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년, 부시의 재집권은 유럽에겐 엄청난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의 브뤼셀 정상회담은 아프리카 추장회의를 연상시킬 만큼 무기력했다**
결과는 수정같이 투명했다. 부시의 재선은 유럽을 아연 질색하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꿈을 깨우는 자명종임에 틀림이 없다. 세계의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럽과 미국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은 결코 화해할 수 없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럽은 협상을 통한 세계 평화 실현,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는 정교분리를 바탕으로 대화를 통해 공동의 지향점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미국은 무력과 신앙, 그리고 윤리도덕적 기준을 앞세우며 독불장군식의 일방적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점점 좁힐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은 유럽인들만의 안일한 환상과 망상이였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부시의 재선이었다.
답은 명확하다. 지난 2일 미국인들의 선택은 유럽의 정치적 이상과 인본주의는 존 케리의 당선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이상과 모델을 자신이 직접 증명하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일깨워 주었다.
프랑스의 신문들은 세계에서 러시아, 이스라엘, 중국만이 부시의 재선을 희망한다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대서특필하면서 프랑스가 세계 정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경제ㆍ정치적 협조 체제를 통한 지역 기득권 획득,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자신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지지해주는 유일한 세계지도자 부시의 당선을, 중국은 부시나 케리 모두 껄끄러운 인물이지만 그래도 아는 이가 낫다는 입장에서 부시의 재선을 각각 희망했다.
유럽 국가 중에 케리의 당선을 희망하는 국민의 수로 따지자면 프랑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케리의 외가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이기에 유년 시절 프랑스에서 여름방학을 보내 불어가 능통할 뿐 아니라 친불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 이외에도, 케리의 당선은 프랑스와 미국의 현재 불편한 관계를 단숨에 말끔히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또 유럽이 채택한 외교 방식, 물론 프랑스와 독일이 주축된 이 방식을 미국이 받아들임으로써, 클린턴 행정부 때와 같이 유럽이 세계 분쟁의 해소 및 지역 문제를 해결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이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일 미국 국민은 신념에 찬 독자적 결정, 신앙의 기초 위에 세워진 논리와 행동을 하는 부시에게서 '선지자'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21세기의 지도자로 부시를 다시 추대하였다. 이는 유럽의 사고 방식과 미국의 그것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화성에서 온 미국인과 금성에서 온 유럽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최근 세계 질서에 가장 큰 변화를 초래한 사건을 묻는 질문에 미국인들은 2001년 9.11 테러사건을, 유럽인들은 1989년 11월 9일의 베를린장벽의 붕괴라고 각각 대답하였다.
사실 유럽인들은 미국 사회내에서 정치인의 신앙과 도덕적 신념이 선거에 그토록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종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중세적인 것으로,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행태라고 생각하며 미국을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미국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유럽인들의 문화적ㆍ정치적 우월감이 진정한 미국의 모습을 그려내고 흐름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객관적 시각과 냉철한 논리를 마비시켰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겠다.
이제 유럽인에게 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강한 유럽. 국제 사회에서 나약하고 분열된 유럽연합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ㆍ정치 모델을 스스로 전파하고 적극적으로 증명해 나가는 길만이 유럽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유럽의 정황에서 지난 4,5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정상들의 만남은 둘도 없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이 만남에서 유럽 나름의 구체적 대응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어떤 구체적인 대답? 어떻게 분발하고 도약할 것인가?**
4년전부터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정확히 제시되었다.
첫째, 미국의 신보수주의자(Neocon)들로부터 난쟁이 대접을 받지 않기 위해서 유럽은 힘을 갖추어야 한다. 다시 말해 유럽의 방위 체계와 방위산업은 아주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둘째, 경제 침체로부터 빨리 탈출하여야 한다. 강한 유럽이 되기 위해 유럽은 현재의 1.5%의 성장률을 미국의 성장률을 넘어서는 3% 이상으로 높여야만 한다.
이러한 해답을 결의한 4년 전의 '리스본 전략'에 대한 윔 코크(전 네델란드 총리)의 평가서가 보고되고, 대책을 논의하는 기회로서 이번 브뤼셀 정상회담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열렸다고 할 수 있다.
리스본 전략이란 무엇인가? 2000년 3월 포루투갈의 수도에서 유럽연합 15개국 정상들이 합의 서약한 내용으로 2010년까지 미국과의 경제적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방법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세계 환경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 가장 높은 경쟁력, 사회 화합을 높이는 요인으로 질적 양적인 노동력 창출,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유럽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이라는 말은 웃음을 나오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유럽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지난 2000년 유럽은 60년동안 추진해오던 단일통화 사용의 숙원을 성취했다. 또 당시 미국은 '거품경제'의 붕괴로 주춤하고 있었기에 유럽인들은 앞으로 유럽경제가 세계경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현실과 거리가 먼 자기도취**
윔 코크의 보고서는 '지금의 유럽연합의 모습으로 2010년까지 리스본전략의 목표 달성은 어림도 없다'라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현재 유럽의 상태에 대해 '빈약한 노력', '절망적인 성과', '가속이 붙기는커녕 둔화되는 경제성장', '국가 재정적자의 폭 2003년 GDP 1.5%에서 2004년 2.5%'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편 '유럽경제개혁연구소(CER)는 '미국을 따라잡기는커녕, 유럽 고유의 영역마저 빼앗기고 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유는? "각 정부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의 부재가 주된 요인이다"라고 윔 코크 보고서는 잠젆게 지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핀랜드의 경제는 개발과 일자리 창출 분야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슿랜드는 생산력 증가의 좋은 모델을 지목되고 있다. 반대로 실비오 베르루스코니의 이탈리아는 여러 분야(성장, 개발..)에서 낙제생으로 선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유럽의 일자리 창출은 호조이지만, 현재의 무거운 경제적 침체 현상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만 리스본 협정에 따라 국가 총생산의 3%을 연구개발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이 나라들 기업들은 매출의 2%를 재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그밖의 나라들의 투자액은 1999년보다 오히려 감소했으며 첨단 기술 분야의 인력 양성도 아주 저조한 상태이다. 유럽 단일시장 형성 위한 브뤼셀의 방향제시 및 제재조치는 거의가 뒷북을 치고 있다. 유럽 의회의 다수당인 유럽 민중당은 현재 유럽연합의 모습에 대해 아주 직설적으로 "코크 보고서는 유럽이 파산했다는 증거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것도 너무 심하고, 저것도 너무 심하고...**
유럽의 파산과 부시의 승리. 이번 미국 대선을 계기로 유럽의 지도자들이 각성을 하고 힘을 모으기 위한 구체적 결단을 위해 브뤼셀에 모였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회의 결과는 너무나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특히 리스본 전략의 목표 달성을 몸부림치는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리스본 협정의 목표와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은 너무 심하고 저것도 너무 심하고, 규제가 너무 많다며 모두가 투덜대는 모습뿐이었다.
유럽연합의 지금 모습에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언론은 각 정부들의 안일한 자세를 신랄하게 질책하고 있다. 항상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유보하고, 사회복지를 우선하는 분위기의 국가들(프랑스, 독일, 스페인)과 자유경제체제를 선호하는 영국 사이의 비생산적 힘 겨루기, 유럽연합을 운영하는 브뤼셀위원회와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각국 정부 사이의 관점 차이, 이러한 갈등과 대립은 이미 뇌사 상태에 빠져든 유럽을 놓고 사망 진단서에 어떤 내용을 기재할 것인가에 대해 언성을 높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유럽은 연구ㆍ개발의 수준을 향상하는 것, 미국으로 떠나는 과학자들을 붙잡아 놓는 일, 정보통신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만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저임금을 덕택으로 대량생산을 주무기로 생산하는 아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폴란드 노무자에서부터 포루투갈의 그룹 총수까지, 모든 유럽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유럽 정치인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필자 소개**
1965년 경기도 출생
1988년 감리교 신학대학 졸업
1992-1994 : 브르고뉴 대학 (Universite de Bourgogne)
(DELF DALF : 불어 자격증. 외국인을 위한 불어교사 자격증 획득)
1994-1995 : 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 로마사 바벨론문명 및 종교사 전공
1995-1996 : Universite de Paris 4 - Sorbonne : 종교사 종교인류학 전공(DEA : 박사논문제출자격획득)
1996- 2004 : Institut National des Civilisations et Langues Orientales : (Doctorat)
1996-1998 : 소르본느 종교사 및 종교 인류학 연구소 연구원
1996-2000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소 연구원(종교사 및 종교비교)
현재 국립 동양언어문화연구소 연구원
이메일: secaux@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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