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정조대의 문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 조선 후기의 대표적 컬렉터 석농 김광국이 수집한 화첩 <석농화원>에 쓴 발문의 한 부분이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인용하여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지만, 미술품 컬렉션에 대해 이처럼 그 의미를 잘 드러내는 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컬렉션의 의미와 속성, 그리고 그 행태에는 많은 비유와 수식어가 따른다. 몇 마디로 그 뜻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컬렉션이란 행위 자체가 어떤 아름다운 물건을 소유하겠다는 인간의 복잡하고도 내밀한 욕망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한 컬렉션 욕망은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기저로 하고 있어 그 행동은 자칫 충동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본능적이기도 하다. 이를 에둘러 표현하면 세상일을 머리와 이성으로만 판단하고 처리하는 사람이나,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는 자신의 잠재된 본능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컬렉션의 의미는 없다고 해도 그다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컬렉션의 유혹 앞에서 이성은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나는 또 앞에서 컬렉션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고질적인 데가 있다고 했다. 이는 컬렉터의 행태적 속성을 인간의 생리적인 성벽(性癖)으로 보는 것이다. 벽(癖)은 병(病)이다. 일종의 중독증과도 같은 것인데, 심리학자들은 그러한 성벽이 인간의 본능이며, 잠재된 여러 욕망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컬렉션의 속성은 그러한 잠재된 욕망이 잠에서 깨어나 행동으로 이어지면 엄청난 열정의 에너지로 타오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컬렉션 욕망은 아마도 인간 심성의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으면서 적절한 동기부여가 되면 분출하는 열정의 덩어리, 비유하자면 지구의 중심부에 축적된 에너지가 언젠가는 폭발로 이어지는 화산의 마그마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제부터는 컬렉션과 컬렉터의 여러 의미, 그리고 그 행태적 속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 나름의 생각과 기준으로 감성적인 주제를 풀어내는 것이라서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성으로 규율되는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고 감성의 눈으로 다가갈 때 그 세계는 새로움으로 때로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컬렉션 그 자체가 감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미술품이나 공예품을 구입하여 감상하고 소장하는 컬렉션은 문화 행위이기도 하지만 엄연한 경제 행위이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소비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에 소용되는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소비 행위의 바탕에는 늘 기회비용을 생각하고 합리적인 선택 여부와 손익을 따지는 냉정함이 깔려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을 따져보고 구입하는 물건이 가져다줄 효용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컬렉션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경제적인 관점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무기력하게 하는 괴상한 힘이 작용한다. 그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컬렉터는 그 힘에 이끌려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어떠한 경제적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종내는 사고 마는 것이 컬렉션이다.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 오히려 수집하는 사람의 마음을 더 들뜨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컬렉션의 유혹 앞에서는 인간의 이성은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이성으로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흡인력. 그것이 컬렉션의 마력이다.
컬렉션의 세계에서는 보통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컬렉터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앞에 두고 이따금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망각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때로는 남한테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비이성적 행동을 한다. 자신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물건 구입으로 생활이 곤궁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이렇듯 무리를 하게 하는 것이 컬렉션이다.
그 같은 행동이 가능한 것은 컬렉션의 세계 그 어딘가에 자신의 존재를, 이성을 망각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자신을 잊고 몰입하게 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그 대상의 의미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이기도 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영혼의 간절함일지도 모르겠다.
궁핍함은 참을 수 있어도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견딜 수 없다
경제적 궁핍을 마다치 않고 미술품 컬렉션에 몰두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다.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69)는 그림을 모으는 데 돈을 모두 탕진한 나머지 끝내는 파산과 경제적 궁핍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 렘브란트 노년의 자화상. 스스로 화가였기에 그 누구보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것일까. ⓒ한길아트 |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포기하고 서화 골동 수집에 빠져 살았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컬렉터 상고당 김광수(金光遂, 1699∼1770)는 "가난을 끼니가 끊긴 채 벽만 덩그러니 서 있어도 금석문과 서화 감상으로 아침저녁을 대신하였으며, 좋은 물건을 보기만 하면 당장 주머니를 터는 통에 벗들은 손가락질하고 식구들은 화를 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 위창 오세창이 '조선의 으뜸'이라고 칭했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했던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黙 1792∼1840)도 "목숨보다 고적(古跡)을 보관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며 서화와 골동에 미쳐 살았으나, 가세가 기울어 말년에는 거처할 집조차 없었다.
▲ 육교 이조묵이 그린 산수화 ⓒ한길아트 |
이들은 모두 경제적 궁핍 속에서 세속적인 명리 추구를 접어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나 서화 골동의 아름다움과 대화하는 것에서 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건 취미가 아니라 어쩌면 삶의 목적,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세에 누가 그들의 삶을 두고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경제적 궁핍을 마다치 않고 그토록 수집에 몰두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은 컬렉션의 동인(動因)을 두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찾아가는 순수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또 영혼의 자유 또는 해방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미술창작에 반영된 인간 본성을 컬렉션 정신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창작과 컬렉션을 '아름다움'이란 동일한 가치를 찾아가는, 즉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은 관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컬렉션의 동인으로서 늘 인간 감성의 의미를 생각하곤 한다. 컬렉션이란 인간의 자유로운 생각을 억제하고 윤색하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건 분명히 때로는 충동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본능으로 치닫게 하는 감성의 영역이다. 컬렉터들이 경제적 궁핍을 마다치 않고 수집에 몰두하는 것은 아름다운 물건을 가까이 두고 독점하고 싶은 숨길 수 없는 그들의 수집욕망이 남들보다 강했을 것이고, 또 그들은 자신의 그러한 감정표현에 좀 더 솔직했다고 보는 것이다.
어쨌든 궁핍한 삶의 괴로움은 잊고 참을 수 있어도 아름다움의 대상을 찾고 소유하려는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타산적인 경제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런 이야기는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화가나 장인의 혼이 담긴 그림이나 공예품이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없어도 괜찮을 대상'에 정신을 놓고 빠져들게 하는 것이 컬렉션이다. 그래서 그것을 인간의 감성, 그 안에서도 본능에 가까운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77년 연세대학교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1983), 경제학 박사(1987)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통화정책, 금융위기를 연구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2000, 한길사) , <고미술의 유혹>(2009, 한길아트) 등을 저술하고 논문 5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유망 미술작가 해외진출 후원모임'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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