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을 쓰려면 개요 작성 방법과 서론, 본론, 결론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논리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와 같이 주어진 논제를 어떻게 구성하여 짜임새있게 전개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구상'이다. 그리고 구상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서 제시하는 활동이 개요작성이다. 본 글에서는 개요작성 방법 중심으로 서론, 본론, 결론 작성할 때의 유의할 점을 중심으로 제시한다.
개요는 글의 설계도
글의 구상은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글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정리된 자료들을 논리적 사고 과정에 따라 배열하고 줄거리를 엮어 개요를 작성해야 한다. 집을 지을 때 집의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에도 글의 설계도, 즉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개요'는 간단히 말해서 글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즉, 글쓰기 전에 준비 과정으로서 미리 만들어 놓은 글의 윤곽을 '개요'라고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개요는 건축에 있어서 설계도, 회화에 있어서는 밑그림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긴 글을 쓰다보면 자칫 글의 흐름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이미 썼던 내용을 반복하거나 어떤 한 가지 내용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개요를 작성하면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개요를 작성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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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문의 구조 이해
개요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논술문이 어떠한 구조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서론(도입부)·본론(전개부)·결론(종결부) 작성법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룰 것이지만, 개략적인 특징을 이해해야 제대로 된 개요를 작성할 수 있다.
1,000자 이상의 긴 논술문은 전체적으로 5~7개의 문단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를 세 부분으로 구성하면 도입부(1개 단락), 전개부(3~5개 단락), 종결부(1개 단락)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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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작성 예시
<논제> 인간은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역경과 고통에 처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페스트로 인한 재난의 상황(제시문 A)에서 고통 받는 오랑 시(市) 주민들의 사고와 행동이 나타난다. 제시문 (가), (나), (다)의 세 인물(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의사 리유)이 각각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정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논술하라. (서강대학교 2000 정시) (A) 며칠이 지나자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죽은 쥐들의 수는 날로 늘어만 갔다. 나흘째 되는 날부터 쥐들은 떼를 지어 거리에 나와 죽었다. 집안의 구석진 곳으로부터, 지하실로부터, 지하 창고로부터, 수챗구멍으로부터 쥐들은 떼를 지어 비틀거리면서 기어 나와서는 햇빛을 보면 어지러운지 휘청거리고, 제자리에서 맴을 돌다가 사람들 곁에 와서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밤이면 복도나 골목길에서 그놈들이 찍찍거리는 마지막 작은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중략)... 마치 건강한 사람의 짙은 피가 돌연 역류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여지껏 그렇게도 고요하기만 했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발칵 뒤집혀 버린 이 자그마한 도시의 아연실색함이 어느 정도일 것인가를 상상만이라도 해보라! ...(중략)... 갑자기 병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망자의 수가 다시 30명으로 늘어난 날, 리유는 전보 공문을 받았다. 전보에는 <페스트 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그 때부터 페스트는 우리들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로 인한 충격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오랑 시민들은 각자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리에서 그럭저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 상태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오랑 시의 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한 독 안에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도 처음 몇 주일부터 당장 모든 사람들 전체의 감정이 되었고, 공포심이 가세하면서 저 오랜 귀양살이 시절의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가) 랑베르는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파리에 아내를 두고 온 것이었다. 정식 아내는 아니었지만 아내나 마찬가지였다. 시가 폐쇄되자 그는 곧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 처음에는 그저 일시적인 것이려니 하고 편지 왕래나 할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랑의 동료 기자들은 자기들로서는 아무 방도가 없다고 말했고, 우체국에서는 상대도 하지 않았고, 도청의 한 여자 서기는 그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마침내 그는 두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만사 순조로움. 곧 다시 봅시다.>라고 쓴 전보를 한 장 접수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얼마 동안이나 이 사태가 계속될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소개장을 갖고 있었으므로 도청의 비서실장과 접촉할 수 있었다(직업이 기자이고 보니 여러가지 편의가 있었다). 자기는 오랑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여기에 머물러 있을 일도 없고, 우연히 자기는 여기에 있게 되었고, 일단 나가서 격리 수용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퇴거를 허가해 주는 일이 마땅하리라고 그에게 말했다.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서, 잘 알아듣겠으나 예외를 만들 수는 없다, 검토는 해 보겠지만 요는 사태가 중대한 만큼 선뜻 어떤 결정도 내릴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랑베르는 말했다. "나는 이 도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그러나 어쨌든 전염병이 오래 가지 않기를 피차에 바랄 뿐입니다" 결국 그는 랑베르를 위로하면서, 오랑에서 흥미있는 기사거리를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무슨 일이건 간에 잘 살펴보면 반드시 좋은 면이 있는 법이라고 말해 주었다. 랑베르는 어깨를 으쓱 치켜 올렸다. 그들은 시가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선생님. 저는 기사를 쓰려고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여자하고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 쪽이 더 어울리는 얘기가 아닙니까?" 어쨌든 그 쪽이 더 이치에 맞을 것 같아 보인다고 리유는 말했다. …(중략)… "이건 그야말로 인도적인 문제입니다.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이러한 이별이 어떤 건지를 아마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리유는 금방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도 그걸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랑베르가 아내와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시 결합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지만, 포고와 법률이 있고 페스트가 있으니, 자기의 역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지요." 입맛이 쓰다는 듯이 랑베르는 말했다. "선생은 이해하지 못해요. 선생님 말씀은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추상적이십니다." …(중략)… "아! 알겠어요." 랑베르가 말했다. "공적인 일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러나 공공 복지도 개개인의 행복으로 성립되는 것입니다." (나) 그 달 말경에, 우리 시의 고위 성직자 측에서는 집단 기도 주간을 설정함으로써 그들 특유의 방법으로 페스트와 싸우기로 결정했다. 대중 신앙심의 표시가 담긴 이 행사는 일요일에 페스트에 걸렸던 성(聖) 루가에게 드리는 장엄한 미사로 끝맺기로 되어 있었다. 그 기회에 파늘루 신부는 강론을 위촉받았던 것이다. …(중략)… "오늘 페스트가 우리에게 닥쳐온 것은 반성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이 벌벌 떠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곳간 속에서 가차없는 재앙은 짚과 낟알을 가리기 위해서 인류라는 밀을 타작할 것입니다. 낟알보다는 짚이 더 많을 것이며, 선민들보다는 버림받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행은 하느님이 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 세상은 악과 타협해 왔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이 세상은 성스러운 자비 위에서 안식하고 있었습니다. 회개하는 것으로써 충분했고 모든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가 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회개를 하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는 가장 쉬운 길은 그냥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요, 그 밖의 것은 하느님의 자비로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오래 계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그 연민의 얼굴을 보여 주시던 하느님께서도, 기다림에 지치고 실망하시어, 마침내 외면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광명을 잃고 우리는 바야흐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고야 말았습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반성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에 하느님을 찾아뵙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너 번 무릎을 꿇는 것으로 여러분의 그 죄스러운 무관심에 대한 대가를 하느님께 갚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미지근하지는 않으십니다. 그처럼 드문드문 찾아뵙는 관계 정도로는 하느님의 넘쳐흐르는 애정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더 오래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이며, 그것만이 유일한 사랑의 방식입니다. 이리하여, 여러분이 찾아뵙는 것을 기다리다가 지치신 하느님은, 인류가 역사를 가진 이래 재앙이 죄 많은 모든 도시를 찾아들었듯이, 여러분에게도 찾아들게 하신 것입니다. 카인과 그 자손들이, 노아의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애굽의 왕과 욥, 그리고 또한 모든 저주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았듯이, 이제 여러분은 죄가 어떤 것인가를 알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시가 여러분과 재앙을 벽으로 둘러싸고 가두어 버린 그 날부터, 여러분은 그네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새로운 눈으로 모든 존재와 사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야, 마침내 근본적인 것에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좀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본다면 그것은 모든 고민 속에 가로놓인 저 영생의 황홀한 빛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확고하게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신의 뜻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또 다시, 죽음과 고뇌와 아우성의 길을 통해서, 그 빛은 우리들을 본질적인 침묵으로 이끌어 가며,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광대무변한 위안입니다. 이 위안을 여러분에게 가져다주고자 합니다. 부디 여러분은 이 자리에서 응징의 언사를 듣고 돌아가시는 데에 그치지 말고 여러분을 진정시키는 '말씀'도 잘 듣고 가시기 바랍니다." (다) "그래도 선생님은 파늘루 신부처럼 페스트에도 그 것대로의 유익한 점이 있어서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고 여기고 계시겠죠!" 리유는 답답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병이 다 그렇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있는 것은 페스트에도 역시 있습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하겠죠. 그러나 그 병으로 해서 겪는 참상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리유는 어조를 높였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타루는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면서 리유가 말했다. "한데, 내가 아까 한 말에 대해 아직 대답을 안 하였습니다. 잘 생각해 보셨나요?" 타루는 안락의자에서 좀 편안하게 고쳐 앉으면서 머리를 불빛 속으로 내밀었다.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질문은 역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유가 망설였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것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지가 벌써 오래됩니다." "좋아요." 타루가 말했다. "선생님 자신은 신도 믿지 않으시면서 왜 그렇게까지 헌신적이십니까? 선생님의 답변이 제가 대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않은 채 의사는, 그 대답은 이미 했으며,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 타루가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자신의 직업을 그렇게 보고 계시는군요?" "대충은 그렇습니다." 의사는 다시 밝은 쪽으로 몸을 내밀면서 말했다. 타루는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고 의사는 그를 보았다. "그럼요." 그는 말했다. "아마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나는 최소한의 자존심밖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이 일들이 모두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그들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중략)… "내가 이 직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말하자면 그냥 막연히 택했지요. 직업이 필요했었고, 딴 직업이나 마찬가지로 괜찮은 직업이었고, 젊은 사람이 한 번 해볼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또 어쩌면 나 같은 노동자의 자식으로서는 특별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택하고 났더니 죽는 장면을 보아야만 했지요.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 하고 외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그때 나는 절대로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때는 나도 젊었고, 해서 나의 혐오감은 세계의 질서 그 자체에 대하여 솟구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 후 나는 한층 더 겸허해졌어요. 다만, 죽는 것을 보는 일에는 여전히 길들여지지 못한 채로요. 그 이상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리유는 입을 다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입안이 마른 듯싶었다. "결국은요?" 하고 타루가 나직하게 물었다. "결국……" 의사는 말을 계속하려다가 타루를 물끄러미 보면서 또 주저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그러나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 만큼, 아마 신으로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낫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만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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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작성 방법
서론은 도입부라고도 한다. 가볍게 워밍업(warming-up)하면서 몸을 풀듯이 본문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론에 들어가야 할 유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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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론의 일반적인 내용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예시를 통해서 어떻게 서론을 써야 할지 감(感)을 잡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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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작성 방법
'본론부터 말하자'는 말이 있다. 주변 군더더기 말은 빼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자는 뜻이다. 논술에 있어서 본론 또한 가장 중심 내용을 적는 논술의 핵심 부분이다. 본론에서도 단락을 구성하는 기본 원칙이 적용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즉, 글쓴이의 주장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고, 주장은 이유, 원인, 사실, 예시, 예증 등의 논거를 통해 적절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거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특별한 관계란 바로 '논리적 관계'를 말한다. 주장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논거를 들어야 하는데, 만약 주장과 상관없는 내용이라면 '논리성'이 결여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장과 연관 관계를 갖고 있는 논거라고 하더라도 논거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면 주장을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없기 때문에 논증의 힘을 잃게 된다. 즉, '논리적 관계'에는 주장과 연관 있는 논거의 선택 및 그 논거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 모두가 고려되어야 한다.
본론은 형식상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몇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전체 논술의 3/5정도를 안배하면 된다.
본론의 일반적 내용과 구성은 다음의 유의사항을 참조하여 작성해야 한다.
1) 서론에서 제시한 논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약 '개인의 합리성과 사회의 합리성 간의 상충적 입장'에 대한 내용으로 서론을 열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본론에서 개인의 특성이나 사회의 특성 등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방법은 적절하지 못하다. 오히려 각각의 '합리성'의 특징과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사례 등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이 논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서술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쓰기 전 개요를 작성한다면 논제 이탈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귀찮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평소 개요 작성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
2) 단락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본론 각 단락은 내용상, 형식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어떤 소주제가 내용 전개상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거나, 다른 문단에 비해 너무 많은 양으로 서술된다면 본론의 전체적 균형은 깨지게 된다. 그러니까 각 단락은 비슷한 분량으로 서술하고, 한 단락에 하나의 소주제를 담는다면 단락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3) 논지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일관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먼저 한 단락 내에서 내용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나의 단락에는 하나의 중심생각을 담자'는 말처럼 단락마다에는 중심 생각을 담은 문장(주제문)이 있는데, 나머지 문장은 이 문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적절히 구성되어야 한다. 만약 한 단락에 두 가지 혹은 여러 가지 생각이 서술되어 있다면 그것은 잘 쓴 단락이라고 할 수 없다. 두번째, 각 단락의 연결 또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논술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각 단락은 그 중심 주제를 뒷받침하는 각각의 논거가 되어야 한다. 모든 단락을 글 전체의 주제와 연계되면서 결론에 이르도록 배열되어야 한다.
4) 객관적인 논의를 통하여 자신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한다.
주장이나 논거는 모두 균형 잡힌 시선에서 끌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과학 기술 발달에 따른 환경오염에 대해 쓸 때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편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환경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다'고 서술한다면 그것은 한쪽에 치우친 견해이다. 왜냐하면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려는 노력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황을 볼 때 좀 더 시야를 넓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즉, 자기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기보다 자신의 견해에 반대되는 견해도 충분히 논의를 하면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해 나가야만 객관적인 논의 전개가 된다. 이때,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답변(재반론)도 필요하다.
5) 개요 작성의 치밀성이 요구된다.
긴 문장의 본론은 3개 이상의 단락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단락 간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요를 치밀하게 작성해야 한다. 본론을 쉽게 쓸 수 있도록 개요의 상위 항목들을 더욱 세밀한 하위 항목들로 나누고, 제시할 사례나 자료를 미리 생각해보아야 한다.
6)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해 줄 사실이나 예시(자료)를 덧붙인다.
각 단락에는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담고 있는 중심 문장(소주제)가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장만으로는 단락을 완성할 수 없다. 소주제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제시되어야만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다. 즉, 중심 내용을 적절하고도 충분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사용하여 글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계속해서 주장만 나열하거나, 논거가 주장과 연관성이 없거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논거가 타당성을 지녀야 하며 충분한 분량으로 서술해야 한다.
7) 글의 접속어와 지시어를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접속어와 지시어는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그들 사이에 통합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접속어는 앞 뒤 내용간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지시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글 속의 내용을 대신 받아서 간결하게 처리할 수 있다. 특히, 평소 한 문장의 길이를 길게 잡아 쓰는 학생의 경우에는 접속어와 지시어를 사용해서 적절히 문장의 길이를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8) 글의 서술에 있어 독창성이 나타나야 한다.
글의 내용이 참신하거나, 창의성이 있다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견해가 포함되었음을 의미한다. 글의 참신성은 새로운 자료와 논리 전개, 독창적인 접근 방법이나 해석 등을 통해 얻어지는 인식의 새로움에서 비롯된다.
9) 남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구분하여 서술해야 한다.
간혹 제시문에 나온 내용을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제시문에 서술된 내용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학설을 쓸 때에는 그것이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인지 밝혀주어야 한다.
결론 작성 방법
가. 서론과 결론 내용은 일관성 있게 서술한다
이 말은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와 결론의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서론과 결론은 서로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사귈 때를 가정해 보자.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친구와 비슷한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때 흔히 '통한다'고 한다. 또한 내가 물어 본 것에 대해서 정말 원하던 대답이 나왔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서론과 결론은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뜻이 통하는 친구라고 보면 간단하다. 서론에서 뭔가 의문을 던졌으면 결론에서는 그것을 풀어줘야 하고, 서론에서 문제점을 제기했으면 결론에서는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나와야 하고, 서론에서 어디까지 이야기하겠다고 한정한 것에 대해서는 결론에서도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거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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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론에서 제기된 문제는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마무리한다
결론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지나치게 포괄적인 것이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와 같이 서술했다면, 이것은 있으나마나한 결론이 되는 것이다. 공해 문제라는 것이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긴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하는지 서술해야 한다.
자신의 결론이 피상적이고 포괄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마무리하고 마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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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도덕적으로 계몽하려 하거나, 상투적으로 마무리 하지 않는다
결론에서 한 수 일러주는 차원에서 도덕적으로 계몽하며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논술은 신문 사설과는 달리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하거나 실천을 촉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의 논거를 들어 증명하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잘해 보자, 반성해야 한다, 촉구한다, 앞장서자, 알아야 한다, 밝은 사회를 만들자'와 같은 문구가 도덕적으로 계몽하는 표현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서술어는 남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음 예는 도덕적으로 계몽하는 내용이거나 상투적으로 마무리한 결론이다. 즉,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문이다.
【예시 1】 바람직한 교사란 금력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교직은 하늘이 내린 천직이기 때문이다. 또한, 잘못된 내용인 줄 알면서도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의식을 투철히 하고, 절대적으로 돈을 멀리하고 권력자에 굴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 |
【예시 2】 우리는 지금까지 자살률의 증가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 문제는 자살률의 증가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은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교육이 바로 서고 구성원들이 그것을 따를 때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 |
라. 본론에서 언급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내용을 삽입하지 않는다
개요을 짜고 글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도 문득 좋은 글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웬만큼 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건 조심해야 한다. 특히 결론 부분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결론은 특성상 새로운 주장을 전개하는 부분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논의를 마무리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래 글을 보면 '대중문화의 역기능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한 본론의 내용을 종합 정리하면서 결론은 내리고 있다. 그런데, 밑줄 친 부분은 '대중문화의 확산에 따른 긍정적 측면 및 확산 과정에서의 형평성'을 언급한 것으로 새롭게 부가된 내용이다. 이 내용은 글 전체의 흐름상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중문화의 역기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개성이 존중될 때 다양성도 인정되고 이것이 실현될 때 비로소 획일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윤리적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법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중에 의한 문화의 확산은 긍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소수에게만 집중된 문화 체험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평등에도 어긋난다. 대중문화의 역기능 해결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확산 과정에 있어서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대중문화의 역기능이 극복될 때 대중문화는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
전홍식 에플논구술연구소장, 에플교육미디어 대표, 프레시안 논술 칼럼니스트, 영남사이버대학교 논술지도학과 강사, 경원대학교 사회교육원 논술지도사 양성과정 강사, 교육사랑·유니텔 교원연수 논술과정 강사, 중앙일보NIE연구소 논술 자문위원, 한국학원총연합회 논술강사 연수회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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