적 아름다움이 담긴 일상의 생활잡기는 그 자체가 신앙이었고 삶이었음과 동시에 그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아름다움에 끌려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아 오늘도 많은 컬렉터가 쉼 없이 컬렉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그 길을 독자들과 함께 걷고 싶다. 우리 고미술에 담긴 아름다움과 영혼을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저자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77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1983), 경제학 박사(1987)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통화정책, 금융위기를 연구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2000, 한길사) , 『고미술의 유혹』(2009, 한길아트) 등을 저술하고 논문 5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유망 미술작가 해외진출 후원모임'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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