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에서 논제(論題)란, ① 의론·토론·논설 등의 제목(예; 세미나의 논제), ② 논하는 주제(예; 논제에서 벗어난 말), ③ 지난날, 과거 시험에서 논(論)하라고 요구하는 글제 등으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②번의 정의가 논술문 작성과 직접 관련된다. 논술고사에서는 문제를 통하여 논해야 할 논제를 제시한다.
논술문 작성의 가장 첫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논제 파악'은 논술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아래 서울대학교에서 밝힌 논술고사의 출제의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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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1)논제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부분이 논제 파악에 해당한다. 논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경우 논술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틀린 답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잘 쓴 논술이라도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2. 논제의 유형
사실 논제
사실 논제는 어떠한 명제의 진위를 사실에 의해서 판별할 수 있는 논제이다. 자신이 논제에 대하여 찬성하든 이의를 제기하든지 간에 사실에 근거하여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이때 논거의 타당성은 사실에 바탕을 둔 객관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이다.
(예) '발해는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구체적 근거를 토대로 논술하시오.
논리 논제
논리란, 말이나 글에서의 짜임새나 갈피(예: 논리가 정연한 글. 논리가 닿지 않는 말), 생각이 지녀야 하는 형식이나 법칙, 사물의 이치나 법칙성(예: 역사 발전의 논리) 등을 의미한다. 흔히들 사용하는 흑백논리에서는 어떤 주장에 대해 선택 가능성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가정함으로써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이다. 즉, 두 가지 측면 이외에 다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한국을 적대시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국과 영원히 우호관계를 유지할 것이다??와 같은 경우이다. 이러한 논제가 주어지고 논리적으로 비판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게 될 경우 논리 논제에 해당한다. 즉, 논리 논제는 논리적 가능성의 여부를 두고 논술하는 것이다.
(예) '한국사회의 높은 교육열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논하시오.
가치 논제
"좋으냐 나쁘냐,"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못하냐,"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등으로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논제가 가치 논제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경제 정책을 시행할 경우, 성장이 중요한가, 아니면 분배가 더 중요한가를 논하는 경우이다. 가치 논제는 자신이 주장해야할 가치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정당화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예) 종교적 이유로 인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하여 신앙이 중요한가, 국방의 의무가 중요한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문제해결 논제
문제 해결 논제는 먼저, 주어진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그 타당성에 관하여 논하라는 유형을 들 수 있다. 즉,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 문제 등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한 논제이다. "도시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로망의 확충이 필요하다"라든가, "한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면 첨단 군사력의 증강이 필연적이다"는 유형의 논제들이 이에 해당한다.
(예) '상대적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또 다른 논제 유형으로는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자신의 문제 해결 방안을 논하라는 형태이다. 이때 문제 상황을 논제에서 직접 구체화하여 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시문의 독해를 통하여 문제 상황을 파악하게 하고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예) 제시문 (가), (나)를 모두 활용하여 전자 정부를 실시하였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밝히고, 그 해결 방안에 대해 논하시오.
3. 논제 분석
논술 문제는 논제와 제시문 부분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국어 시험과 비교할 경우 논제는 문항이고 제시문은 지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입시 논술의 경향을 보면 90년대에 비해 최근의 출제에서는 논제부분의 요구사항이 복잡해졌다. 복잡한 논제를 통해 학생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 분석력과 구상 능력, 논제의 지시 이행 정도를 평가하려는 의도이다. 논술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논제와 요구 사항은 더욱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되고, 난이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의 논제를 분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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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논제 (1)에서 현대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합리성은 제시문 (다)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으면서, 제시문이 지향하는 공통적인 논점에 대한 힌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전형적인 합리성을 유의해야 한다. 합리성에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강조되는 효율성의 측면과 더불어 정신적인 만족도를 강조하는 심리적 측면도 존재한다. 이 중에서 현대 사회에서 강조되는 합리성은 효율성이라는 점을 유추해내야 한다.
(2)의 내용은 제시문 (가), (나)의 내용을 분석하고 요지를 파악한 후 자신의 논지 전개에 활용하라는 조건 부여에 해당한다. (3)은 (다)에 나타난 전형적인 합리성의 특성을 구체적으로(가급적 사례를 들어)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시문에 대한 이해력을 평가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4)의 요구 사항은 현대 사회의 합리성을 비판하라는 것이다. 즉, 전형적인 합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상황을 추적하고, 원인과 해결책까지 제시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결국 논술문의 전체적인 쟁점은 '전형적인 합리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논제 파악으로 논술문이 전개될 경우에는 감점될 가능성이 높다.
논제 중에는 앞의 경우처럼 논제 자체에서 논술문의 작성 방향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처럼 친절한(?) 논제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제시문을 바탕으로 논제 자체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제시문의 독해 능력이 중요하다.
다음의 논술 문제를 살펴보자.
Ⅰ. 다음 글 (가), (나), (다)를 읽고 아래의 질문에 따라 논술하시오. (가) 양반이란 족속들이 얼마나 추악한 인간들인지 내가 들은 이야기를 통해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선 군수(旌善郡守)는 양반이 지킬 도리를 다 읽고 난 후, 문서 끝에 최 부자의 이름을 쓰고, 증인으로 자리한 좌수와 별감의 이름도 써넣었다. 이에 통인(通引)이 탁탁 도장을 찍는데, 그 소리가 어찌 크고 엄하게 들리던지 엄한 영을 내리는 북소리와 같고, 도장을 찍은 모양이 밤하늘의 별자리와 같았다. 부자는 호장(戶長)이 증서를 읽는 것을 쭉 듣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양반이라는 게 이것뿐입니까? 나는 양반이 신선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 걸요. 원하옵건대 나에게 더 이롭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했다.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 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그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끄덩이를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가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는 증서 작성을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양반이란 게 맹랑하구먼. 나를 장차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고 가버렸다. 부자는 평생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다. (나) 아마도 세계의 명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장소는 일본의 백화점과 면세점 또는 일본의 지하철일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아가씨들은 한 달에 2만 엔씩 48개월 할부로 최고급 시계와 핸드백을 사는 것이었다. 물론 화장품도 백화점 카드를 이용해 할부로 산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면 월급이 모조리 할부금과 카드 대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치장 비용으로 나가 버린다. 멋 내는 돈을 버느라고 한 달 내내 일한 셈이다. 그런 일본 아가씨들의 차림새는 그들이 그토록 얽매여 있는 비싼 핸드백의 무늬처럼 모두가 같은 스타일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몸에 착 달라붙는 미니스커트, 그리고 하이힐…. 일본의 거리에서 하루 종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아가씨들이다. 개성 없는 브랜드화라고나 할까? 다만 비싸게 주고 샀다는 자기만족과 그 비싼 물건을 몸에 휘감음으로써 만족하고 멋쟁이 대열에 끼었다고 생각하는 일본 여성만의 독특한 멋내기이다. 사실 선진국이라고 하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거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다. 물론 파리 같은 멋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열 벌 정도의 옷으로 일 년 내내 멋쟁이 소리를 듣는 경지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꿀 줄 아는 것, 돈이 아니라 자신의 품위로 내는 멋을 일본의 여성들은 외면하고 있다. (다) 내가 한국으로 출장을 가거나 러시아로 온 한국 유학생을 만났을 때, 부단히 한국의 군대에 대한 상대방의 의식을 열심히 알아보려고 했다. 내가 들은 이야기의 대부분은 각종 피해담이었다. 고참에게 귀를 얻어맞아 거의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는 불평, 구타로 말미암아 신경 쇠약증에 걸려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는 불만, 비인간적인 대우로 인한 자살 미수 경험 등…. 나와 군대 이야기를 나눈 한 젊은이는 자신의 군 생활 경험을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상관에게 실컷 맞다가 그 화풀이로 나중에 부하를 속 시원히 실컷 때리고, 조직 사회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했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할 줄도, 시킬 줄도 안다." 매우 함축적인 이 말을 조금 바꿔서 표현한다면, 군대에서 폭력을 수반하는 권위주의를 잘 체득했다는 것이고, 심적인 폭력(맹종, 강요)과 물리적인 폭력에 완전히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형식적이나마 폭력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저항할만한 인간성마저 파괴된 셈이다. 이미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맹종 학습의 의무'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군대가 양심 따위의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완전 해방된 '조직 사회형 인간'을 양산함으로써 한국의 군대는 파시스트적인 국가의 최대 교육 기관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 위의 세 글은 주장을 제시하거나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공통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오류가 무엇이며, 각 글에서 그러한 오류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또 그러한 오류가 지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논술하시오. (중앙대학교 2003 수시 2학기) |
위의 논제에서는 세 가지 요구사항이 제시되어 있다. 즉, ① 공통적인 오류의 파악, ② 오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제시, ③ 오류가 지닌 문제점 등이다. 세 글에 나타난 공통적인 오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판단 근거나 오류가 지닌 문제점도 제대로 제시할 수 없게 된다.
전홍식/에플논구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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