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는 31일 웹 사이트를 통해 "10월 31일 중국정부의 제안에 따라 중국 북조선 미국의 6자회담 대표가 참석한 비공식 협의가 베이징에서 개최됐으며, 3개국은 6자회담을 다시 추진하는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도 깊숙한 의견 교환을 했고, 3개국은 6개국이 형편이 좋은 가까운 시기에 6자회담을 개최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중국 외교부의 발표 후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자회담 참여국들이 모두 동의할 경우 11월 초나 12월에 회담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은 회담 재개에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으며 회담이 재개되면 '실질적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6자회담 재개 합의는 '대화와 협상노선'의 승리
베이징 북중미 합의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아니라, '6자회담 재개 합의'이다. 서방언론에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라고 말함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서 6자회담에 무조건 참가하기로 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실의 왜곡이다.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 발언에 따르면 "10월 31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조ㆍ미 접촉을 기본으로 한 쌍무 및 다무적 접촉들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7시간에 걸친 3자 회동 중 상당시간 북미간 솔직하고 깊숙한 의견교환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요구사항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함으로써 성사됐다는 것이다.
또한 힐 차관보는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아무런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고 말한 반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6자회담 틀 안에서 조ㆍ미 사이에 금융제제 해제문제를 논의, 해결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북미 양측이 상반되기는 하지만 금융제제 문제가 논의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당국자는 31일 "대북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돌파구(breakthrough)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북미간 논의가 있었으며, 이것이 6자회담 재개합의를 이끌어 낸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동안 북미 직접대화를 한사코 기피해 왔던 미국이 어떤 이유로, 비록 중국의 중재에 의한 비공식회담이기는 하지만,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나섰는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의 기본입장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면서 북한의 일방적 굴복, 즉 6자회담에의 무조건 복귀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한 태도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미국으로서도 대북제재만을 통해 북한의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힐 차관보가 10월 21일 예정에 없었던 홍콩을 방문해 마카오의 북한자금 동결문제를 협의했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그의 홍콩방문은 중국의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뒤 그 내용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전해준 직후에 이뤄졌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 다행히도 나의 평양방문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평양보따리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는데, 그것은 "미국이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면 추가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미국이 금융제재 해제 약속을 하면 6자회담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완강했던 선 금융제재 해제 입장을 완화함으로써 중국의 중재역할에 숨통을 열어준 것이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중국방문을 마치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가핵실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런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부인하고, 또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구체적 언급도 듣지 못했다고 말해 북한의 새로운 제안을 못들은 척 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힐 동아태 차관보를 홍콩으로 파견해 북한의 제안에 대한 구체적 검토 작업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새로운 제안에 대한 내부적 검토 작업을 거쳐 중국의 중재로 열린 북중미 삼자 회담에 참가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6자회담 재개 합의로 북한은 핵실험으로 빚어진 국제적 비난과 고립, 외교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으며,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사실상 유명무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더 나아가 금융제재 문제를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별도로 논의키로 합의함으로써 금융제재 해제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반면에 미국은 가까스로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을 통과시켜 놓고, 구체적인 제재를 본격적으로 집행하기도 전에 6자회담이 재개됨으로써 대북 제재의 추진력을 잃게 됐다. 말로는 6자회담 재개와 안보리결의안에 따른 대북제재는 별개라지만, 6자회담이 재개되면 자연히 대화와 협상 분위기가 지배할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대북제재를 엄격하게 추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은 우선 대북제재의 한계를 절감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한 직후 라이스 국무장관을 동아시아에 파견해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했지만 결과는 사실상 실패였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중국이 미국의 대북제재 요구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는 7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시행정부의 강경일변도의 대외정책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조건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미국은 제재일변도의 대북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탕자쉬안 대북특사의 중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6자회담 재개합의의 최대 승리자는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고집하는 미국과 선 금융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북한이 각각 반 발자국씩 물러나게 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도록 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다시 한번 과시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9월 한달동안 북한에 대한 석유수출을 전면 중단하면서 북한에 회담 복귀를 압박했고, 미국에 대해서도 북미대화 재개를 강력하게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넓은 틀에서 보자면 미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제재와 대결론'과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이 선호하는 '대화와 협상론'의 대결에서 '대화와 협상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제재와 대화 병행론'과 '대화와 협상론'의 정면대결 예상
그러나 북미 양자가 6자회담 재개에는 합의했지만, 양자 모두 기존정책을 바꾸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6자회담 재개는 문제해결의 단초라기보다 치열한 외교적 대결전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미국은 '제재와 대화 병행론'을 견지하면서, 대북경제제재를 지렛대로 북한의 양보를 강제하려 할 것이며, 그에 대항해서 북한은 추가핵실험 등 추가적 행동조치를 무기로 해서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고 미국의 정책변화를 유도해 내려 할 것이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내세우면서 북한의 실질적 행동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핵 포기의 전향적 조처로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선언, 영변원자로의 가동중단 등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며, 이에 맞서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요구를 강력하게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는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다는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금융제재문제는 법집행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금융제재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쉽사리 결론날 것 같지 않으며, 6자회담의 전도도 그리 밝지 못하다.
하지만 6자회담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일단 6자회담이 재개되게 되면 북미 양자는 모두 6자회담을 박차고 뛰쳐나가기 어렵다. 미국이 6자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게 되면 북한의 추가적 행동의 빌미를 주고 국제적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북한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면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고 미국의 대북제재에 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감내하기 어려운 제재와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한-미국의 치열한 외교전 될 것
앞으로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 틀 내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자간 외교전의 승패는 미리 점치기 어렵다. 다만 회담 초기 양측은 금융제재 해제 문제, 북한의 핵보유 인정 문제 등을 놓고 지리한 공방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과 미국의 6자회담 복귀는 적극적 협상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적극적 중재노력에 의해 마지못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회담 복귀에는 석유수출 중단 등 중국의 지원 중단 압력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미국으로서도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 더 이상의 위기고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는 7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게 된다면 6자회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부시 대통령이 12월 중순 안으로 임명하게 될 대북정책 담당관에 북미협상을 중시하는 인사가 기용될 경우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6자회담 당사국들이 지난해 9.19 공동성명의 정신에 의거해 협상을 진행할 경우 대결과 제재보다는 대화와 협상에 의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실 9.19성명 이후 1년 이상 6자회담을 공전시킨 책임은 6자회담의 주의제인 북핵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인 북한의 위폐제조, 마약거래 등을 이유로 북한제재에 나선 미국측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상 미국으로서는 과거처럼 마냥 악의적 무시정책으로 시간을 질질 끌 수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 억지력만 증대될 뿐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라 북한편인 셈이다. 그렇다고 5:1의 구도로 북한에 대해 핵 포기를 일방적으로 압박하기도 쉽지 않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일본을 제외한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은 북한의 일방적 굴복보다는 북미 양자의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6자회담은 치열한 외교적 대결전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북미협상국면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관계 복원이 절박하게 요구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번 6자회담 재개에 한국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분석이다. 이번 6자회담 재개과정에는 한국정부의 보이지 않은 역할이 지대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한 것은 대북제재에 대한 무력감이 크게 작용했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한ㆍ중ㆍ일ㆍ러 순방을 통해 강력한 대북제재망을 구축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사업, 한국의 PSI참여라는 미국의 세 가지 요구사항 중 그 어느 것도 확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의도를 좌절시켰다.
이로써 대북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에게 실질적 타격을 주려는 미국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북 핵실험에 대한 뚜렷한 응징수단이 없게 됐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은 제재일변도 정책에서 '제재와 대화 병행' 정책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유연한 제안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만약에 한국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여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참했다면 미국은 북한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대북제재 일변도 정책을 고수했을 것이 명백하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한국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현재 북미 대타협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장애물은 미국의 대화불용정책이며,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일방적 항복만을 요구하는 대북강경정책이다. 이것을 누그러뜨리고 북미대타협을 유도해 내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지렛대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국정부가 미국의 일방적 정책에 추종하지 않고 중립적 입장에 서서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문제해결의 핵심 고리이다.
한국정부가 중립적 입장에 서서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남북간 정치적 신뢰와 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남북관계 복원이 절박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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