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관리와 입시 준비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수험생들이 이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수능을 치르고 이제 겨우 한숨 돌린 학생들에게 이러한 주제의 논술 문제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한 학생일지라도 요즘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 관한 얘기는 한 두 번 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에 거품이 끼고 그것이 일순간에 무너지던 과거 일본의 영락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버블의 연구>라는 책을 낸 일본 스루가다이 대학의 후루가와 테츠오 교수는 버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인간의 욕망에서 찾고 있다.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과 무한한 물욕에서 비롯한 비극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활동에서 나타나는 제반 현상들의 밑바닥을 파헤쳐 보면 삶에 대한 반성으로 매듭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소비사회에서 소유의 의미에 대한 성찰
소유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논제는 논술고사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출제되어왔고, 앞으로도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기출 논제를 바탕으로 이 분야의 논제가 어떠한 형태로 주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물질적인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000년 이화여대 정시 논술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돈이 지니는 의미를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질과 관련시켜 논술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돈에 대한 개인적,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면의 다각적 접근을 요하는 문제였다.
2001년 건국대 정시 논술에서는 소욕지족(小慾知足)의 삶을 주장하는 법정 스님의 글과 꼭 필요한 만큼의 돈만 벌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사는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삶을 보여주고 이 같은 삶의 방식이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제시문에 나타난 삶의 방식이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삶이 과연 '보통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따라붙어야 하는 것이다. 논술 답안이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설득적이어야 한다. 현실성이 결여된 독창성은 창의적 상상(想像)이라고 봐야 한다.
같은 해 고려대 정시 논술에서는 소유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세 개의 제시문이 주어지고 각 제시문에 나타난 관점들을 검토하여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는 논제가 주어졌다. 제시문 (가)는 이곡(李穀)의 차마설(借馬設)에서 인용한 것으로 개인이 가진 것은 모두 빌려온 것이라는 인식을 통해 소유에 따르는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나)에서는 애정 결핍으로부터 유래한 광기어린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제를 강조하였다. (다)는 소유의 역사적 원천과 윤리적 근거로 노동(勞動)을 들어 노동을 통한 이익의 추구 및 재산의 축적을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에 비추어 오늘날 소유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나름대로 찾아야 한다.
이 세 논제에서 공통적으로 빠질 수 있는 함정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불필요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 '무소유의 역리를 깨닫고 실천하자.'와 같은 결말로 끝맺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앞서 말했듯이 현실성이 결여된 것으로 식상한 논의로 전달되기 쉽다.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통해 개인의 가치마저도 측정되고 평가되는 사회의 거대한 흐름에 한 사람의 의지로 맞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법정 스님은 구도자이기에 그러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수월했을지 모른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발현하는 것을 삶의 근본으로 삼았던 선비 계층인 이곡(李穀)에게 있어서도 물욕(物慾)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가 오늘날의 평범한 사람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2004년 이화여대 정시논술에서는 현대 사회 소비의 특징을 드러내는 장 보드리야르의 지문이 첫 번째 제시문으로 등장한다. 소비의 사회라 일컬어지는 현대사회의 가치가 자연친화를 통한 성찰적 삶[제시문 (나)]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권고하는 전통적 가치관[제시문 (다)]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 및 양상을 서술하고,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제시되었다. 인간의 인지적 측면뿐만 아니라 환상과 욕망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개인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오늘날 '소비'의 문제를 개념화하고, 이것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어떤 식으로 충돌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탐색해 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유 또는 소비와 관련된 문제는 정시논술에서 꾸준히 출제되고 있다. 수험생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의 의미, 물욕의 속성, 물질적 욕구의 충족과 행복의 관계 등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요소와 사회, 문화적 요소와의 관계 탐색
자본주의 경제에 기여하는 사회 문화적 조건을 탐색하고 이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라는 문제 또한 정시 논술에서 예상되는 주제이다.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인간이 재산에 대해 의무를 가진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신(神)의 종으로 또는 영리 기계로 재산에 종속시키는 사상이 우리의 생활 위에 싸늘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만약 생활에 대한 금욕적 태도가 시련을 견디어 낸다면,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에 대한 책임감도 그만큼 무거워진다. 왜냐하면 신의 영광을 위해 그것이 줄지 않도록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것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양식의 기원도(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많은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개개의 뿌리에 있어서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으로 일관된 윤리적 기초를 발견한 곳은 바로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이며,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그것의 중요성은 아주 명백한 것이다... |
이윤 추구를 최대의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는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등의 형태로 기형적으로 발달하고 있고, 이러한 점에 비춰 자본주의는 정신적 충족과 해방을 추구하는 종교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영역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윤 추구의 근거를 신의 소명에 두고 있는 프로테스탄티즘 즉, 종교가 근대 자본주의 발달의 가장 중요한 기반임을 기억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이 같은 연관관계에 '인간 소외'를 끌어들인다. 그에 따르면 '소외'란 판단이나 행위의 주체가 인간 외부에 놓여있는 상황인데, 인간 외적(外的)인 목적에 쉽사리 자기를 복종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프로테스탄티즘에 기반하고 있다고 본다.(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제4장 '근대인을 위한 자유의 양면성' 참조)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활동과 성공, 그리고 물질의 획득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데,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이것이 신에 의해 주어진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자신의 행복과 구제를 주체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과는 동떨어진 수동적인 인간상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추구하는 '이윤 창출'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느냐는 미시적 접근을 시도하여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문화적 요인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2002년 성균관대학교 정시 논술에서 출제되었는데, 오늘날 작업 현장이 점차 놀이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생산성에 기여하는 '여가'와 놀이를 통한 '창의적 발상'의 중요성을 제시문으로 채택하였다. 또한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증진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잘 결속된 집단일수록 생산성도 높다는 사례를 들어 정서적 측면으로 간주되던 인간적인 믿음을 집단의 경쟁력과 결부시키는 제시문도 주어졌다.
이처럼 경제 발전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화적 요소는 다양하며, 이 요소들과 자본주의와의 관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나만의 색깔을 담자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돈'이 삶의 전부가 되는 것에는 거부감을 지닐지라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고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글에는 이러한 생각이 반영되어야 한다. 물욕에서 초월한 수도자(修道者)의 관점을 자신의 것인 양 서술한다면 그 글은 자기의 글이라고 할 수 없다.
참고로 부산대에서는 좋지 않은 논술 답안의 유형을 다음 9가지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여러분들의 답은 어떤지 점검해 보자.
① 찍기형: 예상문제의 답안을 옮겨온 내용
② 좌충우돌형: 상반되고 모순된 주장
③ 사오정형: 전혀 엉뚱한 대답
④ 중언부언형: 같은 내용의 무의미한 반복
⑤ 횡설수설형: 주장이 불분명한 내용
⑥ 도사말씀형: 논리적 비약과 권위적 단정
⑦ 뻥튀기형: 지나칠 정도의 과대 포장
⑧ 단순과격형: 근거 없는 단정적인 주장
⑨ 유식과다형: 어려운 내용을 골라 쓰기
김수연 에플논구술연구소 수석연구원, 프레시안 논술 칼럼니스트, 영남사이버대학교 논술지도학과 강사, 중앙일보 NIE논술연구소 논술 첨삭위원, 한국경제, 경향신문, 세계일보 논술 칼럼니스트, 교육사랑/유니텔 교원 직무연수 논술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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