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노래에 떠오른 이름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노래에 떠오른 이름은…

[표현의 자유 연속 기고 ②] 예술보다 허구적인 현실

지난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던 박정근 씨는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고, 현재 2심에서 징역 2년 구형을 받은 상태로 오는 22일 나올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정근 씨가 구속된 사유는 검찰에 따르면 트위터가 "네 명만 팔로우해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검찰 측은 법정에서도 "아니 그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트위터에 누가 이유 없이 그런 글을 쓸 수 있느냐"고 말하기도 했으며, 더불어 "깨진 유리창 이론"(가벼운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소개하며 중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정근 씨 사건 이후 리트윗으로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고 압수수색과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들에게 박정근 씨의 혐의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묻는 등,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순한 행위마저 수사 범위에 넣고 있습니다. 심지어 피의자들에게 배우 김여진 씨의 글을 리트윗한 이유를 심문하거나 "간첩들이 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전교조는 빨갱이, 광우병 대책위는 체제 전복 단체"라는 등의 정치 편향적인 훈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파악된 관련 피의자는 박정근 씨를 포함해 8명(1명은 정보통신법)이며, 박정근후원회는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련 혐의로 조사를 받은 당사자들의 연속 기고를 <프레시안>에 게재해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알리고,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치졸할 정도로 협소한가에 대해 고발하고자 합니다.


표현의 자유 연속 기고
'김정일=암세포' 비유한 내가 종북이라고요?

"너 피델 카스트로 좋아해?"

이 질문을 들은 쿠바 친구들은 그 즉시 주위부터 살폈다. 새 친구를 사귈 때마다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다닌 까닭은, '혁명의 영웅'에 대한 만연한 증오심에 놀라서였다. 외국인과 단순히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불심 검문을 당할 수 있는 나라의 슬픈 표상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을 떠나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하겠다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결국 정착에 실패한 나는 귀국했고, 한동안 술을 참 많이 마셨다. 살 곳도, 여행 후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했던 나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고, 그 덕분인지 술에 취한 날이면 헛소리를 많이 했다. 술에 깨고 나면 열에 여덟은 '왜 이런 미친 소리를 했을까'란 생각이 들어 낄낄거리기 일쑤였는데, 그러다 문득 쿠바 친구들이 떠올랐다. 웃으며 대화를 하면서도 항상 주위를 살피던 그 긴장된 눈동자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평소에는 공기와 같아 느껴지지 않는 내 자유에 감사했다.

어느 날, 박정근 사건이란 것이 터졌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라는 북한의 기구가 운영하는 계정의 트윗을 리트윗하며 조롱하던 한 청년이 구속된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날 또다시 쿠바 생각이 났다. 다시 정착해보려던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여러 기본권이 제한된 쿠바에 비교하는 것은 분명한 비약이다. 하지만 나는 불경하게도 이 나라를 폐쇄적 국가인 쿠바에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이 일상 언어의 폭을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내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다.

나는 한 무고한 청년의 안위뿐만 아니라, 트위터라는 내 소통 공간의 다양한 세계관이 위축될까 걱정됐다. 작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표현의_자유와_박정근을_생각하며_우리민족끼리_일 5회_리트윗'이란 트윗을 쓴 후, '우리민족끼리' 계정의 트윗을 리트윗하기 시작했다. 박정근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항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인터넷에 북한에 대한 정보가 널려있는 세상에 동의의 의미도 아닌 리트윗이 왜 죄가 되는 것일까? 나는 이런 마음으로 2012년 5월까지 325건의 트윗을 리트윗했고, 내 한낱 손가락 저항은 여기까지였다. 그 뒤로 그의 이름을 간간이 신문에서만 봤다. 작년 말, 1심 유죄 판결 기사를 본 뒤로는, 나는 그의 이름을 자발적으로 망각하며 다시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올해 4월 20일, <SNL 코리아> 이수영 편에서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노래가 히트하는 것을 보며 나는 박정근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려냈다. 2심 공판 중이었을 그는 아마 내 쿠바 친구들처럼 '말'을 조심하며 지내고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웃으며 보고 있는 저 방송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에게도 급작스레 일이 닥쳤다. 심야 근무를 마치고 귀가 중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고, 여러 명의 남자가 나를 둘러쌌다. 그렇게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죄명은 박정근과 같은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 위반이었다. 그다음 주에는 출국 금지 통지서가 날아왔다. 있지도 않은 날개가 꺾인 듯 아팠다. 나의 자유란, 이렇게 어이없게 제한될 수 있는 것이었다. 졸지에 나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쿠바 친구들과 같은 신세가 돼버렸다. 억울한 마음에 난민 신청과 같은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았다. 가능성이 영 없는 이야기 같지는 않다. 실제로 올해 4월 호주 난민심사재판소는 한 한국인의 난민 신청을 승인하며 박정근 사례를 여러 차례 인용했다(<시사인> 306호 '호주, 박정근 사건 들어 한국인 난민 인정').

ⓒ<SNL 코리아> 이수영 편 화면 갈무리

그렇게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에 쌓여 경찰 소환을 기다리는 동안 막연히 알고만 있던 국가보안법에 대해 알아봤다. 1996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문이 눈에 띄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및 제5항은 각 그 소정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축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헌재 1996. 10. 4. 95헌가2"

즉, 검·경은 내가 대한민국 존립 안전을 해치는 명백한 이적 행위를 했다는 1차 판단을 한 셈이다. 국가보안법 수사는 경찰 보안수사대, 국정원, 기무사 이 3개 기관에서 진행한다. 국제 엠네스티에 따르면 2012년 국가보안법으로 입건한 사건은 총 120건이고, 이 숫자는 불기소 처분된 인원과 기소 후 무죄 판결이 난 인원을 포함한다. 3개 기관을 합치면 몇천 명은 될 수사 인원이 1년에 120건을 수사한다면 아주 위중한 건만 처리한다는 뜻일 텐데 나와 박정근의 행위가 그러한가?

총 5차례, 40여 시간의 취조를 받았다.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보안수사대의 트위터란 매체에 대한 무지였다. 피의자인 내가 트위터의 기능에 대해 설명해줘야 하는 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사건의 중심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는 방통위에서 유해 매체로 지정돼 차단돼 있는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할 경우 차단할 방법이 없다. 이런 까닭에 앱으로만 트위터를 이용하는 나는 차단 여부조차 알지 못했다. 경찰은 이런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왜 차단된 매체를 퍼 날랐는지를 캐물었다.

또 경찰은 리트윗으로 무차별적으로 이적물이 재반포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당시 내 팔로워가 600명 정도로 많지 않아 조사하려면 충분히 가능한데 그들이 재반포한 수사 자료가 있느냐고. 어떤 자료가 있는지 항상 궁금했던 70cm는 돼 보이는 엄청난 종이 뭉치에도 그런 자료는 없는지 수사관은 말을 돌렸다. 심지어 '범죄 일람표'에 내가 리트윗이라는 범행을 한 날짜와 건수가 정리돼 있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맞지 않았다. 리트윗하면 우리민족끼리 담당자가 글을 쓴 날짜가 뜨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수사 자료를 만든 까닭이었다. 결국 그 날은 취조를 일찍 끝낼 수밖에 없었고, 경찰은 내가 제출한 자료를 기반으로 범죄 일람표를 다시 작성해 연락을 준다고 했다. 보안수사대 출두 자체가 이미 징벌인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하루를 허비했다.

공안 경찰의 극우적 발언 역시 놀라웠다. 보안과 팀장은 나에게 "전교조는 빨치산, 광우병 대책위는 체제 전복 단체"라고 발언했고, 서른 살 남짓으로 보이는 수사관은 "아까 말씀하신 냉전 시대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다. 간첩들이 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렇게 피의자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으니 명백한 증거가 있다는 뜻일 텐데, 왜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않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피의자의 리트윗이 대한민국 존립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 것을 인정하는가'란 질문에 66번 답하면서 콜롬비아의 대문호 마르케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믿기지 않는 황당한 정치적 상황을 나열한 뒤 이렇게 말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현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나은 작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운명, 혹은 영광은 겸허하게 현실을 인정하면서 온 힘을 다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스트로와 마르케스>, 앙헬 에스테반 & 스테파니 파니첼리 지음, 도서출판 예문 펴냄)

나는 여행 전 음악을 했었다. 마르케스가 말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는 예술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어떠한 허구를 만들어내더라도,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이 예술과 같은 현실을 능가할 이야기를 만들 자신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리트윗 국보법 피해자 기자 회견 때 박정근은 이런 발언을 했다. 마지막 경찰 조사에서 수사관에게 "이런 선례를 만든 덕분에 온갖 사람이 이렇게 조사당하게 될 텐데 어쩌려고 그러냐"라고 말하자 그 수사관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럼(일이 생기면) 우리에게 좋은 거다. 우리가 일이 없다."

나의 담당 주 수사관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대한민국 국가대표'일 정도로 자기 일에 사명감이 있고, 만나 본 수사관 중 가장 유연한 종북관을 가지고 있어 개중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항상 '이 일' 끝나면 술 한잔 하자던 보조 수사관은 평범한 생활인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취조 마지막 날, 지루한 질문이 반복되자 보조 수사관은 연신 하품을 해댔다. 나는 휴일에도 출근해 여기에 앉아있는 그가 안타까워 휴일 근무 많이 하시느냐고 물었고, 주 수사관은 그에게 "가서 세수 좀 하고 와. 이 중대한 순간에!"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주 수사관의 노련한 얼굴에 스쳐 가는 겸연쩍음을 봤다. 어쩌면 이 사건의 본질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 신종협 씨. ⓒ박정근후원회

* 필자 신종협 씨는 박정근 구속에 대한 항의 퍼포먼스로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리트윗했고, 2013년 5월 압수수색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