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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5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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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5ㆍ끝>

"낮은 곳에 머물러 이룬 성공"

이처럼 옥천신문이 좌충우돌하면서 지역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깨는 데 앞장 설 수 있는 것은 옥천신문 기자들의 출신성분이 다른 지역신문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도권 지역 외 지방 소재 지역신문은 그 지역 출신이 아니면 기자로 채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역 연고가 없으면 지역 실정에 어둡고 지역 내 다양한 정보망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옥천신문의 오한흥 발행인은 뒤집어 생각했다. 타지역 출신이라면 학연ㆍ혈연ㆍ지연 등으로부터 해방되어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 결과 현재 3명의 옥천신문 취재기자들은 모두 옥천이 아닌 타지역 출신이다. 물론 옥천 출신 사람을 일부러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한편 지역 출신인 오한흥 발행인은 외롭게 살기를 각오했다. 선후배는 물론 친인척으로부터 욕먹을 각오를 했다고 한다. 대신 “이 땅에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취재보도에 있어 철저히 언론의 정도를 고집해온 옥천신문은 경영에 있어서도 정도를 고집했다. 그것은 신문 외에 다른 일에 한눈 팔지 않고, 편법을 쓰지 않고 자립경영을 하겠다는 집념이었다. 우선 신문사 직원들에게는 철저히 신문 만드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했다.

취재기자에게는 광고 수주나 부수 확장의 부담을 주지 않고 기사만 쓰도록 했다. 광고담당 직원들에게도 커미션이나 리베이트 없이 고정월급제를 실시해 무리한 광고 수주를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한흥 발행인은 옥천신문의 경영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문사의 경영은 단순하다. 수입으론 구독료+광고료, 지출에는 인건비+제작비. 뭐 이 정도인데 신문사 경영에는 왕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독료는 ‘퇴비’라 하고 광고료는 ‘화학비료’라 치자. 1년 2년 단기간 농사를 지으려면 화학비료를 쓰는 것이 수확량도 많고 힘도 덜 든다. 하지만 이건 1년 2년 할 작업이 아니다. 10년 100년 갈 장기농법이 필요한 것이다. ‘퇴비'를 쓰면 상당히 힘들다. 땀도 나고 냄새도 나고……. 답은 나왔다. 구독자는 일시에 늘지 않는다.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사진 옥천신문 7> 옥천신문을 읽고 있는 택시 기사. 옥천신문은 매주 토요일 발행된다.

***성공비결 1-연고를 극복하라**

이러한 경영철학은 영세한 지역광고시장이지만, 바로 거기에 지역신문의 생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옥천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신문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것은 지역의 광고시장을 생활정보지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원래 신문의 광고는 상품이나 브랜드 광고보다는 유통 광고, 즉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의 광고가 더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중앙일간지는 이를 외면한 채 재벌이나 대기업의 굵직한 광고에만 몰두했다. 지역신문도 그것을 답습했다. 지역 내 대형업체 광고에만 신경을 썼지, 생활광고나 영세업자들의 광고를 간과했다.

그 결과 많게는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지역사회의 광고시장을 후발 주자인 무료 생활정보지에 고스란히 빼앗겼다. 그러나 옥천에는 생활정보지가 힘을 못쓴다. 1991년 2월부터 생활광고면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광고정보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옥천신문의 하단부는 지역 내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는 진짜 광고로 채워진다. 다른 지역신문처럼 행정기관의 홍보성 광고나 지역사회단체의 과시형 광고는 드물다. 제1면 하단광고는 55만 원, 제12면은 44만 원, 그 안쪽 지면은 27만5천 원이다. 6개월 동안 하면 50% 할인을 받는다. 작은 광고는 5개로 쪼개서 판매한다. 지역주민들은 5만원 내외로 손바닥만한 크기의 신문광고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옥천신문의 광고는 일간신문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신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영세상점들의 광고로 가득 차 있다. 보신탕집, 갈비집, 도시락 배달집, 피자집 등 먹는 장사를 비롯해서, 카센터, 만화방, 노래방, 보일러 설치, 전기공사, 주택건설, 중고알뜰매장, 보험대리점, 화장품할인점, 예식장 등 옥천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풀뿌리 광고주들이 옥천신문의 하단부를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옥천신문엔 광고직원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취재기자들이 광고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광고주들이 요청을 하면 광고 주문을 받아오긴 하지만, 기자들이 광고를 권유하거나 강요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오한흥 발행인은 단언한다.

<사진 옥천신문8>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신문 접지를 도와주는 아르바이트 아줌마들. 이중에는 10년 넘게 일해온 아줌마도 많다.

***성공비결 2-독자와 광고주의 신뢰를 확보하라**

그것은 광고영업을 하지 않아도 광고주들이 알아서 광고를 하겠다고 연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옥천신문의 사업자 광고주들 중 절반은 계속해서 광고를 한다. 구인구직이나 부동산 매매와 같은 생활광고는 일주일에 70~80건이 들어온다. 독자의 신뢰뿐만 아니라 광고주의 신뢰도 확보했기 때문에 광고비를 떼이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렇듯 언론의 정도에 따라 신문을 만들자, 처음에는 지역신문도 신문이냐던 주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구독자 수도 차츰 증가했다. 광고를 망설이던 지역의 자영업자들도 눈치를 보지 않고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역경제가 열악해 광고 수입이 크게 늘어날 수는 없었다. 지역주민과 영세상인들로부터 지난해 옥천신문이 수주한 광고매출액은 1억4천2백만 원이었다. 중앙일간지 전면광고 두 번 하면 끝나는 액수이다.

따라서 철저한 감량 경영을 했다. 옥천과 같은 작은 지역에서 지역신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군살이 없어야 했다. 옥천신문은 우선 최소한의 인원을 고용하는 대신 그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지역신문으로서는 드물게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했다. 토요일에는 순번을 정해 1명의 당직자들만이 출근한다. 평일에도 출퇴근시간의 제한이 없는 자율근무제를 택하고 있다. 이는 직원들이 매주 반복되는 신문 제작작업에 지쳐 창의력과 의욕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효율성은 오히려 늘어났다.

불필요한 투자도 가급적 줄였다. 옥천신문이 컴퓨터 화상편집을 한 것은 99년 1월부터였다. 그전까지는 3명의 편집부 직원들이 레이저프린터로 인쇄한 기사와 광고카피를 풀로 조각조각 붙여서 지면을 짰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신문을 제작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홈페이지는 매우 빨리 시작해, 1999년 6월 개통했다. 지역신문으로서는 거의 최초나 다름없었다.

<사진 옥천신문9> 충북과학대 학생들의 영생원 봉사활동을 취재하고 있는 옥천신문 류영우 기자

***성공비결 3-불필요한 투자를 줄여라**

그렇지만 다른 지역신문사처럼 고가의 전산통신 장비를 구입하거나 전담직원을 배치하지 않았다. 기존의 486컴퓨터에 메모리와 저장용량을 늘려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모자라는 컴퓨터는 중고부품을 사서 조립했다. 서버 관리는 지역의 웹호스팅 회사에게 맡겼다. 덕분에 투자 비용과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옥천신문 홈페이지는 1년 사이 1천2백만 원의 수익을 올렸고, 매월 1만 회 이상 조회 수를 올리는, 성공적인 지역신문 홈페이지가 되었다.

옥천신문의 홈페이지를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이트로 만든 것은 조주현 편집기자이다. 그는 목발에 의존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전국지나 지역지나 할 것 없이 장애인을 고용한 언론사는 드물다. 1년에 한 차례 장애인의 날이 되면 장애인 복지를 외면하는 한국 사회에 비난을 퍼부어대는 한국 언론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장애인을 거의 고용하지 않고 있다.

사실 언론사에서 기동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고용하기란 쉽지 않다. 직원들이 팀워크를 맞추어야 하고, 때로는 모두 발로 뛰어야 하고,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해야 하는 지역신문에서 장애인을 고용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옥천신문 이사회에서도 처음에는 그의 채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조주현 기자의 채용을 고집했다.

***옥천신문의 보물-장애인 조주현 기자**

미대 출신인 그의 능력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장애인 복지에 있어서도 언론으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조주현 기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옥천신문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가 없는 옥천신문이란 상상할 수 없다고 옥천신문 사람들은 말한다.

오늘날의 옥천신문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필요로 했다. 불교 신도라는 오한흥 발행인은 옥천신문을 “속가 속의 수행처”라는 종교적 신념으로 만들어왔다고 한다 (물론 옥천신문에 그의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배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직원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다).

그는 신문을 만들다보니 가족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토로한다. 그가 옥천신문에서 월급을 받기 시작한 것은 신문사의 재정적 기반이 잡히기 시작한 1998년부터였다. 그때까지는 철물점을 경영하던 부친으로부터 생활비를 타서 써야 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오한흥 국장이 가장 미안해하는 사람들은 옥천신문의 기사를 통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물론 기자는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는 안 되고, 외롭고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오한흥 국장은 단언한다. 그렇지만 옥천신문의 고발기사로 인해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나 지역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 동안 옥천신문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게 여겨왔던 것은 지역주민들의 낮은 참여의식, 주인의식이었다. 2년 전 필자가 옥천신문을 방문했을 때 오한흥 국장은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10여 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다수 옥천주민들은 과거의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우민화정책의 폐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최근엔 주민들 사이에서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조선일보구독거부운동이다. 옥천농민회, 전교조 옥천지회뿐만 아니라 옥천군의회, 옥천재향군인회, 옥천상이군경회, 옥천체육회에 이르기까지 진보와 보수가 거의 모두 망라돼 있다. 언론개혁의 반대주자로 비춰졌던 이 지역 출신 심규철 한나라당 의원까지 조선일보바로보기옥천시민모임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옥천에서 이 같은 조선일보바로보기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옥천신문이 지역주민들에게 조선일보의 친일 행적을 소상히 알렸기 때문이었다. 옥천신문은 최장집 교수 사건 이후 99년 초부터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시리즈를 11주에 걸쳐 연재했다. 2000년 8월 15일 이후에도 20주에 걸쳐 과거 조선일보의 반민족적 행각을 낱낱이 소개했다. 작은 지역언론의 힘이 지역사회운동으로, 그것이 언론개혁이라는 역사적 원동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옥천신문이 완벽한 신문은 아니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도 아직 많다. 무엇보다도 기사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자의 수를 늘려야 한다. 지금은 모두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오한흥 씨는 발행인이자 광고국장이다. 조주현 기자는 지면편집과 아울러 인터넷신문 관리도 맡아한다. 이안채, 이용원, 류영우 3명의 취재기자들은 많을 때는 하루에도 대여섯 곳의 현장을 다녀와야 한다.

<사진 옥천신문 10> 옥천신문 현판 앞의 오한흥 편집국장

***전문성ㆍ다양성 등 질 제고가 과제**

자연히 지면의 전문성이나 기사의 다양성, 심층성이 떨어지고 다양한 관점의 기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직원을 늘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지금 있는 기자들에게 지불하는 급료조차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이제 더 이상 희생을 요구하는 신문이 아니라, 헌신과 능력을 보상해주는 신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산적한 과제를 가졌지만 옥천신문은 이 땅에도 지역신문이 가능하다는 산 증거가 되었다. 그것은 비록 규모는 작아도 언론으로서의 정도를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앙지나 지방지를 답습하거나, 현실과 타협하거나, 편법을 쓰는 지역신문들은 대부분 고사 직전에 있다.

그러나 옥천신문은 연고주의를 배격하고 촌지와 계도지를 거부하며 편집권을 지켰다. 성역 없는 과감한 보도를 통해 지역사회의 신뢰를 쌓았다. 필자가 직접 만난 옥천신문 독자들의 반응은 거의 같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우리 지역의 얘기를 상세히 해주어서 좋다” “주변사람들도 많이 본다” “지역신문사로서 정도를 걷고 있다” “토요일 날 신문 오기를 기다린다”. 옥천신문의 비판과 감시의 표적인 공무원들과 군의원들조차도 지역사회의 자랑스러운 언론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제 옥천신문이 당면한 과제는 지역 문제를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들 곁에 있는 신문으로 계속 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안재 취재부장은 매주 주민들에게 안부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신문을 만든다고 말한다. 지역주민들에게 늘 귀를 열어놓고 그들을 위한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옥천신문이 언론권력이 아닌 지역주민의 대변자로 영원히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옥천신문사를 나오면서 편집실 벽에 걸린 “낮은 곳”이라는 휘호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언론이 가야할 곳, 머물러야 할 곳을 옥천신문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동행한 제자의 취재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작은 곳이었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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