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은 곳이 컬렉션의 세계다.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컬렉션 세계의 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상당한 고가의 물건을 사 모으는 데는 경제력이 일차적인 힘이 되고, 물건을 평가하는 안목도 큰 도움이 될 테지만, 경제력과 안목 그 이상으로 간절히 원하는 뜨거운 마음이 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듣고 본 바로는 그렇다.
돈이 부족하더라도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열정과 물건에 대한 사랑이 그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컬렉션의 세계이다. 다시 말해 컬렉션의 세계에서는 돈으로만 살 수 없는 것들도 수없이 많을뿐더러 좋은 컬렉션일수록 돈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소전 손재형(孫在馨, 1903∼81)에게서 그런 예를 본다. 일본인 추사 수집가이자 연구가 후지즈카 치카시(藤塚 隣, 1879∼1948)로부터 조선시대 문인화의 정수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양도받기 위해 그가 보여준 정성과 열정은 이미 하나의 신화가 되어 후세 컬렉터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소전 손재형. 그는 양정고보 학생 시절, 추사의 <죽로지실>을 경매에서 낙찰받을 정도로 추사의 작품에 심취하였고, 일본인 후지즈카 치카시로부터 <세한도>를 양도받기 위한 열정과 노력은 후세 컬렉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57년 무렵 효자동 자택에서 작품에 몰두하던 모습. ⓒ한길아트 |
컬렉션은 아름다움이라는 생명체와 인연을 쌓는 것
마찬가지로 지식만으로 뛰어난 컬렉터가 될 가능성도 훌륭한 컬렉션을 만들어갈 가능성도 없다. 지식은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 돈과 지식,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어찌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인간 영혼의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으랴!
그런 점에서 컬렉션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는 것과 같은 데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고, 열정을 가지고 때로는 저돌적인 공격이 필요하고, 때로는 참고 기다리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참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그런 판단과 행동을 두고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행태라고 불러도 좋다. 참된 사랑이 그러하고 이 세상의 모든 소중한 가치와 뛰어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여 존재하듯이 컬렉션도 그런 데가 있는 것이다.
그렇듯 컬렉션의 의미에는 돈과 지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굳이 그 무엇의 의미를 찾아본다면 수집하는 물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삶에 지친 중년의 로망일 수도 있고, 영혼의 자유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긴 여정일 수도 있다. 상처받은 영혼의 쉼터이자 마음의 고향일 수도 일상의 편안함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돈으로 지식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삶은 참으로 무정하고도 무미건조한 삶이다. 살아가되 삶이 아닌 그런 삶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나의 소박한 생각이나 의미 부여와는 달리 돈으로 그런 것들을 살 수 있는 데가 컬렉션의 세계이기도 하다.
고미술품이 거래되는 시장에서는 돈이 있으면 컬렉션 범주에 드는 모든 것을 구할 수가 있음을 본다. 반대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앞에 두고 돈이 없어 좌절하고 번뇌하는 컬렉터들도 많다. 그곳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고상한 문화 예술의 감상과 소장을 목적으로 또는 그런 정신으로 물건을 거래하는 곳이 아니라, 경제력과 자본이 중심이 되어 참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세속적 타산에 충실한 곳이다. 어쩌면 어느 삶의 현장보다 돈의 위세가 드세고 이해타산에 지독한 데가 고미술 시장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서화 골동이 권력에 미소 짓고 돈에 꼬리 친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것이 과거 어두웠던 우리 고미술시장의 한 단면을 이야기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흘려 넘기려 하지만 고미술품과 자본의 관계, 아마도 그것은 이미 운명 지어 있는, 그래서 참으로 묵은 인연일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본이 컬렉션이라는 장(場)을 통해 미술과 화해하고
그러나 나는 그런 세상을 긍정한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예술과 자본처럼 내면의 정신세계가 다르고 가치관과 지향점이 다른 영역이 있을까마는 세속적인 손익에 냉혹한 자본이 겉으로는 아름다운 문화의 옷을 입고 우아한 미소를 짓는 것이나, 그런 자본을 천박하다 비웃다가도 자본이 내미는 손을 꼬리 치며 잡는 예술의 허위를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을 것이고 또 그런 것이 인간세상 본래의 솔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본의 미술품 컬렉션에 불순한 의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불순하고 천박한 자본일수록 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 예술과는 동떨어진 천박한 자본이 컬렉션이라는 장을 통해 미술과 화해하고 문화자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불순한 컬렉터를 나의 친구로 이웃으로 맞아들이고 싶다. 역설같이 들리지만 그들이 있어 인류의 문화 예술 활동이 꽃을 피웠고, 위대한 문화유산은 보존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역사에서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에서 찾을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이 14∼15세기 금융업으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토대로 학문과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가 피렌체에서부터 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고, 메디치 가문의 그런 예술후원 활동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학문과 예술후원의 대명사로, 또 불멸의 전설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당시 교회가 금지한 이자 받는 사업을 통해 재산을 불려 메디치가의 실질적 창업주가 된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는 신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저승에서 영혼의 구원을 보장하고 이승에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자 매체를, 즉 예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한 후원은 결과적으로 르네상스를 촉발해 인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따지고 보면 메디치 가문의 예술 후원 활동은 사업 감각과 권력 본능, 신에 대한 외경이 혼합된 것이었다고 본다면 너무 냉혹한 평가일까?
냉혹한 자본이 미술품 컬렉션을 통해 세상과 화해한 사례는 폴 게티(J. Paul Getty, 1892∼1976)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폴 게티. 일찍 석유사업에 뛰어들어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지만 부하 직원들이 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자물쇠로 잠가놓고 손님에게도 공중전화를 쓰라고 할 정도로 인색한 악질 기업가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고 저임금으로 재고용하거나 나치에 박해받는 유대인 재벌의 고가구를 헐값에 싹쓸이하기도 했다. 또 그는 여자를 수시로 바꾸는 바람둥이였다. 5번을 결혼하고 모두 2~3년 안에 이혼했는데 원인은 모두 돈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게티 미술관. 폴 게티는 돈을 모으는 데는 누구보다 지독하고 철저했지만, 미술품 수집에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미국 LA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 세워진 게티 미술관은 후세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길아트 |
그렇지만 그는 생전에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미술품을 수집했고 또 막대한 보유 자산을 미술관 사업에 쓰라고 유언함으로써 죽어서는 아름답게 이름을 남겼다. 미국 캘리포니아 LA 산타모니카 산 정상에 미국 5대 미술관으로 인정받는 폴 게티 미술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전에는 그렇게 지독하게 굴었지만 그처럼 미술품 컬렉션에 미친 자본가들이 있어 인류의 문화유산은 모아져 보존되고 우리는 지친 영혼을 그곳에 의탁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메디치가 추구했던 예술후원 사업이나 게티 컬렉션에 담긴 의미는 여러 가능성을 두고 이해할 수 있겠으나, 세상의 이익에 충실하고 차가운 자본가가 컬렉션을 통해 대상물에 구현된 아름다움에 눈뜨고 인간정신의 따뜻함과 순수함을 되찾을 때 나는 이를 영혼의 구원이라고 이름 짓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본의 도움으로 세속에 찌든 영혼이 해방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이 천의 얼굴을 가진 컬렉션과 컬렉터에 대한 나의 해석이자 의미부여다.
저자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77년 연세대학교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1983), 경제학 박사(1987)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통화정책, 금융위기를 연구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2000, 한길사) , <고미술의 유혹>(2009, 한길아트) 등을 저술하고 논문 5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유망 미술작가 해외진출 후원모임'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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