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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부시가 박스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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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부시가 박스에 갇혔다?

김희원의 '워싱턴통신' <2>

노무현 후보의 당선 확정 소식이 전해진 지난 19일 낮(워싱턴 시각)에 마침 북한 핵 문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연사는 소문난 극우 논객이어서 세미나 내용자체가 새로울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선거결과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찾아가 보았다.

아쉽게도 그동안 자주 보던 보수적 논객들이 웬일인지 거의 보이질 않았다. 한 두 명 나타난 이들도 어딘지 얼이 빠진 듯한 모습이어서 선뜻 다가가 수다를 떨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연사의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예상대로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한 질문들이 나왔다. 최근 심각하게 손상된 한미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자신이 한국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답을 회피했다. 다만 한국의 젊은 세대가 한국전쟁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면서 한국인들이 원치 않는다면 결국 주한미군은 한국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핵포기를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개발을 빌미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식량확보나 정권 안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소멸시키자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주한미군 철수 뒤에 따르는 안보공백은 북한의 의도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결론이 가능할 것이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워싱턴의 보수진영이 내리는 평가는 대체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의 반미감정을 이용해 노무현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겨우 승리했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핵개발 시인이후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핵위협이 한ㆍ중ㆍ일ㆍ러 등 주변국과의 공조를 통해 제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들어 사태의 신속한 해결을 미루면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된 이후 대북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미국의 대북전략에 큰 차질을 가져온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반미감정이 ‘위험수위’까지 고조되자 미 행정부 안에서는 이미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미국의 대북정책에 있어 한국과의 공조는 기대할 바가 못 될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이라는 변수는 미국의 대북정책 수립과정에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한국정부의 입장이 관철되기에 매우 ‘부적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핵개발 의도에 대한 워싱턴의 평가 역시 상황이 북미간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선이 있기 얼마전 한 세미나에서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행정부 관리가 연사로 나와 북한의 실태파악을 게을리해 온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의 지적인 태만을 질책하면서, 북한의 핵개발 시인을 핵무기개발의 공개적 선언으로 평가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봉인을 제거한 것은 이러한 평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이 뒤로 빠지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해 북한의 핵을 억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가 그 대표적인 곳인데, 군사적 대응은 그 위험이 너무 크고 경제적 제재 역시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북한에 핵포기를 대가로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것도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선택지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자는 이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고는 있으나, 부시 행정부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북한의‘위협’을 부각시키면서도 실제 정책수행에 있어서는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 모순을 보여왔다. 행정부 관리의 표현을 빌면 ‘북한이 박스 안에 갇혀 있는데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구조가 대외의존형으로 변모한 상황에서 북한이 무모한 도발행위를 감행해 스스로 생명줄을 끊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시인 이후 이제는 오히려 ‘부시가 박스에 갇혔다’는 우스개소리가 자주 들리곤 한다. 상황의 진행 속도를 북한이 조절하면서 부시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원하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무기사찰에 협력하고 있는 이라크에는 강공을, 핵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무기 개발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북한에는 ‘평화적’ 해결을 모색한다는 정책이 국민에게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라크 문제에 매달려 이보다 더 중대한 북한의 위협을 뒷전으로 팽개치고 있다는 보수진영의 비판도 소화해야 한다.

부시가 어떤 식으로 ‘박스’에서 헤어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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